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린란드를 둘러싼 미국-EU의 갈등, 에너지 안보가 주요 이슈로 부상
■ 미국 LNG의 절반 이상이 유럽으로 수출, 미국의 LNG 카드 배제할 수 없어
■ 에너지 자립을 위해 중국은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화석연료 생산·비축 극대화
2026년이 시작되고 어느덧 20일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베네수엘라 니콜라 마두로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미국으로 압송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그 충격이 수습되기도 전에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고위직 인사들의 ‘그린란드 병합’ 발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1월 19일 스위스에서 시작된 다보스 포럼에서도 초반에는 AI 산업의 미래와 규제 혁신 관련 발언들이 주목을 받았지만, 중반 이후는 ‘그린란드 병합’을 둘러싼 미국과 EU의 갈등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같은 기간 북극 한파(Polar Vortex)가 북미 대륙을 전체를 덮쳤습니다. 1월 16일 $3.1/MMBtu에 거래되던 미국 천연가스(Henry Hub)는 1월 22일 최고 $5.5/MMBtu까지 가격이 상승했습니다. 영업일 기준 3-4일 사이에 미국 천연가스 가격이 80% 가까이 올랐습니다.
그린란드를 둘러싼 미국과 EU의 갈등, 북극 한파에 따른 미국 천연가스 가격 상승은 동시에 벌어졌지만, 두 사건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기상 이변과 국가 간 갈등은 성격이 전혀 다른 별개의 사건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 사건을 보면서, 향후 미국이 국방력이 아니라 에너지를 이용해 유럽을 비롯해 갈등 관계에 있는 국가들을 압박할 가능성 또한 열어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미국은 2017년 뒤늦게 LNG 수출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지금은 전통의 카타르, 호주를 제치고 세계 1위 LNG 수출국이 되었습니다. 미국은 2025년 1.1억톤의 LNG를 수출했고,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2026년 미국 LNG 수출량은 2025년 대비 9-10%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EIA의 통계에 따르면 2025년 10월 누적 기준으로 미국 LNG의 절반 이상이 유럽으로 수출됩니다. 같은 기간 유럽이 수입한 LNG의 57%가 미국산입니다. 2024년 45%였던 유럽의 미국 LNG 수입 의존율이 2025년 57%로 높아졌습니다.
유럽은 2022년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에 의존하던 천연가스를 미국 LNG로 대체했습니다. EU는 2027년부터 러시아 천연가스 수입을 완전히 중단하겠다는 합의도 이뤄냈습니다. EU는 러시아가 빠진 자리를 전통의 우방 미국으로 대체했습니다. 유럽은 자신들을 위협하던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대체하기 위해 미국 LNG 수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고, 2022년 바이든 행정부는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했습니다.
그런데 러-우 전쟁이 시작되고 4년이 흐른 지금 미국은 그린란드 병합 문제로 유럽과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유럽의 에너지 안보가 그 어느 때보다 취약해진 상황입니다. 유럽의 천연가스 도입선이 러시아에 이어 미국까지 막히면, 중동, 호주 정도만으로 선택이 제한됩니다. 현 시점에서 미국이 유럽으로의 LNG 수출을 중단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보입니다.
하지만 향후 미국 천연가스 가격이 소비자 물가를 자극하고, 산업 경쟁력을 훼손시킬 수준까지 오른다면 트럼프 행정부는 바이든 행정부 때처럼 신규 LNG 수출을 막거나 즉각적인 수출 제한 조치를 내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현재 북극 한파로 며칠 사이에 80%까지 올라간 천연가스 가격은 앞으로도 다양한 변수로 가격이 오를 수 있습니다. 기후 급변으로 겨울철의 북극 한파, 여름철의 폭염 등에 따른 천연가스 가격 폭등은 언제든 재현될 수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력을 많이 사용하는 미국 빅테크 업체와 데이터센터 업체가 향후 발생할 전력 요금 상승에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발표된 미국 내 데이터센터 건설 계획이 예정대로 추진되면 2030년 미국 전력 수요는 2025년보다 약 900테라와트시(TWh)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900TWh의 전력을 생산하려면 연간 8천만톤에서 1억톤가량의 천연가스가 추가로 필요합니다. 이는 현재 미국의 연간 LNG 수출 물량과 유사한 수준입니다. 미국의 연간 천연가스 생산량이 7-7.5억톤 수준인 현재 상황에서 갑자기 1억톤의 천연가스를 추가로 생산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미국 정부는 AI 산업을 위해 LNG 수출을 중단하는 비교적 쉬운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린란드를 둘러싼 미국과 EU의 갈등이 AI 산업을 위한 안정적 전력 공급, 미국 물가 안정화 등과 맞물리면 미국 LNG가 유럽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국제 유가가 $150/BBL까지 상승했던 2000년대의 에너지 안보 이슈가 AI 산업과 맞물려 다시금 불거질 수 있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안타깝게도 유럽은 이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크게 높였지만, 2025년 4월 벌어졌던 스페인 대정전에서 보듯 유럽의 전력 인프라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지금보다 더 높아질 경우 안정성을 보장하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유럽의 낮은 에너지 자립도는 미국이 그린란드 병합을 강하게 요구할 수 있는 약점이 될 수 있습니다.
에너지 안보, 에너지 자립 이슈와 관련해 최근 중국의 움직임도 흥미롭습니다. 2025년 중국은 사상 최대 규모의 석유를 수입했습니다. 2025년 12월 1,300만BPD(Barrel Per Day)가 넘는 석유를 수입했습니다. 석유 생산량 역시 2025년 432만BPD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천연가스 생산량도 2619억㎥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석탄 역시 48.3억톤을 생산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이에 반해 2025년 중국의 LNG 수입량은 2024년 대비 11% 감소했습니다. 2030년 러시아와 중국을 잇는 가스관(Power of Siberia 2)이 개통되면, 중국은 현재 LNG 수입량의 절반을 대체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이 에너지 위기를 겪게 될 것이란 예상을 한 사람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찬가지로 미국과의 갈등으로 유럽이 에너지 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예상 또한 지금은 전혀 근거 없는 소설 같은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에서 전기차를 가장 많이 만들고, 태양광/풍력/수력/원자력 등 비화석 연료 발전 비중이 빠르게 올라가고 있는 중국은 2025년 화석 연료의 생산과 수입 모두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중국은 비화석 연료의 발전 비중을 높이면서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화석 연료의 자립도와 비축량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에너지 공급이 무한정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시대가 점점 끝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세계적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기업들도 원료 공급선을 다변화하고, 과거 대비 재고 비축 물량을 늘려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정부 차원에서도 특정 지역과 국가에 편중된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공급선 다변화와 에너지 비축 물량 확대 등에 대한 정책 지원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 관련 글
- [이충재의 에너지 프리즘] 2026년 세계 에너지/석유화학 산업 전망: 데이터센터라는 새로운 수요가 만들어낼 변화
- [이충재의 에너지 프리즘] Vertiv가 밝힌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의 미래와 중국의 발 빠른 대응
- [Tech Chat] 도시를 바꾼 에너지 전환, LNG 시대
- [AI 에너지 브리프] 전환기 놓인 에너지 업계, 2026년에는 ‘균형 잡기’가 관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