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에 남으려고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이젠 저도 창업가죠.” 2022년, 3년 간의 ‘로컬라이즈 군산’ 공식 교육이 종료된 후 前 프로젝트 운영자였던 이슬기 씨가 한 말입니다. 지역의 청년 유입이 실질적인 정착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군산의 청년들은 지원이 끝난 후에도 짐을 싸지 않고 스스로 생태계를 확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최근 글로벌 최고 권위의 사회혁신 학술지 『스탠퍼드 소셜 이노베이션 리뷰(SSIR)』는 이 기적 같은 정착의 공신으로 SK이노베이션 E&S와 함께 현장 운영을 담당한 사회혁신기업인 ‘언더독스(Underdogs)’를 꼽았습니다. 청년들이 지역의 굳건한 관성을 돌파하도록 이끈 ‘액트프러너십(Act-preneurship, 실행 중심의 창업가 정신)’ 모델을 소개한 것입니다.
노트북 앞이 아닌 거리로 청년들을 뛰어나가게 하고, 지역사회의 닫힌 마음을 ‘행동’으로 열어젖힌 치열했던 나날들. 로컬라이즈 군산의 성공을 이끈 언더독스 박대은 파트너를 만나, 텅 빈 거리에 다시 심장을 뛰게 만든 액트프러너십의 비결을 들어봤습니다.
Q1. SSIR 기사에서 지역 소멸 위기를 극복할 핵심 동력으로 언더독스의 ‘액트프러너십’이 꼽혔습니다. 낯선 군산에 온 청년들에게 가장 먼저 심어주고자 했던 이 액트프러너십의 구체적인 의미는 무엇이며, 왜 이것이 지역 위기의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보셨나요?
A. 기업가정신을 뜻하는 앙트너프러너십(Entrepreneurship)이라는 단어 안에는 여러 요소가 결합되어 있습니다. 지난 10년간 언더독스가 현장에서 창업가들을 만나오면서 느낀 것은 기업가정신의 여러 요소 중에서도 행동하는 것, 즉 액션(action)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이었죠. 그래서 몇 해 전 한양대학교 임팩트리서치랩과 함께 언더독스만의 기업가정신을 뜻하는 ‘액트프러너십’이라는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지역 위기뿐만 아니라 지금과 같은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해법을 찾는 모든 시작점에서 액트프러너십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2. 프로젝트 초기, 창업가들이 일하고 먹고 자는 일상을 24시간 공유하도록 거점 공간과 숙소를 밀집시켰습니다. 처음엔 불만도 있었다고 들었는데, 이러한 ‘물리적 몰입 환경’을 고집하신 이유는 무엇이며, 이 공간이 창업가 커뮤니티에 어떤 긍정적 변화를 가져왔나요?
A. 우선적으로 거점 공간을 준비했던 가장 큰 이유 중 한 가지는, 당시만 하더라도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있는 청년들이 지역에서 창업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가장 큰 허들이 바로 ‘공간’이었기 때문이죠. 군산에선 적어도 모두가 아는 지역 소멸 위기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허들 하나는 무조건 없애고 시작하자는 관점이었죠. 그리고 실제 그런 환경을 만들고 보니 그곳이 창업에 몰입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고, 또 그 세계관 안에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소통하면서 만드는 문화와 분위기가 얼마나 강력한지 저희도 알게 된 것 같아요.
Q3. 기존 상권과 겹치는 외식업을 배제하고, 동네에 무지개떡을 돌리며, “노트북을 덮고 현장으로 나가라”는 코칭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굳게 닫혀 있던 지역 사회의 경계심을 어떻게 행동으로 뚫고 신뢰를 쌓으셨는지, 현장의 생생한 에피소드가 궁금합니다.
A. 군산 영화동에는 작은 관광 인프라가 형성되어 있었고, 그로 인해 이태원이나 홍대 같은 곳에서 볼 수 있는 몇몇의 정말 힙하고 멋진 식품·음료(F&B) 공간들은 있었어요. 로컬라이즈 군산의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지역에 정말 필요한 일을 하자는 것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기존에 계시던 지역 사장님들 입장에서 새로운 경쟁 상대가 들어오는 상황은 만들어서는 안 됐죠. ‘로컬’이라는 작은 생태계 안에서는 어떤 영역이든 경쟁보단 협업과 상생이 중요하다는 점을 일찍이 저희의 전략 안에 염두에 두었고, 실제로 그런 것들이 현장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동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4. 지역의 부족한 자원을 극복하기 위해 군산 토박이와 외지인, 예비 창업가와 기존 창업가 등 26개 팀을 전략적으로 섞는 ‘소셜 믹스(social mix)’를 시도하셨습니다. 이러한 구성이 창업가들 사이에서 어떤 시너지와 ‘피어러닝(peer learning, 동료 학습)’을 만들어냈나요?
A. 지역 혁신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연 ‘사람’인데, 대부분의 지역사회에서 내부 자원만으로 완전히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내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군산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죠. 외부에서 새로운 사람들이 왔을 때 지역사회는 환대하고, 유입된 외부인들 또한 그 지역에 대한 새로운 애정과 관심을 가질 때 분명 시너지가 날 거라고 봤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게 로컬라이즈 군산을 일궈내는 데 너무나 중요한 요소로 작동하게 되었죠.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지만 지역에 대해선 잘 모르는 사람들과 그 지역을 너무 잘 알지만 혁신을 위한 소스가 필요했던 사람들이 모여서 비로소 로컬라이즈 커뮤니티가 완성되었습니다.
Q5. 프로젝트 시행 2년 차에 닥친 코로나19로 오프라인 활동이 마비되는 위기를 맞았지만, 타깃을 지역 주민으로 바꾸거나 페스티벌을 온라인으로 전환해 돌파구를 찾았습니다. 이처럼 빠르고 유연한 ‘변화 적응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A. ‘언더독스’ 자체가 첫 시작부터 창업가들이 모여서 만든 회사였고, 그렇기 때문에 그 안의 구성원들 또한 액트프러너십이라는 정체성을 강하게 가지고 있어요. 프로젝트나 사업을 운영할 때 발생하는 위험 상황들에 대해 가장 빠르고 유연한 해결책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며 실험하고, 그게 정답이 아니면 또다시 실행하는 훈련을 회사에서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때로는 그것이 조금의 힘듦으로 다가올 수도 있지만, 코로나 때처럼 예측 불가능한 어려움에 대응하기 위한 유연함과 적응력을 조직 전체가 갖게 만들 수 있었던 핵심적인 요소라고 생각해요.

Q6. 로컬라이즈 군산은 SK이노베이션 E&S의 전폭적인 지원이 뒷받침됐습니다. 특히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과 묵묵한 3년간의 투자가 돋보였는데요. 창업가들을 위한 최적의 ‘운동장’을 만드는 과정에서, SK이노베이션 E&S와 언더독스 간 시너지의 핵심은 무엇이었나요?
A. 언더독스는 매년 다양한 파트너 기관들과 수십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당연히 모든 프로젝트가 군산처럼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는데, 정말 잘되는 프로젝트와 아쉬운 프로젝트를 결정짓는 건 확실히 있다고 생각해요. 언더독스의 기획력과 운영 능력, 실행력을 믿고 온전히 맡겨 주신 프로젝트 중에서는 실패한 케이스가 없다는 것은 저희 나름의 자랑이기도 한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군산’이라는 새로운 무대에서 언더독스가 창업가 육성 전문 기관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상상과 실험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신 SK이노베이션 E&S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SK이노베이션 E&S와의 파트너십 방식은 로컬라이즈 군산 프로젝트에 참여한 창업팀뿐 아니라, 또 하나의 창업팀인 ‘언더독스’에게도 정말 많이 성장하고 배우며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기회를 주었습니다.
Q7. 2022년 공식 교육이 끝난 후에도 많은 창업가들이 군산에 남아 스스로 생태계를 일궈가고 있습니다. 끝으로 로컬라이즈 군산이 진정한 자생력을 갖추기 위한 ‘다음 단계(What’s Next)’의 과제는 무엇이며, 지역재생을 꿈꾸는 청년 창업가들에게 하실 말씀이 있다면?
A. 로컬라이즈 군산 프로젝트를 담당했던 직원이 퇴사 후에도 현장에 남고, 군산에서 만난 창업가들끼리 결혼해서 새로운 가정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그 밖에도 의미 있고 재미있는 숨겨진 이야기들이 많이 만들어진 것이 로컬라이즈의 또 하나의 묘미죠. 숫자로 나타나는 창업팀의 수, 달성한 매출과 같은 것들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로컬라이즈를 통해 언더독스가 확실히 배운 것은 지역을 움직이고 생태계를 태동하게 만드는 진짜 힘은 보이지 않는 것들에 있다는 점이었어요. SK이노베이션 E&S의 지원 후에도 군산이라는 지역사회 안에서 보이지 않는 힘을 키워가고 있는 많은 창업팀들이 존재합니다. 얼마나 유명해지느냐보다 조성된 로컬라이즈라는 생태계가 얼마나 건강하게 지속되는지, 또 지역사회에 크고 작은 긍정적인 변화들에 기여하는 사람들이 계속 탄생하는지, 그리고 그 배턴을 얼마나 이어가는지가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모든 영역에서 정답을 찾는 것을 좋아하죠. 그래서 여전히 정답이 서울에만 존재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것 같아요. 로컬에서 살아가면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그 안에 숨겨진 가치를 발견하는 일은 도전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함이라는 것을 더 많은 이들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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