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전기차 시대의 게임 체인저, 전고체 배터리가 여는 새로운 미래

2026. 01. 08 정경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지속가능미래기술연구본부장 7분 읽기
전기차의 대중화, 그리고 새로운 과제

“10분 충전으로 서울에서 부산 왕복.” 전기차(EV) 사용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꿔봤을 이야기다. 전기차 시장은 지난 10여 년간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며 내연기관차를 대체하는 미래 모빌리티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초기 전기차가 얼리어답터들의 전유물이었다면, 이제는 일반 소비자들이 성능과 편의성을 꼼꼼히 따져보고 선택하는 대중화 단계에 진입했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의 눈높이는 더욱 높아졌다. 이제는 단순히 ‘전기로 가는 차’를 넘어, 내연기관차 수준의 긴 주행거리와 빠른 충전 속도, 그리고 무엇보다 ‘타협 없는 안전성’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주류를 이루고 있는 리튬이온전지 기술은 이러한 시장의 요구에 맞춰 놀라운 속도로 발전해 왔으나, 물리적 한계를 넘어선 획기적인 도약을 위해서는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차세대 배터리의 기준점이자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All-Solid-State Battery)’가 주목받고 있다.

배터리의 핵심 요소, 전해질의 진화

배터리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려면 그 내부를 들여다봐야 한다. 배터리는 크게 양극, 음극, 분리막, 그리고 전해질이라는 4대 핵심 요소로 구성된다. 양극과 음극은 리튬이온을 주고받으며 에너지를 저장하고 방출하는 역할을, 분리막은 양극과 음극의 물리적 접촉을 막는 역할을 수행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핵심은 바로 ‘전해질’이다. 전해질은 양극과 음극 사이에서 리튬이온이 이동하는 통로 역할을 하는 매개체다. 현재 널리 쓰이는 리튬이온전지는 액체 상태의 전해질을 사용한다. 액체 전해질은 이온전도도가 높아 출력을 내기에 유리하고 기술적 완성도가 매우 높다는 장점이 있다. 덕분에 오늘날의 고성능 전기차 시대가 열릴 수 있었다. 다만, 액체라는 물질의 특성상 온도 변화나 외부 충격 등에 의한 부반응에 민감할 수밖에 없어, 이를 보완하기 위한 견고한 안전 장치와 시스템 설계가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한다.

전고체 배터리는 이러한 액체 전해질을 ‘고체 전해질’로 대체하는 기술적 진보를 의미한다. 전해질이 고체로 바뀌면 구조적으로 견고해지고 열적 안정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진다. 액체가 아니기에 누액의 염려가 없고, 외부 환경 변화에도 물성이 일정하게 유지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즉, 전해질의 형태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배터리 시스템 전반의 안정성을 근본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왜 전고체인가: 안전과 성능, 두 마리 토끼를 잡다

전 세계 배터리 기업들이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명확하다. ‘안전성’과 ‘에너지 밀도’라는, 상충하기 쉬운 두 가지 가치를 동시에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 고체 전해질은 누액이나 가스 발생 위험이 거의 없어 인화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러한 높은 안전성은 역설적으로 배터리의 성능을 높이는 기폭제가 된다. 기존 배터리 팩에 필수적이었던 복잡한 냉각 장치나 안전 부품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품이 줄어든 공간만큼 배터리 셀을 더 채워 넣을 수 있어, 같은 부피 내에서 에너지 밀도를 비약적으로 높일 수 있다.

또한, 고체 전해질은 리튬 금속(Lithium Metal)과 같은 고용량 음극 소재를 적용하기에도 유리한 환경을 제공한다. 이는 전기차의 1회 충전 주행거리를 800km 이상으로 늘리고, 충전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는 잠재력을 의미한다. 요컨대 전고체 배터리는 단순히 소재 하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배터리 팩의 설계 자유도를 높이고 전기차의 성능 한계를 재정의하는 기술이다.

넘어야 할 산, 그리고 5년의 골든타임

물론 전고체 배터리가 장밋빛 미래만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상용화를 위해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기술적 난제들이 존재한다. 가장 본질적인 장벽은 고체 전해질과 전극이 맞닿는 ‘계면 문제(Interfacial Issue)’다. 액체 전해질은 전극 표면을 빈틈없이 적실 수(Wetting) 있지만, 고체와 고체가 만날 때는 미세한 물리적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 빈틈은 이온의 이동을 방해하고 계면의 불안정성을 초래하여 배터리 성능과 수명을 떨어뜨리는 주원인이 된다.

이러한 물리적 접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 기술 단계에서는 제조 과정에서 ‘온간등압프레스(WIP, Warm Isostatic Press)’와 같은 초고압 압착 공정을 사용하여 강제로 입자들을 밀착시켜야만 한다. 이러한 공정은 연속 공정의 적용을 어렵게 해 생산성을 별도로 확보해야 한다. 더 큰 숙제는 배터리가 만들어진 이후, 실제 작동(구동)하는 환경에서도 높은 압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충·방전 시 활물질의 부피 변화에 따라 입자 간의 접촉이 끊어질 수 있어, 이를 막기 위해 배터리 시스템에 지속적으로 높은 압력을 가해 주는 별도의 장치가 요구되기도 한다.

이는 배터리 팩의 부피와 무게를 증가시키고 가격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제조 공정에서의 가압 불편함을 해소하고, 구동 시 가압 의존성을 낮추는 기술 개발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향후 5년을 이러한 기술적 성숙도를 판가름할 중요한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이 ‘골든타임’ 동안 소재 혁신과 공정 기술의 확보가 얼마나 빠르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느냐가 미래 배터리 시장의 패권을 결정할 것이다.

K-배터리의 해법: SK온의 도전과 혁신

다행히 대한민국은 배터리 강국으로서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SK온은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 제조 역량을 바탕으로 전고체 배터리 분야에서도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SK온은 대전에 전고체 배터리 파일럿 플랜트를 구축하고, 2029년 상용화를 목표로 황화물계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난제로 꼽히던 전극과 고체 전해질 간의 계면 저항 문제를 독자적인 기술로 풀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고체 전해질의 접촉면을 넓히기 위해 높은 온도와 압력을 가하는 ‘온간등압프레스’ 공정을 사용한다. 하지만 이는 공정이 까다롭고 시간이 오래 걸려 대량 생산에는 불리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SK온은 이를 개선하여 WIP 공정의 장점은 살리되, 일반적인 프레스 공정으로도 충분한 성능을 낼 수 있는 독자적인 압착 기술을 개발해 적용했다. 이는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면서도 배터리의 수명과 성능을 확보한 ‘양산형 기술’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단순히 실험실 수준의 성능 구현에 그치지 않고, 실제 공장에서 찍어낼 수 있는 상용화 기술을 확보했다는 것은 SK온이 차세대 배터리 시장의 ‘게임 체인저’가 될 준비를 마쳤음을 시사한다. 이 외에도 리튬 메탈 배터리 등 다양한 차세대 원천 기술을 병행 연구하며 기술적 포트폴리오를 탄탄히 다지고 있다.

▲ 전고체 배터리 파일럿 플랜트가 위치한 대전 유성구 SK온 미래기술원 전경
미래 모빌리티를 향한 확실한 이정표

전고체 배터리는 먼 미래의 공상과학이 아니다. 연구실을 넘어 파일럿 라인으로, 그리고 머지않아 우리의 도로 위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는 눈앞의 현실이다. 물론 초기에는 높은 가격이 진입 장벽이 될 수 있겠지만, 기술의 성숙과 함께 가격 경쟁력 또한 자연스럽게 확보될 것이다. 전고체 배터리를 둘러싼 치열한 기술 경쟁은 미래 모빌리티 산업의 지형도를 바꾸는 거대한 흐름이다. 그리고 그 흐름의 중심에 우리 기업들의 혁신적인 노력과 기술력이 있다. 더 안전하고, 더 멀리 가며, 더 빨리 충전되는 전기차 세상. 전고체 배터리가 열어갈 그 새로운 미래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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