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가 한국 정부와 주요 기업에 약 26만 장 규모의 최신 GPU 공급을 약속했다는 소식은 국내 AI 산업에 큰 기대를 안겼다. 생성형 AI와 초대형 데이터 분석 시대에 GPU는 단순한 반도체를 넘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전략 자산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대규모 GPU 도입은 동시에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이 막대한 연산력을 우리는 과연 안정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가?” 그 핵심에는 전력과 함께 ‘열(Heat)’이라는 보이지 않는 문제가 있다.
AI용 GPU는 성능이 향상될수록 더 많은 전력을 소비하고, 그 대부분은 열로 전환된다. 최신 GPU 한 개의 설계 전력은 과거 CPU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고, 수십 장의 GPU가 빽빽이 들어선 서버 랙은 그 자체로 거대한 발열원이 된다. 문제는 이 열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면 GPU가 스스로 성능을 낮추거나, 장비 고장과 수명 단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얼마나 많은 GPU를 확보했는가”보다 “이 GPU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식힐 수 있는가”가 AI 인프라 경쟁의 관건이 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데이터센터 냉각 기술의 패러다임 전환을 촉진하고 있다. 전통적인 공랭식 냉각(Air cooling)은 차가운 공기를 순환시켜 서버를 식히는 방식으로, 비교적 낮은 전력 밀도에서는 경제적이었다. 그러나 GPU 중심의 AI 데이터센터에서는 랙당 전력 밀도가 급격히 높아지며, 공조 설비와 팬에 들어가는 전력 비중이 크게 늘어나는 한계가 드러났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수랭식 냉각(Liquid cooling), 특히 GPU나 CPU에 직접 냉각판을 부착하는 직접 칩 냉각 방식(D2C, Direct-to-Chip)이 도입되었지만, 물을 사용하는 만큼 누수와 전기적 안전성 관리라는 부담이 남아 있다.
이 공랭식과 수랭식 냉각의 한계를 동시에 넘기 위한 대안으로 주목받는 기술이 바로 액침냉각(Immersion cooling)이다. 액침냉각은 서버를 전기가 통하지 않는 특수 냉각유에 직접 담가, 칩과 전원부 등 발열 부위에서 발생한 열을 액체가 곧바로 흡수하도록 설계된 방식이다. 공기보다 열전도율과 열용량이 훨씬 큰 액체를 활용하기 때문에, 같은 조건에서도 훨씬 적은 전력으로 안정적인 냉각이 가능하다. 팬이 필요 없어 소음과 진동이 줄고, 먼지와 습기 유입도 차단해 하드웨어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점 역시 큰 장점이다.
액침냉각은 작동 원리에 따라 단상(Single-phase)과 2상(Two-phase) 방식으로 나뉜다. 단상 액침냉각은 냉각유(Immersion cooling fluid)가 끓지 않는 상태에서 대류로 열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구조가 비교적 단순하고 산업 현장에 빠르게 적용되고 있다. 반면 2상 액침냉각은 냉각유(Immersion cooling fluid)가 끓으며 액체에서 기체로 변할 때 흡수하는 ‘잠열(latent heat)’을 활용한다. 이 방식은 이론적으로 훨씬 높은 냉각 성능을 제공해, 랙당 전력 밀도가 50kW, 100kW를 넘는 초고밀도 AI 서버 환경에서 핵심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다만 냉각유 특성, 표면 구조 설계, 장기 안정성 등 풀어야 할 기술적 과제가 많아 연구 개발이 병행되고 있다.
시장 움직임도 분명하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액침냉각 도입을 목표로 R&D 투자와 자체 실증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이 과정에서 액침냉각의 경쟁력은 단순한 ‘시스템’이 아니라 ‘냉각유(Immersion cooling fluid)’ 개발과 상변화 발생 활성화를 위한 ‘표면구조 설계’ 기술에 있다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다.
냉각유는 비전도성이어야 하고, 전자 장비와 장기간 접촉해도 화학적으로 안정적이어야 한다. 환경성과 안전성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 이러한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3M, 쉘과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경쟁에 나섰고, 국내에서는 SK엔무브 등이 기술 내재화에 나서고 있다. SK엔무브는 데이터센터용 액침냉각유를 개발해 2022년 미국 액침냉각 전문기업 GRC에 투자하고, SK텔레콤 데이터센터 실증을 통해 기존 공랭식 대비 냉각 전력을 크게 줄이면서도 GPU 온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2상 액침냉각(Two-phase immersion cooling)의 효율을 극대화하려면 비등(boiling) 냉각이 원활히 일어나도록 표면 구조를 설계하고, 기포의 거동을 정밀하게 제어해야 한다. 나노와이어 표면을 적용하거나, 3D 프린터로 특수 구조를 구현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이는 모두 기포 생성을 촉진해 냉각 성능을 높이기 위한 시도다. 특히 비등 냉각(열전달)에서는 임계 열유속(CHF)과 열전달계수(HTC)를 동시에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기존 연구의 상당수는 물(H2O)을 대상으로 수행됐다. 액침냉각용 냉각유는 물과 표면장력, 젖음성(wettability) 및 위킹(wicking)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표면구조 설계가 그대로 적용되기 어렵다. 결국 냉각유 개발과 이에 최적화된 표면구조 설계를 함께 진행해야 데이터센터용 2상 액침냉각의 실질적인 성능 향상이 가능하고, 그 상호작용을 체계적으로 데이터베이스(DB)로 구축해야 차세대 데이터센터 액침냉각 기술을 선도할 수 있다.

액침냉각 기술의 적용 범위는 AI 데이터센터에 그치지 않는다. 전기차 배터리와 에너지저장장치(ESS)처럼 고발열 전동화 인프라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다. 배터리는 열폭주가 가장 큰 안전 리스크다. 비전도성 냉각유에 직접 담그는 액침 방식은 열을 균일하게 제어하면서 화재 위험을 구조적으로 낮출 수 있다. 이러한 확장성은 산업 간 경계도 허물고 있다. 냉각유 공급을 넘어, 하드웨어와 냉각기술을 결합한 통합 솔루션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SK엔무브는 ESS, 전기차 배터리, 초급속 충전 인프라로 적용 범위를 넓히며 다양한 파트너와 협업하고 있다. 결국 앞으로는 얼마나 다양한 기업들이 견고한 협업 체계를 선제적으로 구축하느냐가 액침냉각 시장의 주도권을 가르게 될 것이다.
젠슨 황의 GPU 26만 장 약속은 분명 한국 AI 산업의 도약을 상징한다. 그러나 그 연산력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진짜 경쟁력은 전력과 열을 다루는 기술에 있다. 공랭식과 수랭식 냉각의 한계를 넘어, 액침냉각유로 고밀도 GPU의 열을 직접 제어하는 기술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 조건이 되고 있다. AI, 에너지, 모빌리티를 관통하는 ‘열관리’라는 공통 과제를 선제적으로 해결하는 나라만이, AI 시대의 인프라 경쟁에서 진정한 우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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