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에너지 브리프] 다뉴브가 마르자 원전이 멈췄다. 44년 만의 원전 셧다운이 말해주는 것

2026. 08. 06 SK이노베이션 4분 읽기

■ 헝가리·루마니아·불가리아·프랑스 동시다발 원전 감발, 라인강은 1990년 이후 최저치 목전

■ 포트폴리오 분산, BESS 확충, 지역 간 계통연계 등 필요

지난 8월 2일 헝가리 정부는 자국 유일의 원자력발전소인 팍스(Paks) 원전을 3일부터 전면 정지하겠다고 발표했다. 1982년 가동을 시작한 이래 44년 만의 첫 전면 셧다운이다. 헝가리 전력의 절반가량을 책임지는 이 발전소는 다뉴브강 물을 끌어와 냉각에 쓰는데, 강 수위가 취수 펌프 가동 한계 밑으로 떨어지면서 지난 7월 31일 기준 출력이 정상치(2,000메가와트(MW))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965MW까지, 야간에는 240MW까지 주저앉았다. 페테르 마자르 헝가리 총리는 이번 셧다운으로 8월 3일부터 전력 수급이 ‘위태로운’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밝혔고, 정부는 이미 100개 넘는 지자체에 물 사용 제한 조치를 내린 상태다.

| 다뉴브 도미노… 헝가리·루마니아·불가리아 동시 비상

이번 사태는 헝가리에 국한되지 않는다. 데이터 분석 업체 등의 집계에 따르면 부다페스트 구간 다뉴브강 수위는 31cm로 관측 이래 최저치를 찍었다. 같은 강을 공유하는 루마니아 체르나보다(Cernavodă) 원전은 1호기가 완전히 계통에서 분리됐고 2호기도 시간 단위로 출력을 제한받고 있다. 불가리아는 자국 유일의 원전인 코즐로두이(Kozloduy) 5·6호기 전체를 일시 정지해야 할 수도 있다고 지난 7월 29일 에너지부 장관이 경고했다. 불가리아 정부는 세르비아 측에 제르다프(철문, Iron Gates) 수력발전 콤플렉스의 방류량 조정을 요청해, 상류에서 물을 흘려보내 코즐로두이의 취수 한계선을 겨우 웃돌게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프랑스도 예외 없다… 20여 년째 반복되는 취약점

냉각수 문제로 가장 자주 발전을 멈춰온 나라는 프랑스다. 국영전력공사 EDF(Électricité de France)는 강물 배출 온도가 환경 기준을 넘지 않도록 원전 출력을 낮추거나 정지할 법적 의무를 지는데, 지난 7월 30일 가론강 수온 급등으로 골페슈(Golfech) 2호기가 완전 정지됐고, 뷔제(Bugey) 3·4·5호기는 강제 감발, 노장쉬르센(Nogent-sur-Seine)은 센강 과열 방지를 위해 두 기 모두 출력을 낮췄다. 생탈방(Saint-Alban, 론강)과 블레예(Blayais, 지론드 하구) 원전도 최근 2주간 단속적으로 출력을 제한받았다. 업계 전문지들은 이런 냉각수발(發) 원전 감발이 2003년 유럽 폭염 당시 처음 확인된 뒤 2019, 2022, 2023년에 이어 올해도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하천 냉각 방식 자체의 구조적 한계가 누적되고 있다고 짚었다.

업계 전문매체인 파워테크놀로지의 집계로는 지난 7월 30~31일 기준 유럽 전역에서 6개 원전, 약 15기의 원자로가 정지되거나 출력 제한을 받는 상태였다. 영국에서는 냉각수 문제는 아니지만 사이즈웰 B(Sizewell B) 원전 인근 4마일 지점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해 ‘높은 경계’ 태세가 발령되기도 했다.

| 라인강도 벼랑 끝… 석탄·연료 수송까지 막혔다

발전만의 문제가 아니다. 독일 남부와 스위스로 향하는 화물의 관문인 라인강 카우브(Kaub) 구간 수위는 지난 7월 30일 28cm까지 떨어져 2018년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상품 유통업체들은 이번 주에 24cm까지 낮아질 경우 1990년 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로테르담에서 카를스루에까지 유조 바지선 운임은 6월 말 톤당 45유로에서 7월 말 145~150유로로 3배 이상 뛰었다. 로테르담, 암스테르담, 앤트워프 항구에는 석탄 재고가 봄 대비 75% 급증했는데도 내륙 운송량은 4분의 3이 줄어 ‘항구에는 석탄이 쌓이는데 내륙엔 공급이 끊기는’ 병목이 발생했다고 원자재 분석 업체 DBX커모디티스는 전했다.

독일 철강재활용업계 단체들은 라인, 다뉴브, 오데르강의 수위 저하로 고철 공급이 사실상 멈춰 서고 있다고 공동성명을 냈다. 오데르강 구간 화물 운송은 ‘사실상 정지’ 상태이며, 라인과 다뉴브 강에서도 선박들이 평소 적재량의 3분의 1, 또는 2분의 1 수준으로만 항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8년 라인강 가뭄 당시 독일 경제에 약 50억 유로의 손실을 안겼던 전례가 다시 거론되는 이유다.

| 원자력·수력·풍력까지 겹친 ‘삼중 스퀴즈’

리서치업체 인더스트리얼인포리소시스는 이번 여름 유럽의 문제를 ‘전력 수요 증가’ 하나로 설명할 수 없다고 짚었다. 폭염이 냉방 수요를 밀어 올리는 동시에, 원자력·수력·풍력 발전량을 동시에 끌어내리는 복합적 충격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알프스 지역은 올봄 강수량이 평년을 크게 밑돌면서 저수량과 하천 유량이 예년보다 낮은 상태로 여름을 맞았고, 남유럽 국가들의 수력 발전량도 예년 대비 큰 폭으로 줄어든 것으로 파악된다.

여기에 폭염을 유발하는 고기압이 오래 정체되면서 바람마저 잦아드는 현상까지 겹쳐, 하나의 재생에너지원이 다른 하나의 공백을 메워주는 식의 완충 작용이 예년보다 약해졌다는 분석이다.

| 정책 당국의 시각: “광범위한 위기는 아니다”

다만 유럽 송전시스템운영자협의체 ENTSO-E는 지난 5월 발표한 ‘2026년 여름철 전망’에서 이번 여름 EU 전역의 전력 공급 안정성에 전반적인 위험은 없다고 진단한 바 있다. 일부 역외 연계가 약한 시장에서만 고수요·저공급 시기에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조건을 달았을 뿐이다.

유럽집행위원회도 이 전망을 반기며, 지난 1년 사이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설비가 90기가와트(GW) 이상 늘어난 점을 안정성의 근거로 들었다. 즉, 이번 다뉴브·라인강 사태는 특정 국가 및 특정 하천 유역에 집중된 국지적 위기에 가깝다는 것이 공식 평가지만, 헝가리·루마니아·불가리아처럼 특정 하천에 발전과 수송을 동시에 의존해온 국가들에게는 그 국지적 충격이 고스란히 전력 안보 위기로 번지고 있는 셈이다.

| 냉각 방식부터 바꿔야 하나

반복되는 냉각수발 정지 사태에 ENTSO-E와 재생에너지그리드이니셔티브(RGI)는 올해 갱신한 ’10개년 전력망 개발계획(TYNDP)’에 기후 적응, 회복력을 처음으로 정량 지표로 반영했다. 하천 취수에 의존하지 않는 공랭식·해수 열교환 냉각 방식이나, 부지 선정이 비교적 자유로운 소형모듈원전(SMR) 논의도 업계 전문지들을 중심으로 다시 힘을 받고 있다. 다만 기존 원전 함대 전체에 새 냉각 방식을 대규모로 적용하는 작업은 아직 어느 나라에서도 실현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결국 이번 여름이 보여주는 것은 하나로 요약된다. 하천에 기대어 지어진 유럽의 발전, 수송 인프라가 애초에 상정했던 기후 조건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헝가리의 44년 만의 전면 셧다운은 그 경고가 더는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매년 여름 되풀이될 수 있는 구조적 위험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 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올여름 국내 최대 전력수요가 8월 셋째 주 94.1~98.8GW까지 오를 것이라고 전망하는 시각이 많다. 이는 2024년 기록한 역대 최대치(97GW)를 넘어설 수 있는 수준이다. 다만 현재까지 공급 예비율이 11~15%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수급 자체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예상하는 언론보도는 발견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냉각 여유’와 ‘공급 예비력’이라는 두 개의 마진이 폭염이라는 같은 원인으로 동시에 줄어드는 구조는, 하천 수위와 냉방 수요가 동시에 유럽 전력망을 압박한 이번 여름의 그림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 시사점: 냉각·계통·믹스를 함께 설계해야 할 때

유럽의 이번 사태와 국내 상황을 나란히 놓고 보면, 에너지 전환 논의에서 빠져 있던 축 하나가 뚜렷해진다. 그동안 에너지 전환은 주로 ‘무엇으로 발전할 것인가’라는 발전원 믹스의 문제로 다뤄왔지만, 이번 여름은 ‘그 발전원을 어떻게 냉각하고, 어떻게 실어 나르고, 어떻게 계통에 연결할 것인가’라는 인프라 설계의 문제가 똑같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원전이든 화력이든 냉각수를 하천이나 바다에 의존하는 한, 기후변화로 인한 발전 감발 리스크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발전원은 없다는 뜻이다.

이는 몇 가지 방향의 대응을 함께 요구한다.

첫째, 신규 설비뿐 아니라 이미 가동 중인 발전소의 냉각계통 자체를 기후 조건 변화에 맞춰 보강하는 ‘기존 설비의 기후 적응’ 투자가 필요하다. 설계 기준 수온을 계속 높여 잡는 임시방편보다, 열교환기 교체나 보조 냉각원 확보 같은 근본적 설비 투자가 장기적으로 더 안전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둘째, 특정 발전원이나 특정 수계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포트폴리오 분산이 필요하다. 원전·수력·풍력·태양광이 서로 다른 기후 조건에서 취약점을 갖는 만큼, 한 발전원의 공백을 다른 발전원이 메워줄 수 있는 상호보완적 믹스와 이를 뒷받침할 에너지저장장치(BESS), 초국경·지역 간 계통 연계가 함께 확충돼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발전만이 아니라 연료·자원 수송망의 기후 회복력도 함께 설계해야 한다. 이번 유럽 사태에서 보듯, 발전소가 멈추지 않아도 강물 수위 하나로 석탄·철강 공급망 전체가 마비될 수 있다는 점은 에너지 안보의 범위를 발전 설비 너머로 넓혀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 관련 글

- [AI 에너지 브리프] 31초 만에 뚫렸다… AI가 에너지망 사이버보안을 다시 쓰는 법

- [AI 에너지 브리프] 중국의 에너지 시스템, 호르무즈 사태에도 끄떡없는 까닭

- [AI 에너지 브리프] 빠르게 파편화되고 있는 세계 에너지 시스템

- [이충재의 에너지 프리즘] 미국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의 유일한 해결책: BESS

- [이충재의 에너지 프리즘] Google의 2026 환경 보고서와 AI 산업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경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