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중(對中) 관세 유예 기간 종료, Non-China 공급망 가능할까
■ SK온 등 K-배터리, 현지 생산 및 파트너십 가속화
작년 11월 14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은 “테슬라가 미국에서 생산하는 차량에 들어가는 공급망에서 중국산 부품(China-made parts)을 향후 1~2년 내에 완전히 배제(Phase out)하겠다는 지침을 내렸다”라고 보도했다. 주요 언론들은 탈(脫)중국 선언이라며 온갖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전기차(EV) 배터리에 대해 2024년 선제적으로 관세를 인상한 바 있는 미국 정부는, 2026년 1월 1일부로 ESS용 배터리에 대해서도 무역법 301조의 관세 변화에 따라 17.5%의 관세를 추가 적용했다. 이로써 ESS용 중국산 배터리의 총 관세율은 전년도의 30.9%에서 48.4%로 치솟았다. 중국 ESS 업체들에게 퇴출이라는 단어가 적용될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 수성(守城) 도전 받는 중국산 배터리: “수출”에서 “구조”로
중국 배터리 업체들은 글로벌 ESS 밸류체인에서 압도적 존재감을 보여 왔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중국 배터리 기업들의 글로벌 ESS 시장 점유율은 83.3%(출하량 기준)라는 압도적 수치를 기록했다. 특히 미국 시장에서도 저가 LFP(리튬·인산·철)를 앞세워 높은 지배력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이런 기조가 계속 유지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관세, 원산지·추적성 요구, 금융·보험이 보는 지정학 리스크 등이 동시에 커지고 있는 것. 따라서 중국 업체들도 접근 방식을 바꾸고 있다. 핵심은 제품 자체보다 ‘진입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① 기술 라이선스·서비스 모델: “중국산 부품” 대신 “중국 레시피”
시장에서는 중국 업체들이 ‘LRS(기술 라이선스·로열티·서비스)’ 형태로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시나리오에 주목한다. 중국 업체들은 그동안 미국 시장 공략 방식으로 LRS 전략을 활용해 왔다. 로이터는 2024년 3월, 테슬라와 중국의 CATL이 미국 내 배터리 기술 라이선싱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고 전한 바 있다. 블룸버그도 2024년 1월 테슬라가 네바다에서 배터리 생산 시설을 추진하면서 CATL 장비(equipment)를 도입하는 계획을 보도했다. 네바다주 공장에서 생산되는 LFP 배터리가 자사의 ESS 제품인 메가팩에 들어가게 되는데 테슬라가 일정 금액을 CATL에 지불한다는 의미다. 테슬라 입장에서는 이 금액을 내더라도 IRA(Inflation Reduction Act) 45X 조항에 의거, 보조금을 받을 수 있어 충분히 상쇄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ESS 쪽으로 행보를 강화하고 있는 포드도 유사하다. 2023년 CATL로부터 LFP 배터리에 대한 기술 사용권(라이선스)을 획득한 덕에 최근 켄터키 배터리 공장 라인을 BESS 용도로 전환하는 사업 변경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존 물레나 미국 미·중전략경쟁 특별위원회 위원장이 1월 27일 짐 팔리 포드 최고경영자(CEO)에게 보낸 서한에서 포드와 CATL 간 관계에 대해 설명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레나 위원장은 CATL이 공장 생산량에 영향을 미치거나 기술적 통제를 유지할 권리를 보유했는지 여부, 그리고 CATL이 공장 생산량을 기반으로 기술 사용료(로열티)를 받는지 밝힐 것도 요구했다고 FT는 전했다.
LRS 방식은 현지(미국) 주체가 시설을 보유·운영하고, 중국 업체는 장비·공정 노하우·기술 지원을 제공하는 구조다. 다만 이 모델이 곧바로 ‘규제 회피’가 확정된다는 뜻은 아니다. 미국의 FEOC(우려 외국 기업) 관련 규정·해석은 지분뿐 아니라 실질적 통제(control)와 계약 구조까지 쟁점이 될 수 있어, 계약 형태와 향후 가이던스 변화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② 제3국 조립·통합: “원산지·관세”와 “납기”를 함께 관리
또 다른 경로는 멕시코 등 제3국에서 조립·통합을 수행해 물류와 관세 리스크를 분산하는 방식이다. 미국과 인접한 멕시코는 납기 측면에서 장점이 있다. 해상 운송 대비 트럭·철도 운송으로 리드타임을 크게 줄일 수 있어, 프로젝트 일정이 촉박한 ESS 시장에서 매력적인 선택지가 된다.
다만 제3국에서 마지막 조립을 하면 자동으로 USMCA 무관세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USMCA 특혜관세 적용은 원산지 규정(Rules of Origin) 충족 여부에 좌우되며, 단순 조립만으로 원산지 전환이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 즉, 제3국 전략은 가능성이 있는 옵션이지만, 실제로는 제품 구성·부가가치·공정의 실질적 변형 여부에 따라 성패가 갈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③ 빅테크와의 협업 가능성: “ESS는 단순 구매가 아니라 인프라”
한편 빅테크 기업들이 ESS를 단순 구매재가 아니라 핵심 인프라로 인식하면서, 공급망을 직접 설계·관리하려는 움직임도 거론된다. 현재까지 빅테크 기업들이 ESS를 직접 제조하거나 완성형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움직임은 제한적이다. 대신 투자, 전략적 파트너십, 특정 밸류체인 통제를 통해 간접적인 영향력을 확보하는 방식이 주를 이룬다. 대표적인 사례가 Google과 NVIDIA의 Redwood Materials 투자다. 이는 반도체 산업에서 빅테크가 팹(fab)을 직접 운영하기보다는, 파운드리·설계·패키징 일부에 영향력을 행사해 온 전략과 유사한 접근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CATL은 미국 완성차 업체들과 기술 라이선스 기반 협력 모델을 공개적으로 언급해 왔고, 이는 ESS 영역에서도 적용 가능한 구조로 평가된다. 빅테크 입장에서도 중국 업체의 기술력 활용, 직접 수입·지분 투자 회피, 현지 생산·운영과의 분리 등 조건이 충족된다면 고려해 볼 수 있다는 해석이다. 다만 이러한 협업은 정치·규제 리스크가 있기에, 직접 계약보다는 중간 파트너(미국·유럽 ESS 사업자, 시스템 통합업체)를 통한 우회 구조가 현실적인 시나리오로 거론되기도 한다.
| 현지화 박차 가하는 K-배터리: “구매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들어간다”
한국 기업들의 전략은 비교적 명확하다. 북미에서 생산·조립·서비스의 현지화 비중을 높이는 것이다. IRA 이후 미국은 배터리 밸류체인을 자국 내에 유치하기 위해 제조 인센티브(예: 45X)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 환경에서 북미 생산 셀·모듈·팩은 가격(세제 효과 포함)과 조달 선호(리스크 감소)에서 유리해질 수 있다.
업계에서는 현지화 경로가 △모듈/팩/랙·컨테이너 조립부터 시작해 △핵심 부품의 북미 조달 비중을 단계적으로 높이고 △현지 품질·서비스 체계를 동시에 갖추는 방식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① ‘LFP 대응’이 2026년의 관문
북미 유틸리티급 ESS의 화학 계열은 LFP 쪽이 우세한 형국이었다. BNEF, Wood Mackenzie 등은 ESS에서 LFP 선호가 이어지는 이유로 원가, 열 안정성, 수명 특성을 제시해 왔다. 따라서 2026년 북미 ESS에서 한국 기업들이 풀어야 할 질문을 두 가지로 요약하는 경우가 많다.
- LFP 라인업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공급망/제품/현지 생산 전략 포함)
- NCM 중심이라면 공간 제약·고에너지 밀도 등 ‘명확한 적용처’를 어떻게 제시할 것인가
② ‘뱅커블 시스템’ 역량: 안전·보증·보험이 구매 조건
미국 ESS는 안전·인허가와 금융(보험·보증) 문턱이 높다. UL 9540A 기반 안전 데이터 패키지, 장기 보증 조건 표준화, 보험사·리스크 엔지니어링 실사 대응 체계 등은 단순 “부가 서비스”가 아니라 프로젝트 성패를 좌우하는 필수 요건으로 취급된다. 이 때문에 배터리 제조사 단독보다는 SI(시스템 통합), EPC, 보험·보증 파트너와의 연동이 중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③ 레퍼런스 확보: SK온-플랫아이언 계약
현지화 흐름 속에서 한국 기업들의 북미 레퍼런스 확대 소식도 이어진다. SK온은 콜로라도주에 본사를 둔 재생에너지 기업 플랫아이언 에너지 개발(Flatiron Energy Development)과 1GWh 규모 ESS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해당 계약을 통해 SK온은 플랫아이언이 추진하는 매사추세츠 프로젝트에 LFP 배터리가 탑재된 컨테이너형 ESS 제품을 공급할 예정이다. 또한 플랫아이언이 2030년까지 추진하는 6.2GWh 규모 프로젝트에 대한 우선 협상권(ROFO)도 확보했다.

| 국가 기간시설로 자리 잡는 ESS, “번들”과 “증빙” 중요해져
국내 한 벤처캐피탈 업계 관계자는 “미국 유틸리티급 ESS는 개발사(IPP)·EPC·SI가 강한 영향력을 갖는 구조”라며 “한국 기업이 북미에서 빠르게 레퍼런스를 쌓으려면 단독 납품보다 EPC·SI와의 번들(공급+통합+보증) 전략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미 조달 시장에서는 지정학·관세·정책 불확실성이 비용으로 환산된다”며 “Non-China 공급망은 기회가 될 수 있겠지만, 문서화 가능한 추적성(Traceability)과 계약 구조, 대체 공급처로 증명하는 작업도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역설은 여기서 발생한다. 미국 정부는 중국을 최대한 배제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이지만, 프로젝트를 굴려야 하는 민간 기업은 언제든 비용·납기·성능을 이유로 다양한 파트너십을 검토할 수 있다. 테슬라나 포드의 사례에서 보듯, ‘중국산 완제품’이 아니라 ‘중국 장비·기술’이 들어오는 형태의 공급망 재구성이 확산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편 SNE리서치는 2025년 말 공개한 ‘2026년 배터리 산업 전망’에서 북미 ESS 시장 내 한국 배터리 기업 점유율이 2026년 64%, 2027년 86%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했다. 이는 2024년 대비 큰 폭의 변화로, 관세·공급망 재편이 가속될 경우 미국 ESS 시장의 주도권이 이동하는 ‘골든 크로스’ 가능성도 거론된다.
| 가격만의 게임에서 벗어날 개연성
미국 ESS 시장은 중국 의존을 줄이려는 정책 목표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수요·민간 기업의 비용 논리가 충돌하는 모순적 구조 위에 서 있다. IRA가 자국 생산을 독려하고 있지만, 원자재부터 부품·장비까지 이어지는 중국 밸류체인을 단기간에 완전히 분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전망도 여전하다.
다만 흐름은 바뀌고 있다. 중국 업체는 ‘제품 수출’에서 ‘기술·서비스·제3국 구조’로 접근 방식을 다변화하고, 한국 업체는 ‘현지 생산·조립·서비스’와 ‘뱅커블 시스템’으로 정면 돌파를 시도한다. ESS가 국가 기간시설로 격상되는 상황에서, 2026년의 북미 시장은 공급망의 국적만이 아니라 공급망을 설계하는 능력이 승패를 가르는 무대가 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미국은 Section 301(대중 무역 조치) 등을 통해 배터리 관련 품목 관세 체계를 조정해 왔고, 업계에서는 2026년 전후로 ESS 조달에서도 관세·정책 리스크가 비용으로 환산되는 흐름이 더 뚜렷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ESS용 배터리 관세율’은 셀/모듈/팩/완제품(컨테이너형 BESS) 등 제품 정의와 HS 코드, 적용 시점에 따라 달라 단일 수치로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미국 ESS 시장이 이제 “가격”만의 게임이 아니라 “가격+정책 적합성+공급망 리스크 관리”의 게임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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