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탄소 제로(Net Zero)’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이를 위해 청정 에너지의 생산과 공급망 확충, 사회 전반의 전기화 확대, 에너지 효율 개선 등 다양한 이산화탄소 감축 전략이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산업 부문이 동일한 속도로 에너지 전환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력 생산 부문은 풍력, 태양광 등 이산화탄소 배출이 거의 없는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지만, 석유화학·철강·시멘트와 같은 중화학 산업은 공정 특성상 불가피하게 이산화탄소를 부산물로 발생시킨다. 따라서 중화학 산업은 이산화탄소를 효과적으로 관리함으로써 대기로의 배출을 최소화하는 솔루션이 요구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핵심 해법이 바로 이산화탄소 포집·활용·저장(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 CCUS)이다.
CCUS는 포집, 수송, 저장 또는 활용 3단계로 구성된다. 플랜트 등 대형 배출원 또는 대기 중에서 직접 포집(capture)한 이산화탄소는 배관망 또는 액화 이산화탄소 운반선(LCO2 carrier) 등을 통해 취합지까지 수송(transport)된다. CCUS는 포집된 이산화탄소의 처리 방식에 따라 두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는 CCS(Carbon Capture and Storage)로, 이산화탄소를 심도 1 km 내외의 고갈된 노후 유·가스전(depleted oil·gas field)이나 염수층(deep saline aquifer) 같은 지하 저장층에 주입하여 영구적으로 저장하는 방식이다. 둘째는 CCU(Carbon Capture and Utilization)로, 이산화탄소를 유·가스전에 주입해 생산증진(Enhanced Oil Recovery; EOR) 수단으로 활용하거나 화학 원료·신소재·합성연료(e-fuel)·건자재 등 제품 생산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이 둘은 독립적으로 작동할 수도 있으나 상호 보완적으로 결합될 수 있으며, 중화학 산업의 탄소 배출을 실질적으로 감축하는 핵심 솔루션으로 주목받고 있다.
호주 Global CCS Institute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 세계에서 개발(development), 건설 중(in construction), 또는 운영 중(operational)인 대규모(100만 톤/연 내외) CCUS 프로젝트의 수는 2023년 대비 60% 증가하여 628건에 달한다(그림 1). 전 세계 이산화탄소 포집용량 또한 4억1600만 톤/연(운영 중 포집용량 5100만 톤)으로 전년 대비 15% 증가하는 등 매년 수천만 톤 규모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그림 2). 국제에너지기구(International Energy Agency; IEA)의 넷제로 시나리오는 2050년 CCUS에 의한 전 세계 이산화탄소 포집용량이 연간 60억에서 70억 톤 수준으로 현재 대비 10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현재 운영 중인 50개 CCUS 프로젝트는 모두 CCS에 해당하지만, CCU 역시 경제성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 및 실증 프로젝트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즉, CCUS는 미래지향적 기술이 아니라 기술성, 상업성, 지속가능성 세 측면에서 모두 ‘실현 가능한 기후에너지솔루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CCUS는 결코 새로운 개념이 아니며 이미 수십 년간 검증된 기술이다. 1970년대 미국 서부 텍사스 퍼미안 분지(Permian Basin)에서는 석유산업에서 원유 생산량을 증진하기 위해 이산화탄소를 주입하는 EOR이 본격적으로 활용되었으며, 이후 기후변화 대응이 전 지구적 과제로 부상하면서 CCUS는 탄소중립에 기여하는 기후에너지솔루션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세계 최초의 대규모 CCS 프로젝트인 노르웨이 슬라이프너(Sleipner)는 1996년부터 북해 해저 사암층에 연간 약 10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저장하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누적 약 2000만 톤 수준의 지중(地中)저장을 성공적으로 달성하였다. 최근에는 CCUS가 국가 단위를 넘어 국경 간 협력을 기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올해 8월 노르웨이의 노던라이트(Northern Lights) CCS 프로젝트가 첫 상업 규모 주입을 성공적으로 개시하며 연간 150만 톤 규모의 이산화탄소를 해저 2600m 사암층에 안전하게 저장하기 시작했다. 이는 세계 최초의 상업적 이산화탄소 수송·저장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브레빅(Brevik) 시멘트 공장에서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액화 이산화탄소 운반선을 통해 서부 해안 외이가르덴(Øygarden)의 허브 터미널로 운송한 후, 해저 배관망을 통해 100km 떨어진 해상 지중저장소에 주입하고 있다. 포집원은 향후 네덜란드 등 타 유럽국가까지 다각화될 예정이다. 나아가 노던라이트 컨소시엄(토탈에너지스, 에퀴노르, 셸)은 올해 3월 연간 500만 톤 규모의 2단계 투자 결정까지 완료하는 등 유럽 산업계의 탈탄소화 기반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유럽 내 선도적 움직임은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며, 각국이 자국의 여건에 맞는 CCUS 전략을 마련하고 국제 협력을 강화하는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유럽은 ‘넷제로 산업법’을 통해 보조금과 투자 유인을 확대하고 있으며, 이에 발맞추어 아시아·태평양 지역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호주와 말레이시아는 이산화탄소 저장소를 확보해 수출형 탄소저장국으로 도약하고 있고, 일본과 한국은 포집된 이산화탄소를 인접국으로 수송하는 국경 간 CCUS 모델을 준비하고 있다. 아직 국제 CCUS 시장은 금융·제도·사회적 기반의 다양한 과제를 안고 있으나,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 합의에 따른 연 3000억 달러(한화 약 419조 3400억 원)의 기후금융(New Collective Quantified Goal; NCQG)의 활용, 탄소 크레딧 메커니즘(Paris Agreement Crediting Mechanism; PACM)의 정착, 런던의정서 개정 및 ISO/TC265* 표준화 논의, 지역 간 네트워크 출범 등을 통해 점진적으로 해법을 마련해가고 있다. 더불어 사회적 신뢰 확보를 위한 대중 인식 개선 활동, 장기 모니터링 체계, GHGT(Greenhouse Gas Control Technologies Conference) 등 국제 학술·산업 교류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ISO/TC265: 국제표준기구의(ISO)의 이산화탄소 포집, 수송, 지중저장 기술위원회
이처럼 CCUS가 글로벌 차원에서 빠르게 확산되는 가운데, 국내 민간기업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CCUS 사업을 추진하는 기업은 SK이노베이션이다. SK이노베이션의 저탄소 LNG 사업을 담당하는 E&S는 호주와 동티모르 사이에 위치한 바유운단(Bayu-Undan) 천연가스전의 생산 종료 이후 기존 생산설비를 연 1000만 톤 탄소 저장이 가능한 대규모 CCS 플랜트로 전환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곳에는 올해 말 상업 가동을 목표로 하는 호주 바로사(Barossa) 가스전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뿐 아니라, 향후 국내 블루수소 사업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까지 장거리 수송 과정을 거쳐 저장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유운단 프로젝트가 본격 시행될 경우, 이 고갈 가스전은 아시아 최대급 CCUS 허브로 재탄생할 것으로 기대된다.
SK어스온은 호주 카나르본 분지 G-15-AP 광구의 공동탐사권을 확보하였으며, 향후 6년간 저장 용량과 경제성을 평가한 후 사업성이 검증되면 2030년부터 본격적으로 CCS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 프로젝트는 2030년 200만 톤, 2040년 500만 톤, 2050년 1600만 톤 이상의 단계적 저장 능력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는 국내에서 포집한 탄소를 해외로 운송해 저장하는 ‘한국형 CCS 밸류체인’ 구축의 초석이 될 것이다. 이러한 SK이노베이션의 행보는 한국이 제한적인 국내 저장소 여건을 극복하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CCUS 허브로 도약할 수 있는 현실적 기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SK이노베이션의 사례는 국내 CCUS 유관 기업의 성장 방향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한국이 글로벌 CCUS 시장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현재 1톤당 1만원 정도인 우리나라 탄소배출권 가격이 CCUS 사업화를 뒷받침하기에 적절한 수준인지, 유럽연합 배출권거래제(EU-ETS)와 같은 국제 사례를 참고해 봄 직 하다. 동시에 비즈니스 모델의 구체화, 인센티브 확대, 세제 혜택 등은 CCUS가 안정적인 투자처로 인식되게 하는 좋은 매개체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또한 IEA,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IPCC), 녹색기후기금(Green Climate Fund; GCF) 등 국제기구와의 협력을 통해 금융적·정책적 신뢰성을 확보하고, 국내 저장소 여건의 한계를 고려해 해외 저장 협력 모델을 적극 검토해 볼 수 있겠다. 한국은 CCUS를 단순한 감축 기술이 아닌 산업 경쟁력 강화 전략으로 인식해야 한다. 아시아 지역에서의 협력과 인프라 조성을 선도함으로써, 한국은 2030 NDC와 2050 탄소중립 목표를 실현하는 동시에 국제 기후 거버넌스에서 전략적 리더십을 강화할 수 있다. 이는 곧 국내 선도 기업들이 더욱 활발히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제도적·경제적 토대를 마련하는 일과 직결된다.
무엇보다 CCUS는 ‘선택적 기술’이 아니라 ‘불가피한 기술’이다. 배출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없다. 줄일 수 없는 탄소를 포집하고, 활용하며, 저장해야만 완전한 탄소중립 구조를 구축할 수 있다. 산업의 연속성과 기후 대응을 동시에 추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 바로 CCUS이다. 이 과정에서 SK이노베이션은 선제적인 기술 개발과 다양한 산업 적용을 통해 단순한 기후환경 대응을 넘어, 미래 에너지 산업의 경쟁력 확보와 글로벌 탄소중립 시장에서의 위상 제고에 기여하고 있다. 탄소는 이제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관리하고 활용해야 할 자산이다. 앞으로 SK이노베이션이 CCUS 사업을 더욱 체계적으로 확대한다면, 이는 한국의 탄소중립 달성은 물론 글로벌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리더십을 강화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CCUS는 근시일내 ‘실현 가능한 기후에너지솔루션’이며, SK이노베이션이 그 최전선에서 지속적으로 나아가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