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핵심 요약
- 미국 정유업계는 이미 96%대의 가동률로 풀가동 중이라, 예기치 못한 설비 중단이 생기면 이를 흡수할 여유 생산능력이 거의 없음
- 전략비축유(SPR) 저장동굴은 방출을 거듭할수록 물리적으로 손상. 회계감사원(GAO)은 2022년 우크라이나 대응 방출을 ‘계획에 없던 스트레스 테스트’로 규정한 바 있음
- 현재 방출된 물량이 예전 수준으로 회복되려면 2028년 무렵까지 걸릴 수 있어, 재보충 속도가 방출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
미국 에너지부가 지난 10일(현지 시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전략비축유(SPR, Strategic Petroleum Reserve) 재고가 지난주 610만 배럴 줄어든 2억 9870만 배럴로 집계됐다. 1975년 조성된 SPR이 3억 배럴 밑으로 내려간 것은 1983년 1월 이후 처음이라고 CNBC는 전했다.
이번 감소분은 최근 몇 주간의 완만한 방출 흐름과 비교해 볼 때 큰 폭으로 평가된다. 미국의 익명 블로그인 제로 헤지(Zero Hedge)에 따르면 직전 주 방출량은 280만 배럴을 보였는데, 이번 주 감소 폭은 그 두 배가 넘는다. SPR의 의회 승인 저장용량은 7억 1400만 배럴이며, 2009년 12월 기록한 역대 최대 재고는 7억 2660만 배럴이었다고 폭스비즈니스는 전했다.

사실 미국 전략비축유(SPR)가 1983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소식 자체는 이제 평범한 뉴스에 가깝다. 이란 전쟁이 5개월 넘게 이어지는 동안 매주 반복돼 온 흐름이기 때문이다. 정작 에너지 업계가 주목하는 대목은 숫자 그 자체가 아니라, 이 완충 장치가 실제로 얼마나 얇아졌고 얼마나 빨리 회복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 정제설비는 이미 여유가 없다
전략비축유 감소와 별개로, 미국 정유업계는 이미 한계에 가까운 가동률로 돌아가고 있다. 미국의 물류 전문매체 탱크 트랜스포트가 인용한 에너지정보청(EIA) 자료를 보면, 7월 17일 기준 미국 정유 설비 가동률은 약 96.1%, 하루 원유 투입량은 약 1710만 배럴에 달했다. 가동률이 이렇게 높다는 건 그만큼 휘발유·경유·항공유 등 완제품 생산이 활발하다는 뜻이지만, 동시에 예기치 못한 설비 중단이 발생했을 때 이를 대신 흡수할 여유 생산능력이 거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5월 원유시장 보고서는 이런 상황에서도 정제 마진이 역대 최고 수준의 중간 유분 크랙 스프레드에 힘입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짚었다. 정유사들은 걸프 지역 수출 차질을 메우기 위해 새로운 교역 경로를 개척하며 대응하고 있지만, 이는 근본적으로 여유 있는 대응이라기보다 빠듯한 시스템을 겨우 돌리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
| 방출할수록 낡아가는 저장 동굴
SPR은 텍사스·루이지애나의 지하 소금 동굴에 저장되는데, 방출 자체가 이 저장 시설을 물리적으로 소모시킨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에너지 전문가 골드윈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비축유를 방출할 때마다 저장 동굴과 설비의 노후화가 가속된다고 설명했다. 미 회계감사원(GAO)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응해 단행된 1억 8000만 배럴 방출(SPR 역사상 최대 규모)을 두고 ‘계획에 없던 스트레스 테스트’였다고 규정한 바 있다.
이번 이란 전쟁 대응 방출은 그 규모(1억 7200만 배럴)에서 2022년 우크라이나 대응 방출에 버금간다. 대통령이 SPR 방출을 지시하는 빈도와 규모가 최근 들어 눈에 띄게 늘고 있는 셈인데, 이는 설비에 누적되는 부담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는 뜻이라고 CNBC는 짚었다.
| 재보충은 방출보다 훨씬 느리다
문제는 방출된 물량을 다시 채우는 속도가 훨씬 느리다는 점이다. 팟캐스트 ‘미네럴라이츠’가 인용한 RBN에너지 분석에 따르면, SPR이 이번 방출 이전 수준인 약 4억 1400만 배럴로 회복되려면 애초 알려진 ‘1년 이내’가 아니라 2028년 7월 무렵까지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원유 교환 계약을 통해 방출량보다 더 많은 물량이 돌아올 가능성은 있지만, 그 반환 일정과 비율 자체가 불확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탱크 트랜스포트에 따르면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도 SPR은 지난 6월 26일 주간 550만 배럴, 7월 3일 주간 620만 배럴, 7월 17일 주간 510만 배럴씩 계속 줄어드는 흐름을 보였다. 반대로 흥미로운 대목은, SPR이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것과 별개로 최근 난방유 가격은 갤런당 3.20달러 밑으로 떨어지며 한 달 새 약 13%, 2분기 기준 약 20% 하락했다는 점이다. 투자분석 매체 칼카인은 이를 SPR 감소보다는 원유 벤치마크 가격 전반의 하락세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하면서, 필립스66·마라톤페트롤리엄 등 난방유 비중이 큰 정유사들이 이런 가격 하락 국면에 대응하고 있다고 전했다.
| 아시아는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미국이 비축유를 소진하는 동안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놀리지소싱은 중국과 인도의 대규모 투자로 이 지역 비축유 용량이 빠르게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국영기업 시노펙과 CNOOC(중국해양석유)를 비롯한 주요 기업들이 저장능력 확충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는데, 이는 에너지 안보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나타난 구조적 변화로 풀이된다.

팩트체크 매체 팩추얼리는 지질학적으로 확인된 세계 원유 매장량 자체는 여전히 방대하지만, 시장을 안정시키는 실질적 완충 장치인 비상 비축유와 상업 재고는 이례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짚었다. 이 때문에 시장은 당분간 생산 확대와 핵심 병목 지역의 해상 운송 정상화, 소비 둔화에 기대어 추가 가격 충격을 피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는 평가다.
| 남은 위험
결국 관건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정제설비가 이미 풀가동 중인 상태에서 예기치 못한 추가 공급 차질이 발생할 경우 이를 흡수할 여력이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노후화가 진행 중인 SPR이 실제 위기 상황에서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많은 물량을 다시 시장에 공급할 수 있는지다. 에너지 업계 안팎에서는 이란 전쟁이 어떻게 마무리되든, 이번에 얇아진 완충 장치가 정상 수준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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