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영의 에너지 지오그라피] 두 얼굴의 콘덴세이트

2026. 08. 25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수석전문위원 4분 읽기

💡 핵심 요약

  • 콘덴세이트는 천연가스 생산 과정에서 함께 나오는 초경질 액체 탄화수소로, 나프타(Naphtha) 원료로 활용도가 높지만 저류층에서는 가스 생산을 저해할 수 있는 ‘두 얼굴’을 지님
  • 한국은 이란산 콘덴세이트 수입 중단을 계기로 카타르·호주·미국 등으로 조달처를 다변화했지만, 산지별 성상 차이로 설비 효율과 조달 비용 관리가 과제로 남음
  • SK이노베이션 E&S는 호주 바로사 가스전에서 연간 110만 배럴의 콘덴세이트를 20년간 확보하고, 8월 6일 첫 30만 배럴을 국내에 도입해 공급망 다변화와 자원안보에 기여
| 나프타를 품은 콘덴세이트, 호주 바로사 가스전에서 출발해 인천항에 도착하다

지난 8월 6일 호주 바로사 가스전에서 생산된 콘덴세이트 30만 배럴이 인천항에서 하역되었다. SK 이노베이션 E&S가 2012년부터 지분참여는 물론 인허가, 설비 건설에 이르는 개발 전 과정에 참여한 해외자원개발 프로젝트, 바로사 가스전에서 생산되는 콘덴세이트는 앞으로 20년간 매년 110만 배럴씩, 총 2,200만 배럴이 확보될 예정이다. 콘덴세이트는 대체로 무색 또는 옅은 황색이고, 원유보다 훨씬 가볍고 휘발성이 높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 콘덴세이트는 나프타 수율이 50~80%에 이르기 때문에 석유화학 전용 원유로 불리기도 한다.

▲ (좌) 8월 6일, 호주 바로사 가스전에서 생산된 초경질유(콘덴세이트) 30만 배럴을 실은 유조선(원유수송선)이 인천 북항에 접근하고 있다. (우) 현장 작업자들이 초경질유를 하역하기 위해 유조선의 배관과 부두에 설치된 로딩암(Loading Arm)을 연결하고 있다.

| 기체와 액체 사이, 콘덴세이트의 ‘두 얼굴’

지하에서는 기체로 존재하지만 지상에 올라오면 액체가 되는 물질인 콘덴세이트는 경계선에 놓여있는 알쏭달쏭한 존재다. 콘덴세이트는 가스전의 수익을 높여주는 부산물이지만 동시에 가스 생산을 어렵게 하는 두 얼굴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지하 3~5km에 위치한 가스전은 온도와 압력 모두 높다. 이런 상태에서 천연가스 주성분인 메탄(CH₄) 이외에 에탄(C₂H6), 프로판(C₃H8), 부탄(C₄H10), 펜탄(C₅H12), 헥산(C₆H14)과 그보다 무거운 탄화수소도 하나의 균일한 고밀도 기체 상태로 존재한다. 시추공을 뚫어 가스를 뽑아내기 시작하면 압력이 낮아진다. 온도가 유지되는 상태에서 압력이 일정 수준 이하로 내려가면 더 이상 모든 무거운 탄화수소가 하나의 기체 상태로 유지되지 못하고 액체로 전환되기 시작한다.

이 특정 압력을 이슬점 압력(dew point pressure)이라고 하고, 이런 현상을 역행 응축(retrograde condensation)이라고 부른다. 이런 특성은 지하에서 천연가스를 뽑아내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가스전 주변 압력이 이슬점 압력 이하로 낮아지면 액체 상태의 콘덴세이트가 생기면서 저류층의 공극을 막아 가스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서 생산된 가스에서 콘덴세이트만 뽑아내고 건성가스를 다시 지하에 주입해 압력을 이슬점 위로 유지하는 등 다양한 수단이 동원된다.

단계 환경 탄화수소의 상태·변화
① 지하 고온·고압 상태 지하 3~5km의 가스전은 온도와 압력이 높음.
메탄(CH₄), 에탄(C₂H₆), 프로판(C₃H₈) 등 탄화수소가
하나의 고밀도 기체 상태로 존재
기체
② 가스 생산 시작 시추공을 통해 가스를 생산하면서 저류층의 압력이 낮아짐 기체 상태 유지
③ 이슬점 압력 도달 온도가 유지된 상태에서 압력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짐 액체로 전환되기 시작
④ 역행 응축 발생 생성된 콘덴세이트가 저류층 공극에 쌓임
(공극을 막아 가스의 흐름과 생산을 방해)
액체
⑤ 생산 대응 생산 가스에서 콘덴세이트를 분리하고 건성가스를 지하에 재주입 콘덴세이트 분리·회수

| 콘덴세이트는 어떻게 미국 원유 수출 규제의 틈을 만들었나

기체와 액체를 넘나드는 콘덴세이트의 특징은 규제를 슬쩍 회피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1973년 오일쇼크 이후 미국은 1975년 에너지정책보전법(EPCA)을 통해 원유 수출을 사실상 금지시켰다. 단 정제 과정을 거친 휘발유, 경유 등 석유류 제품에 대해서는 수출을 허용했다. 30년 넘게 별문제 없이 유지되던 미국의 정책은 셰일 오일 붐이 본격화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텍사스 이글포드에서 초경량 셰일유와 더불어 콘덴세이트가 쏟아져 나왔지만 미국 정유설비는 베네수엘라 및 중동산 중질유 처리에 최적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경질유는 환영받지 못했다. 생산자들로서는 절박하게 판매처를 찾아야 했다.

2014년 6월 미국 상무부 산하 산업안보국(BIS)은 콘덴세이트는 원유가 아니라 가공된 석유제품이기 때문에 수출 가능하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콘덴세이트를 어디론가 이동시키기 위해서는 휘발성 가스를 제거해 수송 안전규격을 맞추는 최소한의 증류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산업안보국은 이를 정제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법 조문에 무엇이 정제인지 분명한 규정이 없는 점을 활용해 원유 수출을 편법적으로 허용한 것이다.

이렇게 수출된 콘덴세이트 첫 번째 물량을 사들였던 초기 구매자는 대한민국 정유사였다. 이후 콘덴세이트 수출이 지속적으로 증가하자 결국 2015년 12월 미국 의회는 원유 수출 금지를 폐지함으로써 미국 원유 수출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콘덴세이트라는 좁은 틈새가 만들어낸 변화가 미국 원유 수출 정책을 변화시켰던 것이다.

| 이란산 콘덴세이트는 어떻게 한국의 핵심 공급원이 되었나

원유와 석유제품을 넘나드는 이런 콘덴세이트의 특성은 이란에 대한 원유 수출 제재 우회경로로도 활용되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콘덴세이트 수입국이다. 2017년에는 하루 50만 배럴의 콘덴세이트를 수입하여 세계 콘덴세이트 교역량의 25%를 차지하기도 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당시 수입량 가운데 상당량이 이란으로부터 수입되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2011년까지만 해도 이란산 원유를 하루 25만 배럴씩 수입하는 주요 고객이었다. 그러나 2012년부터 미국과 EU의 대 이란 제재가 강화되면서 이란산 원유 수입이 곤란해졌다. 실제 우리나라 원유 수입량 가운데 이란산 비중은 2011년 10%에서 2015년 4%까지 떨어졌다. 이때 제재 대상에 포함되는지 모호했던 존재가 당시 이란에서 생산이 급증하던 콘덴세이트였다. 원유로 봐야 할지 석유류 제품으로 볼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당시 이란으로부터의 수입량 가운데 콘덴세이트 비중은 70% 수준에 달했다.

| 제재 완화로 열린 이란산 콘덴세이트의 길, 다시 멈추다

이란은 페르시아만에 있는 초대형 해저 가스전을 카타르와 공유하고 있다. 이란 쪽이 South Pars, 카타르 쪽이 North Field다. 2000년대 초반 South Pars 가스전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이란은 천연가스와 함께 대량의 콘덴세이트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당초 이란은 2006년부터 콘덴세이트 생산설비 증설과 동시에 이를 처리해 고부가가치 석유제품으로 전환하여 수출하기 위한 정제 시설 건설을 추진했다. 하지만 2012년부터 본격화된 미국과 EU의 대 이란 제재로 인해 정제 시설 준공이 지연되자 막대한 양의 콘덴세이트가 남아돌게 되었다. 같은 시기 우리나라는 석유화학 제품의 중국 수출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나프타 생산에 유리한 콘덴세이트 수요가 증가했고, 이에 맞춰 2014년부터 콘덴세이트 분리기 증설이 본격화되었다.

2015년 체결된 미국과 이란의 JCPOA에 따라 2016년 대 이란 제재가 완화되면서, 이란은 재고로 남아 있던 대량의 콘덴세이트 수출에 나섰고 이는 충분한 처리설비를 갖추고 있던 우리나라가 핵심 고객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이란산 콘덴세이트는 가격도 저렴했을 뿐만 아니라 나프타 수율이 최대 80%에 이를 정도로 높아 선호되었다. 2018년 1~7월까지 우리나라가 수입한 콘덴세이트의 38%가 이란산일 정도로 양국의 협력관계는 긴밀해졌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2018년 JCPOA에서 탈퇴하고 대 이란 제재를 복원하면서 우리나라도 2018년 8월부터 이란산 콘덴세이트 수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한시적 제재 면제를 받아 2019년 초 일부 물량을 다시 들여오기는 했지만, 과거와 같은 공급 관계는 사실상 막을 내렸고 현재까지 이란산 공급은 중단된 상태다.

| 비용과 안정성 사이, 호주 바로사 가스전은 어떤 해법이 될까

이란산 콘덴세이트 공급이 중단되자 우리나라는 카타르, 호주, 미국, 아프리카 등으로 조달처를 다변화하였다. 하지만 이 과정은 쉽지 않았다. API와 황 함량 지표로 크게 분류되는 원유와 달리 콘덴세이트는 생산지마다 방향족, 나프텐, 파라핀 비중이 크게 달라 분리기가 특정 원료에 최적화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동률 저하 및 조달 변경에 따른 비용 지출 등을 우려할 수밖에 없었고 단순히 비용이 저렴하다고 특정 국가에 공급원을 의존할 때의 리스크가 무엇인지를 체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란 전쟁으로 에너지 공급의 안정성이 불안해진 상태에서 앞으로 호주 바로사 가스전에서 20년간 도입될 콘덴세이트는 이런 리스크가 매우 낮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해외 에너지 개발은 단순히 도입 비용을 낮추는 데서 끝나지 않고 장기간에 걸쳐 안정적으로 도입선을 확보함으로써 관련 설비의 효율을 높이고 산업생태계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한 바구니에 담으면 비용을 낮출 수 있지만 공급 안정성 리스크는 커진다. 분산시키면 공급 안정성은 높아지지만 비용이 상승한다. 모순된 관계 속에서 무엇을 선택할지 결정하기 위해서 우리는 더욱 많은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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