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핵심 요약
- 중동 석유 공급 불안 장기화에 대응해 한국·일본·EU가 원유 조달 다변화와 전기화 중심의 에너지 안보 강화 추진
- 중국은 배터리 활용 분야를 전기차·에너지저장장치(BESS)에서 선박·항공·지능형 로봇·건설기계 등으로 확대 추진
- 한국은 세계적인 원유 정제 역량과 배터리 산업 경쟁력을 활용해 에너지 공급 충격에 대한 대응력 강화 필요
| 이란 전쟁 장기화와 석유 공급 불안
이란 전쟁으로 중동 지역의 불안정한 석유 공급 상황이 8개월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몇 달 동안 상황은 계속 나빠졌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홍해까지 전장이 확대되었습니다. 아라비아 반도를 가르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동서 송유관(East-West Pipeline) 가동이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미국과 이란, 두 국가 간 군사적 충돌의 빈도는 줄어들고, 강도는 약화됐지만 사태는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9월 23일 이란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서 연설했고, 미국과 이란의 협상도 재개됐습니다. 9월 24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중동 정세가 논의됐지만, 사태 해결의 실마리는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지난 4월 국제에너지기구(이하 IEA)는 호르무즈 해협 개방 후 6주 안에 걸프 지역 유전의 80%가 정상화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었습니다. IEA는 9월 석유시장보고서(OMR)를 통해 사태 정상화 시기를 2027년 이후로 연기했습니다. IEA가 2027년에는 사태가 평화롭게 해결되기를 바라는 ‘희망이 담긴 전망’이라 생각됩니다. 물론 2022년 2월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4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것처럼 사태가 장기화될 것이란 비관적 전망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 중동 원유 의존도를 낮추려는 각국의 에너지 안보 전략
세계 석유 재고는 지금 이 순간에도 줄어들고, 국제 유가는 다시 $100/BBL을 넘나들고 있습니다. 기약 없는 중동 지역 정세 안정화로 석유 수출이 정상화되기를 바라고만 있을 수도 없습니다. 이에 세계 각국은 ‘에너지 안보 강화’ 관련 정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9월 23일 제1차 자원안보 기본계획(2026~2035년)을 확정했습니다. 핵심은 2025년 70%였던 중동산 원유 의존도를 2035년까지 50% 수준으로 낮추는 것입니다. 2030년까지 석유 비축 시설도 2,000만 배럴 늘리기로 했습니다.
일본도 우리나라와 방향이 같습니다. 석유 조달 다변화를 핵심으로 하는 에너지 정책(POWERR GX)을 발표했습니다. 원자력 발전과 신재생에너지 발전 확대도 함께 추진합니다. EU는 이란 전쟁 사태 초기인 지난 4월 석유 비축 설비 확대와 에너지 중 전력의 비중을 높이는 ‘AccelerateEU’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우리나라와 일본, EU의 정책 방향은 사실상 똑같습니다. 석유 조달 지역을 다양화하고, 전기 비중을 높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란 전쟁으로 석유를 수입하는 모든 나라가 중동 밖에서 더 많은 석유를 수입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옳은 방향의 대책입니다. 다만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중동 외 지역의 석유 생산량이 늘어나야 우리나라, 일본, EU 모두 중동 석유 수입 비중을 낮출 수 있습니다.
| 석유 생산 투자 확대를 가로막는 불확실성
중동 외 지역에서 석유를 사겠다는 고객(국가)은 늘고 있는데, 정작 석유 생산을 위한 대규모 투자를 하겠다는 업체는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2017년 이후 전기차 보급 확산에 따른 석유 수요 감소(Peak Oil Demand) 우려가 커졌습니다. 2020년 코로나19 Pandemic에 따른 ESG 트렌드 역시 석유 관련 투자를 주저하게 했습니다. 석유, 천연가스, 석탄 등의 화석 연료 관련 설비는 ‘좌초 자산(Stranded Asset)’이라 평가받았고, 금융 기관 등은 투자를 줄이고, 대출을 회수해야 했습니다. 지난 10년간 석유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투자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던 환경이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가와르 유전을 비롯해 중동 지역 유전에서는 전 세계에서 가장 싸게 석유가 생산됩니다. 지정학 불확실성이 해소되면, 중동 지역 석유 생산 정상화로 유가가 급락할 수 있다는 위험은 석유 생산 투자에 필요한 대규모 자금 조달을 어렵게 만듭니다. 이는 수치로도 확인됩니다. IEA가 5월 말 발표한 ‘World Energy Investment 2026’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석유 부문 투자는 3년 연속 감소하여, 올해는 5,000억 달러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다만 조금씩 변화는 시작되고 있습니다. 글로벌 오일 메이저 셰브론(Chevron)은 베네수엘라에 향후 5년간 7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해 석유 생산량을 지금의 2배인 60만 BPD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중국 또한 국영 기업 주도로 석유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가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에서 광구를 늘려가고, Sinopec, PetroChina 등은 중국 내 셰일 에너지 탐사와 생산을 위한 투자를 늘리겠다고 발표했습니다.
| 배터리의 활용 확대, 한국의 에너지 안보에 어떤 기회가 될까?
이런 상황에서 9월 28일 중국 정부에서는 공업정보화부(MIIT)를 비롯한 7개 부처·기관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신형 배터리 산업 발전 제15차 5개년 계획’이 발표됐습니다. 핵심은 지금으로부터 4년 후인 2030년까지 전고체 배터리를 산업 현장에 실제 적용하겠다는 것입니다. 소듐 배터리도 핵심 육성 분야로 함께 지정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계획에서 ‘배터리의 적용 영역을 넓히고자 한다‘는 부분이 가장 눈에 띕니다. 중국 정부는 2030년까지 배터리 사용 분야를 전통의 ‘전기차, BESS’에서 선박, 항공, 지능형 로봇, 건설 기계 등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하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선박, 항공 등은 시험적으로만 배터리가 사용된 분야입니다. 화재 위험성이 거의 없고, 급속 충전이 가능한 전고체 배터리가 4년 후 값싸게 양산되면, 중국은 전고체 배터리를 통해 전기화 범위를 넓혀 석유 수입을 줄일 수 있습니다. 전고체 배터리를 통해 에너지 자립까지 한발 더 나아가게 되는 셈입니다.

우리나라는 석유를 100% 수입하면서도 정유 제품을 순수출하는 전세계 유일한 나라입니다. 우리나라가 가진 세계 최고 수준의 원유 정제 능력 덕분입니다. 우리나라는 배터리 산업 강국이기도 합니다. 중국이 추진하는 배터리를 이용한 새로운 에너지 안보 강화 정책은 우리나라도 참고할 정책이라 생각됩니다. 중동 지역의 석유 공급이 언제 완전히 정상화될지는 아직 알기 어렵지만, 우리나라가 가진 정유와 배터리 산업의 역량을 활용한다면 에너지 충격을 견디는 힘을 키울 수 있습니다. 이란 전쟁에 따른 글로벌 에너지 위기가 우리나라의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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