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재의 에너지 프리즘] 미국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의 유일한 해결책: BESS

2026. 07. 09 이충재, 한국투자증권 에너지/석유화학 애널리스트 5분 읽기

■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폭증, BESS가 미국 전력난의 현실적 해법으로 부상

전력비 경쟁 격화 속 미국 빅테크의 자가 발전·신재생에너지·BESS 전략 본격화

북미 BESS 공급 부족과 안보 이슈 속 한국 2차 전지 기업의 기회 확대

요즘 발표되는 AI 데이터센터 건설 계획은 대부분 기가와트(GW) 단위입니다. 1GW 데이터센터의 연간 전력 소비량(가동률 60% 기준)은 5TWh입니다. 인천광역시의 가정용 전력 수요와 맞먹습니다. 미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에 따르면 2025년 말 기준 미국에서 가동 중인 데이터센터는 50GW로 4년 만에 2.5배 늘었습니다. 2026년 6월 기준 발표된 미국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의 총 전력 수요는 356GW에 달합니다. 우리나라 발전 설비의 3배에 달합니다. 전력 수요 기준 상위 5개 프로젝트는 원전 7~10기에 해당하는 7.0~9.7GW 규모로 추진됩니다. 미국 데이터센터 프로젝트가 계획대로 추진되려면, 전례가 없는 규모의 전력이 향후 5~7년 안에 공급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기술은 가격이 충분히 낮아졌을 때 사회 전체로 확산됩니다. 증기기관, 전력, 인터넷이 그러했습니다. 수요는 가격이 낮아져야 늘어납니다. AI도 다르지 않을 겁니다. 거대언어모델(LLM)의 성능이 일반 사용자가 차이를 체감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상향 평준화되면, 업체 간 경쟁력 차별화 요인은 토큰(Token) 생산 원가가 될 것입니다. 토큰 생산 원가는 전력 요금에 좌우됩니다. kWh당 1~2원의 발전 원가 차이가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을 가르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글로벌 대표 LLM은 미국과 중국에서 개발되고 있습니다. 두 국가의 전력 요금 격차는 이미 큽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2026년 미국 산업용 전력 요금은 8.8센트/kWh, 상업용은 13.9센트/kWh로 2020년 이후 30~35% 상승했습니다. 반면 중국은 정부 주도로 발전 설비와 송·배전망을 건설하고 있습니다. 에너지 효율이 높은 데이터센터는 0.27~0.47위안/kWh(약 3.7~6.5센트), 즉 미국의 절반 이하로 전력을 공급받고 있습니다. 1.2조 위안(270조 원)이 투입되어 2033년부터 연간 300TWh의 전력을 생산하려는 야루짱부강 수력 발전소 프로젝트의 투자비 대비 효율(1.1TWh/조원)은 미국 신규 원전(0.55TWh/조원)의 2배입니다. 800kV 이상 초고압직류(UHVDC) 송전 설비도 세계 37개 중 35개가 중국에 있습니다. 미국의 고성능 반도체·LLM을 통한 AI 경쟁력 확보 전략에 중국은 전성비(電性比) 향상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미국 전력 산업은 민간 기업 중심입니다. 미국은 중국처럼 전력 산업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발전소를 지을 사람도 부족합니다. 미국 건설협회는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를 맞추려면 2026년 34.9만 명, 2027년 45.6만 명의 신규 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가장 단기간에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가스 터빈도 주문이 밀려 있습니다. 신규 주문 후 전력을 생산하기까지 최소 5년 이상이 필요합니다. 원전(SMR 포함) 또한 착공 후 8~10년이 지나야 전력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데이터센터 건설 증가에 따른 전력 부족은 시장 가격으로도 확인됩니다. 미국 최대 전력 도매 운영기관 PJM의 용량 경매 가격은 2년 사이 11배 이상 급등했습니다.

미국 Big Tech 기업들은 중국 경쟁 업체들과 달리 스스로 전력을 확보해야 됩니다. Google은 2025년 12월 신재생에너지 발전 업체 Intersect Power를 47.5억 달러에 인수하고, 태양광·풍력 발전과 BESS(Battery Energy Storage System)를 주력으로 하는 1GW급 Meitner Energy Center를 짓고 있습니다. Amazon은 원자력 발전소 인근에 데이터센터를 지었습니다. xAI는 420MW 규모의 이동식 가스터빈을 통해 편법으로 전력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미국 데이터센터 개발 업체들이 최근 세운 전략은 부지 내 자가발전(Behind-the-Meter)입니다. 늘어나는 전력 수요에 단기간에 대응할 방법은 신재생에너지 발전과 BESS의 결합밖에 없습니다. BESS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의 간헐성을 보강하고, 데이터센터 가동에 따른 전력망 부담을 낮출 수 있습니다. 미국 BESS 수요는 이미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2026년 1분기 북미 BESS 수요는 32.7GWh로 전년 동기 대비 83% 증가했습니다.

미국에서 발표된 데이터센터 건설 계획 중 전력 수요 기준 상위 90개(205GW)가 계획대로 추진된다면, 2030년까지 누적으로 1.4TWh의 BESS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2026년 북미 예상 수요의 10배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수요입니다. 앞서 서술한 것처럼 단기간에는 가스터빈, 원전 등으로 전력을 생산할 수 없습니다. 현재는 신재생에너지 발전과 BESS가 데이터센터의 유일한 에너지 솔루션입니다. 전력 수요 기준 상위 30~50개 프로젝트만 지어진다고 보수적으로 가정해도 BESS 수요는 500~820GWh에 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엄청난 규모의 수요가 예상되지만, 북미 지역 BESS용 배터리 생산 능력은 2027년까지 130GWh밖에 되지 않습니다.

전기차 산업 성장에도 우리나라 2차 전지 업체들이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고객사의 판매 부진 때문이었습니다. 데이터센터용 BESS는 전기차용 2차 전지와 사업 구조가 다릅니다. 우선 대체재가 없습니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라는 대체재가 있지만,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를 감당하며 신재생에너지 발전의 간헐성을 보완할 수단은 BESS뿐입니다. 제품 또한 표준화되어 있습니다. 차종별 맞춤 설계가 필요한 전기차 배터리와 달리 BESS는 컨테이너 형태의 표준 제품이어서 몇몇 고객사의 판매 부진에 따른 영향이 제한적입니다. 마지막으로 주요 고객인 Big Tech와 AI 기업들은 미국 자동차 업체와 달리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2차 전지 업체들이 어려움을 겪었던 이유는 전지의 성능과 생산 원가보다는 고객사들의 판매 부진 영향이 큽니다. 무엇을 파는지보다 누구에게 파는지가 수익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칩니다.  

변화는 수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SK온은 미국 신재생에너지 개발사 플랫아이언 에너지와 1GWh 공급 계약을 맺고 2030년까지 6.2GWh 프로젝트의 우선협상권을 확보하며 북미 ESS 시장에 진입했습니다. SK온은 ESS 수요에 대응해 전기차 배터리 라인 일부를 ESS용 LFP 라인으로 전환을 추진 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SK온 ESS 수주는 안전 기술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SK온 ESS 제품 ‘그리드온(GRIDON)’에는 배터리 상태를 정밀하게 진단하는 EIS(임피던스 분광법) 기술이 적용됐습니다. EIS는 다양한 주파수의 교류 신호를 활용해 배터리 내부 상태를 분석하는 기술로, 셀 노화, 내부 합성 등 이상 징후를 조기에 판별할 수 있습니다.

그리드온은 사전 진단에 더해 화재 대응 기술도 갖췄습니다. 듀얼 밸브 구조와 침수 소화 시스템을 통해 화재 발생 시 냉각수를 자동 투입하고 초기 열폭주를 억제하도록 설계됐습니다. 향후 데이터센터용 ESS 시장에서는 이처럼 조기 진단, 열폭주 억제, 화재 확산 방지와 같은 안전 설계 역량이 수주 경쟁력의 핵심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국 업체와의 경쟁은 여전히 남아 있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AI로 인해 전력망과 데이터센터는 이제 국가 핵심 안보 시설이 되었습니다. 美 국방부는 2025년 1월 CATL을 ‘Chinese Military Company’로 지정했습니다. 최근 미국과 유럽의 데이터센터 서버에 장착되는 백업 배터리(BBU)에는 중국산이 채택되지 않고 있습니다. 태양광 발전에 필요한 인버터조차 중국산 사용을 규제하고 있습니다. 국가 안보와 연계되는 AI 산업의 전력 공급원을 갈등 관계에 있는 국가의 기업에서 조달할 가능성은 낮습니다. 중국 기업과 우리 기업이 접근할 수 있는 BESS 시장 자체가 분리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미국 데이터센터 가동에 필요한 1.4TWh의 BESS를 공급할 수 있는 업체들은 우리나라 2차 전지 업체들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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