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영의 에너지 지오그라피] 베네수엘라와 미국의 서반구 전략

2026. 01. 20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수석전문위원 5분 읽기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 원유 매장량을 기반으로 OPEC 창설에 기여하며 한때 석유 강국이었으나, 반미 정책과 경제 위기로 쇠퇴

트럼프 대통령은 서반구 전략을 앞세워 베네수엘라에 압박을 가했고, 끝내 올해 1월 마두로 대통령을 미국으로 압송

■ 화석에너지를 둘러싼 강대국 간의 갈등은 더욱 빈번해질 것

1월 3일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대통령이 미국 특수부대에 의해 체포되어 압송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어안이 벙벙해졌다.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을 보여주는 트럼프 대통령의 퍼포먼스는 2026년에도 계속될 것이라는 신호였다. 베네수엘라는 3030억 배럴에 이르는 세계 최대 원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다. 초중질유와 타르샌드 등 비전통(non-conventional) 원유는 1조2천억 배럴에 이른다. 천연가스도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다. 이렇게 많은 화석에너지를 보유하고 있지만 베네수엘라 전력의 90%는 수력을 통해 생산되고 있다. 에너지 관점에서 보면 세계에서 가장 복받은 나라다.

1920년대부터 석유 생산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베네수엘라는 1938년 미국, 소련에 이은 세계 3위의 석유 수출국가가 되었다. 미국 턱 밑에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그만큼 베네수엘라는 압도적인 미국의 힘을 불편해했다. 전쟁이 한참이던 1943년 베네수엘라는 석유 판매 수익의 50%를 정부 몫으로 책정하는 ‘탄화수소법’ 제정을 통해 국가 차원의 자원 관리를 선도하는 국가가 되었다. 1950년대 중동 산유국들의 원유 생산량 증가가 본격화되자 베네수엘라는 중동 산유국과의 가격 경쟁 대신 원유 생산 국가들 간 협의체를 구성해 협상력을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에 따라 1960년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를 끌어들여 OPEC을 결성했다. 일반적으로 OPEC은 중동 국가들이 주도해 만든 것처럼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베네수엘라의 경험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19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꾸준히 하루 300만 배럴을 생산하던 베네수엘라의 원유 생산량은 최근 90만 배럴 내외까지 줄어들었다. 변화의 중심에는 2013년 사망한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있다. 극단적 빈부격차에 시달리던 베네수엘라를 개혁하겠다는 공약으로 1998년 대통령으로 당선된 차베스는 무상 의료서비스를 포함한 공공 서비스 강화, 토지개혁 및 부의 집중 완화를 시도했다. 소요 재원은 2000년대 들어 배럴당 100달러를 훌쩍 넘는 원유수출로 조달했다. 차베스 정책은 무조건 퍼주기로 간주되어 비판 대상이 되었지만 사실 국가라면 당연히 제공해줘야 하는 최소한의 기본적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국영석유회사(PDVSA)의 수익을 국가가 마음대로 가져다 쓰고 해외 기업들의 자산을 국유화하면서 베네수엘라 석유산업은 투자 부족과 시설 노후로 인한 생산성 저하의 악순환을 반복했다.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던 것은 반미사회주의 노선이었다. 노골적 반미 노선을 내걸었던 차베스는 미국과 맞서는 자신을 지지하는 나라들에 대해 대규모 경제지원을 해주었다. 대규모 의료 및 기술 인력을 파견해준 쿠바와는 아주 긴밀한 관계를 맺었고, 중국, 이란을 비롯한 미국 대항 세력들과 관계를 강화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 베네수엘라에서 대량의 원유를 수입해야 하는 미국으로서 뾰족한 대응방안은 없었다.

하지만 2008년 이후 유가가 폭락하고 미국의 셰일 혁명이 본격화되면서 상황은 뒤바뀌기 시작했다. 유가 급락으로 베네수엘라 재정은 부족해졌고 에너지 자급을 달성한 미국은 제재와 압박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차베스 대통령 후계자인 마두로 대통령은 기존 노선을 고수하면서 쿠바와의 연대를 강화하고 미국과 대립구도를 이어갔다. 이 와중에 급등하는 물가와 정치적 탄압으로 인해 베네수엘라 경제는 붕괴하였으며 80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은 난민이 되어 중남미 여러 나라를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2025년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안보전략의 최우선 순위를 서반구에 두는 결단을 내렸다. 아메리카 대륙과 그린란드 그리고 카리브해를 포함하는 서반구는 전통적인 미국 세력권이었다. 미국의 뒷마당이었지만 21세기 들어 미국은 이 지역을 방치하는 모습을 보였고 중국은 그 틈을 타고 베네수엘라를 비롯해 페루, 브라질 등 중남미 국가들과의 관계를 강화하였다. 첫 번째 임기 동안 중국과의 경쟁을 본격화한 트럼프로서는 서반구 지역에서 자신의 세력을 명확히 하는 것이 중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전제조건으로 인식했다. 특히 베네수엘라를 포함한 중남미 지역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대규모 난민 유입은 미국의 안보와 사회 안정을 위태롭게 하는 요소로 여겨졌다.

2025년 8월부터 베네수엘라 주변지역에 대규모 군사력을 배치하면서 압박 수위를 높이던 미국은 마두로 대통령이 끝까지 망명이나 퇴임할 의사가 없음을 고수하자 기습적인 작전을 통해 그를 체포함으로서 상황을 일거에 바꿔놓았다. 미국은 마두로 체포에도 불구하고 기존 정치세력의 존재를 그대로 인정하고 이들과의 협상을 통해 미국에게 유리한 구조를 형성하는데 만족할 뿐 과거와 같은 대규모 권력구조 개편에는 관심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과거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실패를 교훈 삼아 새로운 국가 건립이 아닌 미국의 이익을 보장받는 수준에서 기존 권력과의 타협을 선택한 것이다. 최소한의 비용과 리스크 범위 내에서 얻어낼 수 있는 최선의 결과에 만족한다는 것이 미국의 새로운 노선이라는 점을 보여준 셈이다.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의 체포는 국제질서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마두로 대통령의 제거로 가장 큰 위기에 직면한 곳은 쿠바다. 미국의 경제제재 강화로 큰 위기에 처해있던 쿠바에게 베네수엘라가 무상으로 제공해주던 원유는 생명줄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베네수엘라 원유를 통제하면서 쿠바는 결정적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대로 미국이 직접 군사력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쿠바는 붕괴할 가능성이 높아졌으며, 이렇게 될 경우 60년 넘게 이어지던 서반구에서의 반미 세력은 소멸하게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누구도 하지 못했던 업적을 달성하게 되는 셈이다.

베네수엘라를 거점으로 중남미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산해오던 중국으로서는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중국은 1000억 달러 이상의 직간접적인 원조와 투자를 이어오면서 베네수엘라의 생존에 큰 역할을 해왔고, 그 대가로 베네수엘라가 수출하는 원유 대부분을 가져갔다. 하지만 마두로의 체포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에너지 안보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다. 중국 원유 수입에서 베네수엘라 원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5% 미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미국으로서는 베네수엘라의 원유 생산과 파탄 상태인 경제를 정상화시켜야 하는 큰 과제를 안게 되었다. 원유 생산이 증가해야만 미국의 비용 부담 없이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50만 배럴의 증산을 위해서는 100억 달러 이상의 투자와 2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올해부터 본격화될 베네수엘라와 인접한 가이아나와 수리남의 원유생산이 본격화됨에 따라 국제 유가는 배럴당 50달러 중반까지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대규모 투자를 담당해야 할 미국 및 서방의 석유기업들로서는 망설일 수밖에 없다. 과연 마두로 대통령 체포 이후 베네수엘라와 중남미 지역이 미국의 구상대로 재편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분명한 점은 석유로 대표되는 화석에너지는 강대국의 전략에서 여전히 핵심적인 고려 요소이며, 이를 둘러싼 강대국 간의 다툼과 갈등은 더욱 빈번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강대국의 힘과 이기심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시대에 과연 우리는 어떻게 에너지 안보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 관련 글

- [이충재의 에너지 프리즘] 2026년 세계 에너지/석유화학 산업 전망: 데이터센터라는 새로운 수요가 만들어낼 변화

- [AI 에너지 브리프] 전환기 놓인 에너지 업계, 2026년에는 ‘균형 잡기’가 관건

- [기고] 정유 산업, 국가 시스템의 숨은 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