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영의 에너지 지오그라피] 이란 전쟁의 승자와 패자

2026. 03. 18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수석전문위원 5분 읽기

미국·이스라엘 선제공격 이후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글로벌 에너지 가격 폭등

아시아 개도국·유럽·걸프 산유국은 타격, 러시아·미국 석유업계는 반사이익

중동의 암묵적 안정 질서 붕괴, 사태 장기화 시 스태그플레이션 재연 우려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선제공격하면서 시작된 전쟁이 2주를 넘기며 세계 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21세기 들어 재생에너지 확산과 함께 석유 의존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낙관론이 퍼졌지만, 이번 전쟁은 현대 문명이 여전히 화석에너지에 절대적으로 기대고 있음을 드러냈다. 이란 혁명수비대가 세계 원유의 약 15~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서 원유 가격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고, LNG 공급의 약 20%도 차단됐다. 충격은 에너지에 그치지 않는다. 천연가스로 만드는 비료 가격이 치솟으면서 식량 위기 우려가 확산되고 있으며, 정유 부산물인 황 가격 상승은 구리 제련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헬륨도 부족해졌다. IMF는 각국 정부에 “상상조차 하기 싫은 사태”에 대비할 것을 촉구했다.

전쟁을 시작한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이 단기간에 끝날 것이라 낙관했지만, 이란의 저항은 예상보다 완강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란은 걸프 연안 미군 기지를 공격하는 동시에 해협 봉쇄를 선언했다. 미국이 이란 원유 수출의 90%를 처리하는 하르그(Kharg) 섬을 공습하며 경제 기반 붕괴를 위협하자, 이란은 호르무즈 우회 송유관이 연결된 UAE의 푸자이라 항을 보복 공격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 대량의 기뢰를 부설할 경우 전쟁이 끝나더라도 원유 공급은 장기간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문제가 예상외로 커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중국·일본·프랑스·영국에 해협 개방을 위한 해군 파견을 요구하며, 안전 보장의 책임을 분산시키려 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촉발한 미국이 전적인 책임을 질 의사가 없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번 전쟁은 세계 경제의 근간이 되는 화석에너지의 생산지이자 핵심 유통경로에 큰 타격을 주고 있으며, 이로 인한 영향은 시간이 지날수록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어떤 지역과 국가는 큰 피해를, 반대로 다른 국가들은 뜻밖의 횡재에 희희낙락하고 있다.

패자①: 아시아 개발도상국

가장 큰 피해자는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개발도상국들이다. 세계 최대 인구 대국인 인도는 전체 원유의 90%를 수입에 의존하며, 그중 절반이 호르무즈를 통과한다. LPG의 85%, LNG의 60%도 중동에서 조달해 왔다. 인도 정부는 비상 권한을 발동해 비료 공장에는 평시의 70% 수준으로 천연가스를 공급하지만, 석유화학 시설에는 35%로 낮춰 배급하고 있다. 인도 루피화는 달러 대비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고, 수입 비용 상승이 경제 충격을 증폭시키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유가가 배럴당 70달러에서 85달러로 지속 상승할 경우 인도의 경상수지가 GDP의 0.6%, 태국은 1.2% 악화될 것으로 추산했다.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 같은 취약 국가들은 아예 수입 대금을 감당하지 못할 위기에 처할 수 있다. 동남아 각지에서는 비료 공장이 문을 닫고 있으며, 필리핀은 정부 청사의 컴퓨터 점심시간 가동 중단과 냉방 축소를 명령했다. 걸프 국가에 나가 있는 방글라데시·인도·파키스탄 노동자들이 보내는 송금도 줄어들어, 이들 나라의 국제수지를 추가로 악화시키고 있다. 2025년 격렬한 정치적 격변을 겪었던 이들 지역에 가해진 에너지 충격은 세계 최대 인구 밀집 지역인 이 지역의 혼란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패자②: 걸프 연안 산유국

역설적이게도, 원유 수출국인 걸프 연안 국가들도 패자에 속한다. 이란과 페르시아만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카타르, UAE, 쿠웨이트 등은 중동의 혼란 속에서도 ‘모두의 친구’를 자처하며 안정과 번영을 누렸고, 세계적 금융·물류 허브로 성장해 왔다. 그러나 이란의 미사일·드론 공격으로 유전과 정제 시설, 항만, 공항이 직격탄을 맞았다. 항구와 저장 시설이 포화 상태가 되면서 석유회사들은 생산을 중단해야 했다.

골드만삭스는 해협이 4월까지 봉쇄되고 생산 회복에 두 달이 걸린다고 가정할 경우 사우디와 UAE의 연간 탄화수소 생산이 12~16% 감소하고, 바레인·쿠웨이트·카타르는 25% 이상 줄어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GDP 기준으로는 바레인·쿠웨이트·카타르가 두 자릿수 감소를 겪을 수 있으며, UAE는 약 8%, 사우디는 약 5% 감소가 예상된다. 수년간 공들여 쌓아온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투자처’라는 이미지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미군의 존재가 오히려 상대의 공격을 불러왔을 뿐이라는 점도 드러나고 있다.

패자③: 유럽

유럽은 러시아산 파이프라인 가스를 끊은 후 LNG 의존도를 크게 높여왔다. IEA는 유럽이 전 세계 LNG 물동량의 4분의 1을 수입해야 한다고 전망했다. 이번 사태로 LNG 현물 시장에서 아시아와 유럽 간 쟁탈전이 벌어지면서, 영국·독일행 LNG 탱커가 항로를 바꿔 아시아로 향하는 사례도 나왔다. 유럽 천연가스 가격은 전쟁 전 대비 75% 이상 뛰었다. 중앙은행들은 인플레이션 억제와 경기 부양이라는 딜레마에 빠졌다. 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시장은 ECB의 금리 인하를 점쳤지만, 지금은 연내 두 차례 금리 인상을 예상하고 있다.

승자①: 러시아

이번 전쟁에서 가장 큰 반사이익을 얻은 나라는 러시아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 제재로 중국·인도 두 나라에 원유 수출을 의존해 오던 러시아는 최근 인도가 수입을 줄이면서 수세에 몰렸다. 그러나 국제 유가 급등에 대응해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산 원유 제재 해제를 언급하면서 러시아의 국제 원유시장 복귀가 가시화되고 있다. 러시아가 시장에 복귀하면 전쟁 재원을 풍족하게 확보할 수 있다. 아울러 러시아 에너지에 의존하는 국가들이 늘어날수록, 우크라이나를 외교적으로 고립시켜 유리한 조건으로 전쟁을 마무리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중국이 러시아산 원유 도입을 늘릴 경우 양국 관계도 일방적 의존에서 균형 잡힌 관계로 재편될 수 있다.

승자②: 미국 석유 산업

전쟁 당사자인 미국도 국내 석유 산업 측면에서는 이익을 보고 있다. 유가가 47% 오르면서 셰일 업계를 중심으로 한 미국 석유 생산업체들은 3월에만 약 50억 달러의 추가 수익이 예상된다. 2019년 이후 순에너지 수출국이 된 미국은 높은 유가 자체가 일부 산업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다만 소비자들은 휘발유 가격 급등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으며, 엑슨모빌·셰브론 등은 걸프 지역 자산 피해를 입고 있어 이익이 고르게 분배되지는 않는다. 또 인플레이션 재점화로 연준이 금리 인하 여력을 잃으면 전체 경제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전망: 예측불허의 중동

IEA 회원국들은 역사상 최대 규모인 4억 배럴의 비축유 방출에 합의했지만, 이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IEA 회원국이 100~200일치 비축유를 갖고 있어 당장의 충격은 버텨낼 수 있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되면 선진국도 큰 타격을 피하기 어렵다. 해협이 이달 말까지 봉쇄된 채로 유지된다면 WTI 및 Brent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 심하면 20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는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이 재연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번 전쟁이 중동의 ‘묵시적 안정 질서’를 무너뜨렸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중동의 원유 공급망은 주요 이해당사자 간 암묵적 합의 위에서 유지되어 왔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선제공격은 그 레드라인을 허물었고, 이란 혁명수비대 대변인은 “전쟁의 종결은 우리가 결정한다”고 경고했다. 근본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시도가 목표를 달성할지, 아니면 더 큰 혼돈의 시작점이 될지를 세계는 불안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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