■ 중국, 전력화·원유 비축으로 ‘호르무즈 해협 충격’ 흡수
■ 전기차 확산 등 에너지 수요 구조 자체를 원유에서 전력으로 변화
■ 세계경제포럼(WEF), 에너지 전환의 핵심 화두가 ‘기후’에서 ‘안보’로 이동
지난달 말 세계경제포럼(WEF)이 중국에 대한 흥미로운 리서치를 내놨다. 2월 말 중동에서 전쟁이 터지고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됐을 때, 중국도 큰 여파를 받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상이었다. 중국 원유 수입의 45~50%가 이 해협을 통과하는 나라이니만큼, 충격도 가장 크지 않겠느냐는 합리적 추론이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골드만삭스가 낮춘 중국의 2026년 성장률 전망치는 0.2%p에 불과했고, 이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작은 조정폭이었다.
WEF의 설명은 이렇다. 중국은 12억~13억 배럴 규모의 전략·상업 원유 비축분을 갖고 있어 수입이 끊겨도 석 달가량 버틸 수 있고, 더 근본적으로는 지난 25년간 원유 수요 자체를 전력 수요로 대체해 온 구조 덕분이라는 것이다. 리서치업체 로디움그룹 추산으로 중국의 전기차·전기 트럭 보급은 이미 하루 176만 배럴 상당의 원유 수요를 대체하고 있다. 2000년대 초 ‘말라카 딜레마’ 인식, 2013년 베이징 스모그 사태, 2008년 4조 위안 경기부양책의 재생에너지 투자, 2014년 시진핑의 ‘에너지 혁명’ 선언까지 이어지는 25년짜리 정책 설계의 결과라는 게 WEF의 결론이다.
그런데 이런 진단을 내놓은 곳이 WEF만은 아니다. 이번 위기 국면에서 여러 투자은행과 에너지 컨설팅사들이 비슷한 결론에 각기 다른 각도에서 도달했다.
| “중국이 스스로 조정한 것” – 소시에테제네랄(SocGen)과 JP모건의 시각
‘소시에테제네랄’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은 원유 수입량을 2월 하루 1,170만 배럴에서 5월 말 900만 배럴 이하로 스스로 줄였고, 이는 전 세계 원유 수입 감소분의 74%에 해당하는 ‘불균형적으로 큰’ 몫이었다. JP모건 역시 이런 중국의 조정이 사우디의 물량 우회 공급 다음으로 큰 시장 완충 요인이었다고 평가했다. 즉 이번 위기는 ‘수요가 무너진 이야기’가 아니라 ‘공급을 스스로 관리한 이야기’에 가깝다는 것이다.
| 우드맥킨지 – 비축유·연료 전환·보조금의 3중 방패
우드맥킨지는 중국의 원유 수입 중 55%, LNG 수입 중 30%가 해협 봉쇄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고 짚으면서도, 전략비축유·가스에서 석탄으로의 발전 연료 전환, 소매·유가 보조금이라는 세 가지 완충장치가 즉각적인 충격을 흡수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우드맥킨지는 전기차 수출이라는 의외의 지표를 제시했는데, 2026년 1분기 중국의 전기차 수출은 전년 대비 77.5% 급증했고 3월 한 달만 놓고 보면 거의 140%까지 뛰었다. 미얀마·라오스·캄보디아처럼 유류 부족에 더 직접 노출된 개발도상국으로의 전기 이륜차 수출이 특히 폭증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 보텍사(Vortexa) – “이것은 수요 이야기가 아니라 공급 관리 이야기”
원자재 데이터업체 ‘보텍사’는 좀 더 미시적인 데이터로 이를 뒷받침한다. 중국의 자국 원유 생산량은 올해 1분기 하루 450만 배럴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러시아·카자흐스탄발 파이프라인 공급까지 더해지며 다른 아시아 수입국들이 갖지 못한 구조적 완충재를 확보했다. 4월 한 달 해상 원유 수입이 하루 840만 배럴로 2022년 9월 이후 최저치까지 떨어졌음에도, 중국은 오히려 재고를 계속 늘려 비축량을 12억 4,000만 배럴이라는 사상 최고 기록까지 끌어올렸다. 정유사들이 가동률을 스스로 낮추고 재고를 쌓는 방식으로, 공급 충격보다 한발 앞서 움직였다는 뜻이다.
| 골드만삭스 – “일시적 유가 급등이 아니라 영구적 수요 구조 변화”
골드만삭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번 충격이 전기차 전환을 가속화해 2027년 말까지 전 세계 원유 수요를 최대 하루 32만 배럴 낮출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은행은 중국의 가솔린 소비가 4월 기준 전년도 대비 최대 20% 줄었을 가능성을 언급하며, 이것이 일시적인 가격 효과가 아니라 추세적 흐름일 수 있다는 가설을 제기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역시 2025년 전 세계 전기차 판매가 2,000만 대(신차의 약 4분의 1)를 넘었고 2026년에는 2,300만 대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는 만큼, 이제 전기차는 원유 수요 전망에서 ‘변수’가 아니라 ‘핵심 변수’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 탄소 데이터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기후 분석기관 ‘카본브리프’의 로리 밀리비르타 애널리스트는 이 흐름을 배출량 통계로도 확인해준다. 2025년 중국의 발전 부문 탄소배출은 1.5% 줄었고, 석탄 발전량은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로 돌아섰다. 전체 배출량은 2024년 3월 이후 21개월째 정체 또는 감소 중이다. 다만 화학산업 배출은 오히려 12% 늘었고 탄소집약도 감축 속도도 목표치에는 못 미쳐, 중국의 에너지 전환이 완결된 서사는 아니라는 단서도 함께 붙는다.
| 여러 가지 렌즈에 비친 하나의 결론
정리하면 WEF는 25년짜리 정책사의 관점에서, 투자은행들은 물동량과 가격 데이터의 관점에서, 탄소 분석기관은 배출량 통계의 관점에서 각기 다른 문을 열고 들어갔지만 결국 같은 방에 도달한 셈이다. 호르무즈 충격이 유가에 준 영향은 1973년 오일쇼크(공급 7% 감소에 가격 134% 폭등)에 비하면 이번엔 공급이 14% 줄었는데도 가격 상승 폭은 30% 안팎에 그쳤다는 것이 그 방증이다. 중국의 자체 조정과 비축, 전력화된 수요 구조가 충격을 상당 부분 흡수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WEF는 이번 충격은 에너지 전환의 화두를 ‘기후’에서 ‘안보’로 옮겨 놓았다고 말한다. 각자의 상황이 다른 바 특정 국가의 국가 주도 모델을 그대로 복제하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국내 전력화가 곧 지정학적 완충재라는 점을 다시 한번 여실히 증명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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