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에너지 브리프] 기술은 인간을 소외시킬 것인가, 버니 샌더스가 던진 질문

2026. 01. 27 SK이노베이션 6분 읽기

■ 미국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 AI가 인간의 일자리·정서·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함을 강조 [CNN 2025.12.28]

■ 기술혁명 때마다 언급되는 인간소외 현상

■ 정해진 미래, AI시대에 대한 도전과 응전

2025년의 마지막 일요일, CNN의 카메라는 한 노 정객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 美 상원의원은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얘기를 시작했다. “AI는 인류 역사상 가장 중대한 기술(the most consequential technology in the history of humanity)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를테면 AI로 인간이 필요없게 될 경우 가족부양, 의료비, 집세 등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등의 문제에 대해 말입니다. 사람들이 기계로부터 정서적 지지와 상호작용을 얻게 되는 미래가 과연 무엇을 뜻할까요?”

그의 인터뷰는 곧바로 주요 언론들을 통해 비중있게 다뤄졌다. 그의 인터뷰는 인류가 기술혁명의 역사 속에서 반복적으로 마주해온 오래된 문제를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기술의 파도에 휩쓸려 자신을 잃지 모른다는 존재론적 고백. 결국 인간소외에 대한 우려감의 표명이기도 하다.

| 산업혁명에서 자동화, 대량생산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소외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자본주의가 단순한 경제 활동을 넘어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체제로 굳어지게 하는 일대 사건이었다. 그 시작은 혼란이었다. 숙련된 직조공들은 기계의 조작자로 전락했고, 그들의 기술과 자부심은 무의미해졌다. 칼 마르크스는 이를 ‘소외’라는 개념으로 포착해냈다. 더 이상 자신의 노동 과정을 통제하지 못했고, 만드는 제품과 정서적 연결을 상실했으며, 공장의 톱니바퀴로 전락해 버린 소외된 노동자들. 1811년부터 1816년까지 영국 전역에서 직조공들은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간 기계를 파괴하는 극단의 러다이트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기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에 있다는 사실을 곧 깨달았다. 감정적 저항 대신에 연대를 통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 냈다. 법안들이 생겨났고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당도 출현하며 사회적 인프라를 구비하기 시작했다.

20세기 초 대공황은 인류에게 모든 것을 시장과 기술에만 모든 것을 내맡기면 사회가 붕괴될 수 있다는 뼈아픈 교훈을 안겨주었다. 국가가 경제에 개입하는 수정자본주의와 실업급여, 연금, 의료 보험을 제공하는 ‘복지국가’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세율 조정과 복지 정책을 통해 기술 발전의 이익을 사회 전체가 나누는 구조를 만들어 갔다. 환경을 탓하기 보다 그 환경을 면밀히 분석해가며 시스템의 결점을 극복해 나간 것이다.

20세기 초 헨리 포드의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은 또 다른 형태의 인간소외를 가져왔다. 자동차 공장의 노동자는 하루 종일 같은 동작을 수천 번 반복했다. 1936년 개봉한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는 이러한 소외를 날카롭게 풍자했다. 주인공은 기계의 리듬에 완전히 삼켜져 인간성을 잃어버린 존재로 그려진다. 효율성과 생산성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은 다시 한번 기계의 부속품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고임금 등 실질적 혜택을 받을 수 있었고 단순히 생산 도구가 아닌, 자신이 만든 물건을 직접 사는 소비의 주체로 나서게 된다. 이른 바 ‘소비자본주의’의 탄생으로 평가된다.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지면서 ‘8시간 노동, 8시간 휴식, 8시간 수면’이라는 슬로건이 실현되는 기반이 구축되었고 ‘여가’에 대한 논의들이 시작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주의 내부의 생산 방식 변화가 소외 극복의 단초를 제공한 셈이다.

기술이 발전할 때 인간이 소외되는 이유는 기계에 비해 인간의 가치가 낮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인류는 기술보다 현명했다. 교육 기회의 확대를 통해 인간의 가치를 높이며 존재론적 소외감을 극복해 나갔다.

| 디지털, 새로운 형태의 단절

1990년대 인터넷의 대중화와 21세기 스마트폰의 보급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소외를 만들어냈다. 이번에는 육체노동이 아니라 정신과 감정이 문제였다. 디지털 혁명은 분명 삶의 효율성을 크게 높여주었고 보다 투명한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소셜미디어는 수많은 사람들과 연결해주었다.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분야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났고 더 똑똑해진 생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오히려 고독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늘어났다. 연결의 과잉은 진정한 관계의 단절을 불러왔다. 온라인으로 연결된 수많은 ‘친구’ 중에 진정한 대화를 나눌 사람은 찾기 어려워졌다. 인간은 화면 속의 아바타와 데이터로 치환되었고, 개인의 고유성은 알고리즘에 의해 분류되는 수치로 전락했다. SNS를 통해 접하는 타인의 삶은 항상 즐겁고 완벽해 보였다. 허상과 실상의 혼재. 본인의 실상과 다른 내용들을 업로드하면서 괴리감에 봉착하거나 자아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느끼기도 했다. 어쩌면 디지털 시대가 낳은 역설적 고립이었다.

그러나, 인류는 정보화시대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내기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소수만 독점하던 지식을 누구나 평등하게 누릴 수 있도록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 해소 노력을 벌였으며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들이 오프라인에서 가치를 공유하는 ‘커뮤니티 비즈니스’나 ‘공유 경제’ 모델을 활성화하면서 ‘온·오프라인 하이브리드’ 연대에 나섰다. 노동에 대한 관점도 바꿔 나갔고 스타트업들이 활성화되면서 역동성을 부여해 갔다. ‘인간다운 물리적 접촉’의 가치를 다시 세우고 기술이 줄 수 없는 ‘질감’과 ‘현장감’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소비 문화가 형성되었다. 그렇게 새로운 형태의 소외에 인류는 끊임없이 새로운 방식의 대응을 해 나갔다.

| AI 시대는 소외를 완성할 것인가 아니면 극복의 기회인가?

샌더스가 제기한 질문은 동의여부를 떠나 다분히 본질적이다. “’AI가 일자리를 대체하면, 사람들은 어떻게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할 것인가?’, ‘데이터센터 건설 붐으로 지역사회의 전기요금이 상승하고 있는데 어떤 대비책이 있는가?’ ‘AI 챗봇으로부터 정서적 지지를 얻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고립과 고독이 심해질 수 있지 않는가?’” 하는 것들이다. 실제로 미국의 싱크탱크인 랜드 코퍼레이션(RAND Corporation)이 작년에 미국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브라운대학 등과 공동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18~21세 연령대에서 약 5명 중 1명이 정신건강 지원을 위해 전문가 상담 대신 AI를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AI의 대부’로 불리는 노벨상 수상자 제프리 힌튼의 “AI가 곧 인간보다 똑똑해질 것”이라는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많은 이들이 이미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다. 구글 CEO 순다르 피차이의 메시지는 보다 구체적이다. 그는 “AI는 우리가 지금껏 작업해온 기술 중 가장 심오하다”며,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며, 특정 직업들은 진화하고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AI는 오고 있으니, 인류는 적응해야 한다’는 경고문이다.

우리는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기술혁명의 문턱에 서 있다. 버니 샌더스는 AI 대세론을 인정하면서도 “’AI 기술이 오고 있으니 적응하라’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라고 덧댄다. 인간에게 ‘노동’은 단순히 생계 수단만이 아니라 자아를 실현하고 사회적 소속감을 느끼는 핵심 기제이기도 하다. AI가 노동의 가치를 박탈할 때, 인간은 자신이 사회에 필요 없는 존재라는 ‘잉여 인간’의 공포, 즉 극단적 소외에 직면하게 될 우려도 크기 때문이다.

| 어떻게 사용하는 가의 문제

역사는 우리에게 분명한 교훈을 준다. 기술 그 자체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그 기술을 누가 통제하고, 누구를 위해 사용하느냐다. 산업혁명 때 노동 권익단체와 법령들이 만들어졌다. 대량생산 시대에는 복지에 대한 담론이 형성됐다. 디지털 시대에는 인간성의 회복과 규제에 대한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그렇다면 AI 시대에는 무엇이 필요할까?

샌더스는 이렇게 제안한다. 첫째, AI가 정신건강과 사회적 고립에 미치는 영향을 적극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둘째, 연구 결과가 부정적이라면, 개입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셋째, 기술의 목적은 소수가 아니라 다수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어야 한다. 넷째, 기술 엘리트의 정치적 영향력을 제한하고, 민주적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우리의 미래가 정해져 있다면 선택지는 오히려 명료해진다. 적응하되 해야 할 것을 찾는것. 이를 위한 대책으로 디지털 보호막과 아날로그 연대에 대한 얘기들이 나온다. AI에 대한 대대적인 재교육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는 공감대 형성이나, AI를 상담의 도구로 인정하되 최종적인 정서적 유대와 판단은 전문가가 맡는 ‘인간-AI 협업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전력 소모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고효율 AI 반도체 개발과 차세대 냉각 시스템 도입, 그리고 대형 데이터 센터의 이슈 해결을 위한 지역별 분산망 구축 필요성이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AI를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로 정의하고 그 방향에 맞춰 논의들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AI시대에는 생산성이나 속도 같은 기계적 지표 대신 창의성, 공감, 도덕적 판단력 같은 ‘인간적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하는 사회적 보상 체계가 확립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도 접한다. 과거의 혁명들이 그랬듯 지금은 초기적으로 보이는 이 같은 생각들이 발전적 논의를 거치면 결국은 AI 시대를 현명하게 헤쳐 나가는 방향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기술은 그 자체로서 가치 중립적이며 스스로 방향을 결정하지 않는다. 샌더스의 말처럼 이 문제는 “우리가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귀결될 수 있다. CNN의 앵커 제이크 태퍼를 향한 샌더스의 마지막 말은 “결국 이 문제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이며, 도덕의 문제”였다. AI가 인간을 대체할지, 아니면 인간을 보조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코딩이나 반도체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인정하되 우리가 ‘인간의 존엄성’을 어떻게 정의하고 지켜 나갈 지에 대한 관심과 도덕적 합의, 그리고 정해진 미래를 향한 철저한 준비에 달려 있다는 뜻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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