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 없이 랜섬웨어를 완주한 AI 에이전트, 방어 속도를 앞지르다
■ 세계경제포럼(WEF), “AI 시대 무대응은 무위험 아니야”
| 공격자가 바뀌었다
지난달 클라우드 보안업체 시스디그(Sysdig)가 공개한 보고서 하나가 에너지 업계 최고정보보호책임자(CISO)들 사이에서 회자됐다. ‘제이드퍼퍼(JADEPUFFER)’로 명명된 이 랜섬웨어 공격은 정찰과 침투부터 자격증명(로그인 정보) 탈취, 내부망 이동, 권한 상승, 데이터 암호화, 협박문 작성까지 전 과정을 사람의 개입 없이 대형언어모델(LLM) 에이전트 혼자 수행한 첫 사례로 기록됐다. 이 에이전트는 오픈소스 AI 개발도구 ‘랭플로우(Langflow)’의 취약점(CVE-2025-3248)을 발판 삼아 침투했는데, 로그인에 실패하자 스스로 원인을 진단하고 불과 31초 만에 새 접속 경로를 뚫어냈다.
시스디그 위협분석팀은 이 공격이 특별히 정교한 기법을 쓴 것은 아니라고 못 박았다. 중요한 건 사람인 해커가 아니라 AI 에이전트가 혼자 해냈다는 점이다. 사람을 AI가 대신하는 데다, 훔친 클라우드 계정으로 그 AI를 돌리는 ‘LLM재킹(LLM jacking)’을 활용한다면 공격자가 치르는 비용은 사실상 0에 가까워진다고 진단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최근 게재한 기고문에서 지멘스에너지(Siemens Energy)의 레오 시모노비치(Leo Simonovich) 산업사이버보안총괄과 WEF 사이버보안센터의 필리페 베아토 매니저는 이 사례를 인용하며, AI가 에너지 인프라의 위협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고 경고했다.

| 방어자는 한 달, 공격자는 15분
AI가 바꾼 위협 지형은 무엇보다 방어자와 공격자의 속도 차이로 나타난다.
WEF는 지멘스에너지의 ‘운영기술(OT) 사이버보안 현황’ 조사를 인용해 OT환경 보호책임자가 침해를 탐지하는 데에는 평균 한 달 이상, 완전한 복구에는 7개월 이상이 걸린다고 언급했다. 반면 AI 에이전트는 취약점을 찾아 악용하기까지 단 15분이면 충분하다. 같은 조사에서 자사 OT환경의 보호 수준이 충분하다고 답한 보안 실무자는 46%에 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안업체 카이트웍스(Kiteworks)의 ‘2026년 데이터 보안·컴플라이언스 위험 전망’ 조사에 따르면 에너지 기업의 90% 이상이 자사 AI 시스템에 네트워크 격리 조치를 적용하지 않고 있으며, AI 레드팀(모의 해킹) 점검을 실시하는 에너지 기업은 9%, AI 전용 사고대응 매뉴얼을 갖춘 곳은 14%에 그쳤다.
| 에너지·유틸리티 사이버공격, 얼마나 늘었나
AI 공격자의 속도와 에너지 기업의 방어 속도 사이의 격차는 이미 실제 공격으로 나타나고 있다.
에너지·유틸리티 업종을 겨냥한 공격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인텔리전스 업체 사이블(Cyble)은 2025년 한 해 전 세계 에너지·유틸리티 부문에서 187건의 랜섬웨어 침해가 확인됐다고 집계했고, 산업보안업체 티엑스원 네트웍스(TXOne Networks)는 에너지 인프라 대상 랜섬웨어 공격이 87% 늘었다고 밝혔다. 지난해 말 폴란드에서는 재생에너지 발전소와 열병합발전소, 제조시설의 인터넷 노출 엣지 장비가 뚫려 원격단말장치(RTU)를 손상시키는 와이퍼 악성코드 공격까지 발생했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고, 정부도 대응에 나서고 있다. 보안 전문매체 SC미디어가 집계한 2026년 업계 전망에 따르면, 올해 안에 전 세계 에너지·유틸리티 인프라의 상당수가 AI의 지원을 받은 공격자들의 사전 침투·정찰 활동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IT 컨설팅업체 TTMS는 2024년 미국 유틸리티 대상 사이버공격이 전년 대비 70% 가까이 늘었고, 에너지·석유·유틸리티 기업 중 67%가 랜섬웨어 공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미국에서는 지난 2월 에너지부가 사이버·물리적 위협에 대응하는 첫 전략계획을 발표했고, 국가정보국(ODNI)도 2026년 연례위협평가에서 에너지 인프라를 겨냥한 사이버 공격을 경고했다.

| 당장의 방어막, 언제까지 갈까
올해 4월 앤트로픽이 생성형 AI ‘클로드’의 새 모델 ‘Claude Mythos Preview’를 내놓았다. 그러나 일반에는 공개하지 않고, 대신 AWS, 애플, 시스코, 구글, JP모건체이스, 마이크로소프트, 리눅스 재단 등 약 50개의 기술기업·기관에만 접근권을 주는 ‘프로젝트 글래스윙(Project Glasswing)’을 함께 발표했다. 프로젝트 시작 한 달 뒤 앤트로픽은 첫 경과 보고서를 내고, 파트너들이 세계적으로 중요한 소프트웨어에서 1만 건 이상의 고위험·치명적 취약점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다만 발견 즉시 전부 공개하면 오히려 악용될 수 있어, 패치가 배포된 사례 위주로만 세부 내용을 공개했다. 보다 간단히 정리하면 자사의 최신 모델을 일반에 공개하지 않고 그 모델을 시켜 기술 업계 전반의 취약점을 먼저 손보게 한 셈이다.
WEF는 이 사례가, AI가 위협적인 취약점을 얼마나 빨리 찾아내는지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앤트로픽처럼 강력한 모델을 일반에 공개하지 않는 방식이 얼마나 오래 유지될지, 또 누구나 내려받아 쓸 수 있는 ‘오픈웨이트’ 모델이 언제쯤 같은 성능에 도달할지는 불확실하다고 WEF는 지적했다.
실제로 애플은 최근 AI의 악용 가능성을 이유로 오랫동안 유지해 온 패치 배포 방침을 변경했다고 밝힌 바 있다. ‘AI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더 빠른 패치가 필수’라는 신호로 읽힌다. 소프트웨어의 취약점 발견부터 수정까지 걸리는 시간의 빈틈이야말로 AI 공격자가 파고들기 좋은 지점이기 때문이다.
| 에너지 기업은 AI 공격에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WEF는 몇 가지 방향을 제안한다. 우선 심층방어, 망분리(네트워크 분리), 최소권한 원칙 같은 기본을 유지하면서, 설정 점검 같은 주기적 보안 점검의 빈도를 훨씬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모든 구형 소프트웨어를 한꺼번에 업데이트하기에는 예산·인력의 한계가 있는 만큼, 어떤 시스템을 먼저 최신화하고 어떤 구형 버전을 자산 강화, 화이트리스팅, 방화벽, 데이터 다이오드(단방향 통신 장치) 같은 보완 통제로 둘러쌀지 판단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자동화 역시 핵심 대응 수단으로 제시됐다. 자산 목록 관리, 취약점 탐지, 네트워크 모니터링 같은 업무는 이미 자동화가 가능하며, AI를 인력의 완전한 대체가 아닌 ‘증강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핵심 시스템의 정상 상태를 주기적으로 안전하게 백업해 두면 침해 발생 시 복구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유럽과 미국, 중동 주요 시장에서는 이미 중요 인프라에 사이버보안 모니터링 체계를 의무화하는 규제가 늘어나는 추세다.

| 가만히 있는 것도 위험이다
WEF 공식사이트에 올라온 “왜 에너지 리더들은 더 강력해진 AI의 사이버 보안 공격에 대처해야 하는가(Why energy leaders need to prepare for the cybersecurity threat of more powerful AI)” 제하의 기사는 ‘AI 시대의 무대응은 결코 무위험이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한다.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동화가 주는 이점을 포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업계 전체를 위협할 낡고 취약한 기술을 계속 쌓아가는 셈이라는 경고다.
JADEPUFFER 사례가 보여주듯 사이버 공격에 필요한 기술 문턱은 ‘AI 에이전트를 돌리는 비용’ 수준으로 낮아졌다. 에너지망처럼 디지털로 제어되고, 수명이 길며, 복잡하게 얽힌 인프라일수록 AI 시대의 새로운 위험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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