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재의 에너지 프리즘] 유럽의 에너지 안보: 기후변화와 지정학 리스크의 복합 충격

2026. 08. 10 이충재, 한국투자증권 에너지/석유화학 애널리스트 4분 읽기

기후변화와 지정학 리스크의 복합 충격, 마비된 유럽 에너지 공급망

돈 있어도 못 사는 석유·LNG, 한계에 부딪힌 경제성 중심 에너지 정책

AI 데이터센터 전력난 우려 속 한국 에너지 안보의 대안으로 떠오른 ‘무탄소 발전’

2026년 8월 1일 독일 라인강 수위는 21cm를 기록했습니다. 2018년 기록한 사상 최저치(25cm)보다 낮은 수치입니다. 선박 운행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독일 대표 화학 업체 BASF, Covestro 등은 물류 차질에 따른 불가항력(Force Majeure) 선언을 예고했습니다.

8월 3일 헝가리 다뉴브강 수위도 10cm까지 떨어졌습니다. 2018년 기록한 사상 최저치(33cm) 이하로 수위가 낮아졌습니다. 다뉴브강에서 냉각수를 구하는 헝가리의 유일한 파크스(Paks) 원자력 발전소 가동률은 12%까지 낮아졌습니다. 냉각수 공급이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헝가리 소비 전력의 30%가 파크스 원전에서 공급됩니다. 헝가리 정부는 대형 공장의 가동률 조정, 전철 운행 금지 등으로 전력 수급 불안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루마니아는 원전 냉각수 공급을 위해 바위를 폭파해 다뉴브강 물길을 바꿨습니다. 전례 없는 수준의 기후변화가 서로 무관해 보이는 원자력 발전과 폭염, 가뭄을 연결했습니다.

| 끊긴 바닷길과 가스관, 다가올 겨울이 두렵다

문제는 유럽의 에너지 공급망이 그 어느 때보다 취약해진 상황에서 기후변화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2026년 2월 이후 6개월째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 차질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3월 이란의 공격으로 카타르 LNG 수출 설비가 파괴됐습니다. 2022년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은 러시아 천연가스를 미국 LNG로 대체했습니다.

유럽은 카타르 LNG 수출 차질로 발생한 공백은 아직 메울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2026년 8월 유럽 천연가스 재고는 2017년 이래 최저치로 떨어졌습니다. 현재 극심한 폭염에 시달리고 있는 유럽도 3개월 후에는 겨울로 접어듭니다. 올여름 냉방 설비 부족에 시달리던 유럽 국가들은 올겨울 난방용 천연가스 부족을 겪게 될 수도 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걸프 지역의 석유와 정유 제품 수출량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습니다. 러시아 또한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으로 정유 설비의 40%가 가동 차질을 빚고 있습니다. 2026년 7월 러시아 정유 처리량은 24년래 최저치인 360만BPD까지 떨어졌습니다. 러시아는 지금 사상 최초로 부족한 휘발유를 수입하고 있습니다. 주변국인 카자흐스탄, 벨라루스뿐 아니라 아프리카 모로코에서까지 휘발유를 수입하고 있습니다. 유럽으로 수출되던 중앙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정유 제품이 러시아로 수출되면, 유럽 정유 공급에 차질이 생깁니다.

| 기후와 전쟁의 복합적 위기, 돈이 있어도 에너지 못 산다

기후변화에 이어 두 지역(중동, 러시아-우크라이나)의 전쟁까지 유럽 에너지 수급 안정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기후변화와 지정학 리스크는 연결되어 다뤄진 적이 없습니다. 완전히 서로 다른 맥락의 사건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올여름 최초로 기후변화와 지정학 리스크가 복합되어 에너지 불안이 증폭될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됐습니다.

유럽은 올여름 폭염으로 냉방 수요가 크게 늘어났지만 가뭄으로 수력/원자력 발전이 차질이 발생했습니다. 남는 발전원은 가스 발전인데 러시아 천연가스에 이어 카타르 LNG 수출까지 차질이 발생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문제가 언제쯤 해결될 수 있을지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1970년대의 두 차례의 오일 쇼크, 1990년대 미-소 냉전이 끝난 후 세계 각국의 에너지 정책은 안정적 조달보다는 ‘경제성’ 즉, 싸게 수입하는 것에 맞춰졌습니다. 그런데 이제 돈을 줘도 에너지를 수입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 석유 정제마진은 사상 최고 수준이라는 표현이 부족할 수준까지 상승했습니다. 각종 기계 가동과 자동차 운행에 필수적인 Group III 윤활기유 가격은 석유 가격의 4-5배 수준까지 올랐습니다. 말그대로 돈이 있다고 해도 살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습니다.

| AI 전력난 덮친 한국, 대안은 ‘무탄소 발전’

석유와 천연가스, 석탄을 사실상 100%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도 유럽의 에너지 수급 불안을 남의 일처럼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올여름 우리나라도 유례없는 폭염을 겪고 있습니다. 반도체 생산 설비 증설과 데이터센터 구축을 위한 발전 설비 대규모 확충 또한 필요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2026년 8월 4일 중국 정부가 발표한 전력 5개년 계획(2026-2030)에 눈이 갑니다. 중국 정부는 현재 42.3%인 무탄소 발전 비중을 2030년까지 50%로 높이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무탄소 발전 원가는 화석연료 가격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따라서 전력 요금의 불확실성을 낮춰주고, 제조업 더 나아가 데이터센터의 운영 안정성을 높여줄 수 있습니다. 무탄소 발전 확대는 국가 에너지 수급 안정뿐 아니라 AI 시대의 신산업 경쟁력 개선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1960년대 이후 70년 가까운 시간동안 우리나라가 구축한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망을 흔드는 변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와 지정학의 복합 충격에 따른 유럽의 에너지 수급 불안은 우리나라도 겪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다양한 관점에서 에너지 공급망의 안정성을 점검해 볼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은 여름 폭염에 따른 피해가 커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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