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재의 에너지 프리즘] 미국 대형 전력망 국가 비상 사태 선포: 미국 AI 전력 공급망에서 배제된 중국

2026. 08. 31 한국투자증권 에너지/석유화학 애널리스트 이충재 4분 읽기

💡 핵심 요약

  • 트럼프 대통령의 전기차 세액공제 폐지와 인프라 예산 중단 등 내연기관 중심 정책으로 한국 2차 전지 기업들이 합작 사업 무산 및 판매 부진 등 어려움을 겪음
  • 미 대형 전력망 비상사태 선포(행정명령 14420)로 디지털 백도어 등 안보 위협이 제기된 중국산 인버터·BESS·전력 소프트웨어 등 전력 인프라 전반의 미국 시장 입지 및 수출이 사실상 차단됨
  • 빅테크 데이터센터 가동을 위한 BESS 수요가 폭증하는 가운데, 미국 내 대규모 생산 설비를 갖춘 한국 2차 전지 기업들이 중국 배터리 퇴출에 따른 반사이익과 함께 계약 협상력 및 중장기 수익성을 크게 높일 전망
| 트럼프 전기차 보조금 정책 변화 속 한국 2차 전지 업계의 과제

2025년 1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연방 정부 건물에 설치되어 있던 전기차 충전기 8,000기를 철거했습니다. 이미 설치가 끝난 설비를 굳이 돈을 들여 뜯어내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몇 주 후 백악관에서 Tesla 전기차 홍보 행사를 열기도 했지만, 결국 전기차 구매 관련 세액공제는 폐지되었습니다. 충전 인프라 구축 관련 예산 지원도 중단되었고, 내연기관 자동차의 연비 규제 역시 완화되었습니다. 

그 결과 미국 전기차 시장 확대를 전제로 미국 완성차 업체들과 합작 법인을 설립했던 우리나라 2차 전지 업체들은 사업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했습니다. 합작 사업도 대부분 무산되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내연기관 자동차 중심 정책으로 우리나라 2차 전지 업체들은 2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판매 부진, 수익성 악화 등의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 미 대형 전력망 비상사태 선포, 중국산 인버터 보안 이슈 부상

그런데 8월 26일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대형 전력망(Bulk-Power System)에 대한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행정명령(Executive Order 14420)을 발표했습니다. 선포문에는 특정 외국 세력(Certain foreign actors)이 미국 대형 전력 시스템의 취약점을 악용하고 있으며, 이는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라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근거로는 원격 조작을 가능하게 만드는 디지털 백도어(digital backdoor) 등을 들고 있습니다. 실제로 2025년 5월 Reuters는 ‘중국산 태양광 발전용 인버터에서 기능을 알 수 없는 통신 장치가 발견됐다(Rogue communication devices found in Chinese solar power inverters)’는 보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EU도 2026년 5월 중국산 태양광 발전용 인버터 사용을 막기로 했습니다.

| 미국 에너지부 통제 강화로 달라지는 BESS·전력 설비 공급망

이번 행정명령을 통해 대형 전력망 구축 관련 모든 분야가 규제 대상이 됩니다. 발전기, 변압기, 차단기, 인버터와 BESS(Battery Energy Storage System), UPS에 전력 통제용 소프트웨어까지 거의 모든 품목이 행정명령에 따른 규제를 받습니다. 규제 조치도 강력합니다. 에너지부 장관(DOE)이 적격 업체 인정 기준을 만들고, 이를 통과한 업체의 제품만 미국 대형 전력망에 설치할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2015년 중국 정부가 자국 업체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려고 했던 ‘2차 전지 화이트 리스트’와 유사합니다. 이에 더해 이미 설치된 설비도 에너지부 장관이 지시하면 철거와 교체에 준하는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지난번 칼럼에서 다뤘던 태양광 발전 관련 품목에 대한 최저수입가격제와 같은 방향의 정책입니다. 폴리실리콘, 웨이퍼 등은 외부에서 몰래 조작할 수 없습니다. 폴리실리콘을 녹여야 잉곳이 되고, 잉곳을 얇게 썰어야 웨이퍼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중국산 폴리실리콘부터 웨이퍼까지 최저수입가격제를 시행하기로 했습니다. 기존 전력 설비의 철거 및 교체까지 가능하게 한 이번 행정명령과 미국에서 웨이퍼를 생산할 경우 원가가 원료인 폴리실리콘 가격보다 낮아지도록 한 최저수입가격제 모두 이례적인 수준의 강력한 정책입니다.

|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확대, 중국 손잡은 포드 발 묶이나

2026년 상반기 세계 BESS 시장 규모는 461.3GWh로 전년 동기 대비 71% 성장했습니다. 같은 기간 전기차용 2차 전지 수요는 608.5GWh로 전년 동기 대비 20% 늘어났습니다. 이제 BESS용 2차 전지 수요는 전기차용의 75% 수준까지 커졌습니다. 2027년에는 BESS 수요가 전기차를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빠르게 성장하는 미국 BESS 시장에서 중국 업체들은 올해 상반기 약 75.4%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했습니다. Schneider Electric, Fluence Energy 등 미국 BESS 업체들은 중국 셀(Cell)을 조립해서 시스템을 판매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해왔습니다.

위 업체들을 포함해 CATL과 협력해 BESS 사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던 Ford가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합니다. 기술 라이선스 방식으로 건설된 Ford의 LFP 배터리 생산 설비는 핵심 원료와 공정 기술을 사실상 100% 중국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례적으로 강력한 수위의 행정명령을 감안할 때 Ford의 BESS 사업은 추가 수주 등 사업 확대가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제 미국에 GWh급으로 BESS를 설치하려는 업체가 중국산 셀을 사용할 가능성 또한 사실상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 빅테크 BESS 수요 폭증 속 중국산 차단… 한국 배터리로 주도권 이동

미국 전력 산업 상황을 고려할 때 신규 데이터센터 가동을 위해서는 BESS가 필수입니다. 이번 비상사태 선포로 중국 2차 전지의 미국 수출은 사실상 불가능해졌습니다. 현재 미국의 우방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나라, EU, 일본 등을 제외하면 2차 전지를 생산하고 있는 국가는 중국뿐입니다. 특히 미국 2차 전지 생산 설비는 사실상 우리나라 업체들만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미국 빅테크(Big Tech) 또는 전력 업체들은 우리나라 업체들 외에는 BESS 구축에 필요한 2차 전지를 구할 데가 없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2차 전지 업체들의 미국 BESS 분야 매출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에 더해, 향후 2차 전지 공급 계약에서 우리나라 업체들의 협상력이 과거와 달리 크게 높아질 것이라 생각됩니다. 높아진 협상력은 판매 단가와 계약 조건 개선에 따른 중장기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번 행정명령을 계기로 우리나라 2차 전지 산업이 앞으로는 그간의 노력에 걸맞은 보상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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