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현의 에너지 On] 되살아난 유럽 전기차, K-배터리 반등의 발판으로

2026. 10. 14 고성현, 디지털데일리 기자 4분 읽기

💡 핵심 요약

  • 구매 지원책과 보급형 모델 확대로 회복세 이어가는 유럽 전기차 시장… 올해 1~8월 EU 순수 전기차 신규 등록 164만 대 돌파, 신차 비중 21.7%로 확대
  • EU 산업가속화법(IAA) 추진으로 현지 생산 기반의 중요성 부각… SK온 등 국내 배터리 업체의 유럽 생산 거점 활용도와 공급 경쟁력 주목
  • 유럽 전기차 회복에 양극재·전해액 등 소재 현지화 중요성 확대… 북미 ESS와 함께 K-배터리의 수요처 다변화·재도약 기회 주목

지난해까지만 해도 유럽 전기차 시장에 대한 우려가 컸습니다. 독일을 비롯한 주요 국가의 구매 지원 축소와 경기 둔화가 맞물리면서 판매 성장세가 꺾였고, 완성차 업체들도 전동화 전략의 속도를 조절하기 시작했죠. 전기차 수요 확대를 기대하며 현지 생산능력을 늘려온 국내 배터리 셀 제조사와 소재 업체도 그 영향을 피하기 어려웠습니다.

올해 들어서는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에 따르면 올해 1~8월 유럽연합(EU)에서 신규 등록된 배터리 전기차는 164만 대를 넘어섰습니다. 전체 신차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도 21.7%로 지난해 같은 기간 15.8%보다 높아졌습니다. 독일과 프랑스 등 주요 시장에서도 판매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EU 신규 등록 배터리 전기차는 2026년 1~8월 164만 1,333대로 신차 비중 21.7%, 2025년 같은 기간(113만 2,516대, 15.8%)보다 늘었다(출처 ACEA)

판매량만 늘어난 것도 아닙니다. 완성차 업체들은 다시 전기차 신차를 늘리고 있고 유럽연합도 역내 배터리와 소재 생산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죠. 한동안 움츠러들었던 유럽 전기차 시장이 다시 움직이면서 현지에 생산 기반을 구축해 온 국내 배터리 업계에도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 보급형 전기차로 넓어지는 유럽 회복세

유럽 전기차 시장의 변화는 최근 완성차 업체들의 실적에서도 확인됩니다. 테슬라는 올해 1~8월 유럽연합과 영국,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지역에서 신규 등록 대수가 전년 동기보다 43.3% 증가했습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올해 3분기 유럽에서 16만 8,700대를 판매해 전년 동기보다 5% 성장했습니다. 이 중 순수 전기차(BEV)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3분의 1 수준이었고, 판매량은 78% 늘어 분기 기준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볼보 역시 같은 기간 유럽 및 기타 지역에서 9만 548대를 판매했고 이 가운데 순수 전기차는 4만 466대로 전체의 약 45%를 차지했습니다. 해당 지역 BEV 판매량도 전년 동기보다 51% 증가했습니다.

BEV 판매 회복에는 주요국의 전기차 구매 보조금 재개와 보급형 모델 확대가 영향을 줬습니다. 고가 모델 중심이던 시장에 중·저가 전기차가 잇따라 출시되면서 소비자 선택지가 넓어졌고, 에너지 불안에 따른 유가 상승과 보조금 효과도 더해졌죠. ACEA 역시 올해 유럽 전기차 수요 확대의 배경으로 각국의 시장 지원책과 다양해진 전동화 모델을 꼽고 있습니다.

충전기 옆에 주차된 유럽형 소형 전기차들, 보급형 모델 확대가 유럽 전기차 회복을 이끈다(AI 생성 이미지)

르노는 르노5 E-Tech를 앞세워 올해 상반기 유럽 B세그먼트(소형) 전기차 판매 1위를 기록했습니다. 여기에 2만 유로 안팎의 트윙고(Twingo) E-Tech까지 투입하며 제품군을 넓히고 있죠. 폭스바겐도 소형 전기차 ID. Polo를 출시하며 보급형 시장 공략에 나섰습니다. 여기에 스코다와 쿠프라까지 더해 2만 5000유로 안팎의 소형 전기차 4종을 유럽 시장에 순차적으로 투입하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유럽 맞춤형 소형 전기차를 앞세우고 있습니다. 현대차는 지난 8월 튀르키예 이즈미트 공장에서 소형 해치백 아이오닉3 생산을 시작한 데 이어 9월부터 유럽 판매에 돌입했습니다. 기아 역시 올해 슬로바키아 질리나 공장에서 유럽 시장을 겨냥한 소형 전기 SUV EV2 생산을 시작했죠.

| 현지 생산 기반 갖춘 K-배터리, 다시 커지는 기회

완성차 업체들의 전기차 판매 회복은 유럽에 생산 거점을 구축해 온 국내 배터리 업체들에도 긍정적인 변화입니다. 전기차 판매가 늘면 배터리 수요도 함께 증가하는 데다, 유럽연합이 역내 생산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강화하면서 현지에서 직접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는 기업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어서입니다.

대표적인 정책이 산업가속화법(IAA)입니다. EU는 올해 IAA를 제안한 데 이어 최근 구체적인 절충안을 마련하며 전기차와 배터리 등 전략 산업의 역내 생산 확대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공공 조달과 공적 지원 대상 전기차에 EU 내 조립과 배터리 셀 등 주요 부품의 역내 생산 요건을 적용하고, 향후 양극활물질과 배터리관리시스템(BMS) 등으로 범위를 넓히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죠. 유럽 전기차 시장이 성장할수록 현지 생산 기반을 갖춘 국내 배터리 업체의 경쟁력이 함께 높아질 수 있는 구조입니다.

국내 배터리 3사는 이미 유럽에 생산 기반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SK온은 헝가리 코마롬과 이반차, LG에너지솔루션은 폴란드 브로츠와프, 삼성SDI는 헝가리 괴드에 각각 생산 거점을 두고 있죠. 수요 둔화기에는 대규모 생산능력이 부담으로 작용했지만, 유럽 내 전기차 수요가 지속적으로 우상향한다면 기존 공장의 전략적 가치도 더욱 높아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SK온의 헝가리 코마롬 2공장은 2분기 기준 가동률이 80% 이상으로 올라 정상 궤도에 다가섰습니다. 폭스바겐과 포드 등 주요 고객사의 전기차 판매가 늘어난 덕분입니다. 여기에 핵심 고객사인 현대차그룹이 유럽 전기차 판매 확대에 나선 점도 긍정적인 요인입니다.

SK온 헝가리 코마롬 제2공장 전경, K-배터리의 유럽 생산 거점
▲ SK온 헝가리 코마롬 제2공장 전경

삼성SDI도 유럽 생산 거점 활용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주요 고객사인 BMW용 신규 원통형·각형 설비를 들여오는 한편, 새롭게 확보한 메르세데스-벤츠용 NCM(니켈·코발트·망간) 라인 설비 반입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 역시 중국 난징 공장을 통해 테슬라용 유럽 전기차 물량에 대응하는 한편, 폴란드 브로츠와프 거점을 활용해 르노그룹으로 향하는 전기차용 LFP 배터리를 공급할 계획입니다.

| 소재 현지화에 북미 ESS까지… 재도약 노리는 K-배터리

유럽 전기차 시장 회복으로 시작된 선순환 흐름은 배터리 소재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유럽 내 배터리 생산이 늘어날수록 양극재와 전해액 등 핵심 소재를 현지에서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공급망의 중요성도 함께 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에코프로비엠은 올해 헝가리 데브레첸 공장에서 양극재 양산을 시작하며 국내 양극재 업체 가운데 처음으로 유럽 현지 생산에 들어갔습니다. 연간 생산능력은 5만 4,000톤으로, 기존 니켈·코발트·알루미늄(NCA)에 더해 니켈·코발트·망간(NCM) 제품까지 대응할 수 있도록 생산라인도 다변화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데브레첸 인근에 공장을 둔 중국 CATL과도 공급 협상을 이어가며 유럽 내 고객 기반과 생산능력 확충에 나섰습니다.

전해액 업체들도 일찌감치 유럽 현지 거점을 확보해 왔습니다. 엔켐은 폴란드와 헝가리에서 전해액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동화일렉트로라이트 역시 헝가리에 생산 기반을 두고 적용 제품군을 확장 중에 있습니다. 전해액은 배터리 셀 생산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투입되는 핵심 소재입니다. 특히 운송과 보관 과정에서 관리가 필요한 만큼 셀 생산 거점과 가까운 곳에서 안정적으로 공급할 필요가 있죠. IAA가 구체화될수록 양극재와 전해액 등의 현지 조달 경쟁력이 중요해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1년 전만 해도 적자 수렁에 빠졌던 K-배터리에 조금씩 청신호가 켜지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북미에서는 에너지저장장치(ESS)가, 유럽에서는 전기차가 중심이 돼 반등 흐름을 잡아주고 있죠. 유럽 전기차와 북미 ESS가 양대 성장축으로 자리 잡는다면 국내 배터리 업계로서는 수요처를 다변화하면서 다시 성장 속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이미 확보한 생산 거점과 공급망을 바탕으로 두 시장에서 경쟁력을 얼마나 끌어올릴지가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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