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셸(Shell), 파빌리온 인수 완료로 아시아 LNG 허브 장악
■ AI 데이터센터발 전력 수요 폭증… 가스, ‘브릿지’ 넘어 ‘메인 에너지’로 격상
■ 지정학 리스크 벗어나기 위한 밸류체인 구축

글로벌 석유 메이저 기업들이 천연가스(LNG) 영역에서의 영토 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저탄소 연료로의 이행을 넘어, 인공지능(AI) 산업 확산에 따른 전력 수요 폭증이라는 실질적인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풀이된다. 한때 재생에너지 시대로 가기 위한 ‘브릿지(Bridge, 가교) 연료’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던 천연가스가 2026년 현재 에너지 시장의 ‘메인 스트림’으로 재평가받는 분위기다.
| 셸(Shell), 파빌리온 인수로 아시아 영토 확장 완료
가장 공격적인 행보를 보인 곳은 셸이다. 셸은 2025년 4월 1일,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Temasek) 산하의 파빌리온 에너지를 최종 인수하며 글로벌 LNG 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굳혔다. 이번 계약으로 연간 650만 톤(MTPA) 규모의 공급권을 확보한 셸은 싱가포르와 유럽을 잇는 가스 밸류체인을 통합, 아시아 시장 내 가격 결정력을 대폭 강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수의 시너지는 즉각적인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셸은 확대된 네트워크를 발판 삼아 2026년 1월, 베트남 국영 PV Gas와 연간 40만 톤 규모의 장기 LNG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베트남 최초의 장기 LNG 도입 사례다. 아울러 나이지리아 해상 가스(HI Project) 개발에 대한 최종 투자 결정(FID)이 임박하는 등 공급 역량 강화도 병행하고 있다.
| 에퀴노르와 토탈에너지스, 미국과 아프리카 ‘가스 싹쓸이’
유럽의 에너지 강자들도 가스 자산 확보에 수조 원을 쏟아붓고 있다. 노르웨이의 에퀴노르(Equinor)는 2024년 말, 미국 최대 셰일가스 생산지인 앱팔라치아 분지 자산을 대대적으로 스왑(Swap)하며 체질 개선에 나섰다. 에퀴노르는 여기에 탄소포집저장(CCS) 기술을 결합한 ‘블루 수소’를 차세대 성장 축으로 낙점하고, 독일 RWE 등과 수소 파이프라인 전환 협력을 긴밀히 논의 중이다.
토탈에너지스(TotalEnergies) 역시 2030년까지 가스 비중을 50%로 확대한다는 목표 아래 카타르와 모잠비크에서 대규모 자산을 확보했다. 특히 치안 문제로 중단됐던 모잠비크 LNG 프로젝트는 2026년 1월, 전면 재개(Full Restart)를 공식 선언하며 2029년 첫 생산을 향한 가속도를 내고 있다.
| AI 데이터센터가 불러온 가스의 ‘두 번째 전성기’
메이저 기업들이 가스에 집착하는 배경에는 AI 데이터센터발 전력 수요 폭증이 자리 잡고 있다. 글로벌 에너지 조사기관 우드 맥켄지(Wood Mackenzie)는 “데이터센터 가동에 필수적인 ‘기저 전력(Baseload)’을 공급하는 데 있어, 건설 기간이 긴 원전의 대안으로 즉각 가동 가능한 가스 발전이 부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골드만삭스 역시 2030년까지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증가분의 상당 부분을 천연가스가 책임지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 지정학 리스크 등 에너지 안보 이슈, 긴 호흡과 안목 필요
글로벌 메이저들의 거침없는 LNG 영토 확장은 자원 빈국인 대한민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메이저 기업들이 가스 자산을 독점할 경우, 에너지 안보 위기는 물론 도입 단가 상승이라는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아울러 에너지 이슈는 지정학적 리스크에 쉽게 노출된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전쟁은 전 세계 에너지 시장에 큰 충격을 안겼다. 카타르의 LNG 수출은 중단됐으며 이란은 전례에 없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나섰다. 우리나라가 사용하는 LNG의 경우 카타르에서 들여오는 물량이 대략 15~20% 정도 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글로벌 메이저들의 영토 확장과 더불어 에너지 이슈가 안고 있는 지정학적 리스크는 에너지 안보의 절대적 위협 요소다. 하지만 최근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상징성을 갖는 사례가 있었다. SK이노베이션 E&S는 자사 지분이 있는 호주 바로사 가스전에서 생산되는 LNG를 직도입해 2월 23일 충남 보령으로 입항했다. 바로사에서 출항한 지 불과 11일 만이다. 14년 전 선제적 투자를 단행했던 결실이 2026년 현재 비로소 국내로 유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사 가스전에서 채굴된 가스는 현지에서 액화 공정을 거친 뒤, 전용 수송선을 타고 우리 가정의 난방과 발전소 연료로 공급된다. 다시 말해 우리 자본으로 캐낸 LNG를 우리 배로 싣고 와 우리가 사용하는 이른바 ‘자원 개발형 밸류체인’을 민간 기업 최초로 독자 완수한 것이다.

실제 지난 2월 18~19일 파리에서 열린 2026년 IEA(국제에너지기구) 각료회의(Ministerial meeting)는 에너지 안보를 핵심 정책 과제로 재차 강조하고, 전력화 시대에 대비해 공급망 다변화와 회복탄력성 강화를 국제적 공통 과제로 제시했다. 이는 가스 자산을 포함한 에너지 공급망 확보가 더 이상 개별 기업의 선택이 아닌, 국가적 생존 전략임을 표명하는 것이라고 언론들은 분석했다.
SK이노베이션 E&S가 확보한 연간 130만 톤의 물량은 국내 전체 수입량의 약 3%를 차지하는 규모다. 아울러 중동이나 미국에 비해 항해 이동 거리가 훨씬 짧아 운송 기간이 이들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다. 지정학적 리스크에서도 훨씬 낮다. 자원 확보 사업은 긴 호흡과 안목이 필요하다. 국가 에너지 안보의 든든한 버팀목을 만든다는 측면에서 이를 바라볼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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