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엑스(COEX) 전시장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천장에 부딪혀 퍼지는 안내 방송 속에서 배터리 업계 관계자와 관람객들의 목에 건 명찰이 흔들렸다. 사람들의 발걸음은 한 쪽으로 향했다. 기술은 늘 그렇다. 설명보다 먼저, 분위기로 사람을 끌어당긴다.
3월 11일부터 3일간 열린 국내 최대 배터리 산업 전시회 ‘인터배터리 2026’. 그곳에 마련된 SK온 부스의 전면은 올해 전시 슬로건인 “차세대 에너지 시대를 열다(Unlock the Next Energy)”를 모티프로 제작된 대형 잠금해제(Unlock) 아이콘으로 채워져 관람객들을 가장 먼저 맞이했다.
짧은 슬로건이지만, 전시 구성은 그 문장을 길게 풀어 쓰고 있었다. 전기차(EV)의 시간에서 출발해 에너지저장장치(ESS)와 로봇 산업으로 건너가고, ‘열 관리’와 차세대 배터리의 로드맵까지. 에너지 시대의 현재와 미래를 한 번에 펼쳐 보이는 동선이었다.
| SK온 부스 중 가장 많은 관람객이 몰린 곳은? 나야, ESS!
특히 사람들이 가장 오래 머문 곳은 ESS 기술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 공간이었다. SK온이 중점을 두고 있는 사업인 만큼 현장에서 가장 많은 질문이 오간 곳이기도 했다. 전 세계적으로 대용량·저비용 ESS 수요가 커지는 흐름에 맞춰 SK온이 현재 개발 중이라는 ESS용 고에너지 밀도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그리고 컨테이너형 ESS 제품(DC 블록)이 선을 보였고, 관람객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 설계부터 제조까지, ‘현재의 기술’을 펼쳐 보이다 – 리딩 테크
SK온은 이번 전시에서 SK온만의 기술력과 경쟁력을 리딩 테크(Leading Tech), 퓨처 테크(Future Tech), 코어 테크(Core Tech)라는 세 구역으로 나눠 소개했다. 관람객들은 SK온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핵심’을 순차적으로 따라가게 된다.
리딩 테크의 시작점은 배터리의 설계부터 제조까지, 직접 확인 가능한 체험형 전시인 ‘R&D 스튜디오(studio)’였다. 이곳에서 획기적으로 배터리 개발 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SK온의 AI 기반 R&D 플랫폼, ‘AI 연구원’을 만났다. AI가 성능 예측과 원가 산출을 기반으로 설계 안을 제안하고, 실제 연구원이 이를 검토해 최종 안을 확정하는 프로세스로 이뤄진다고 한다. 배터리의 개발 속도를 향상시키고 시행착오의 비용을 줄이는 ‘AI와 인간의 협업 구조’를 전면에 내세운 것처럼 보였다.
이어 눈에 들어온 것은 형형색색의 블록들이었다. 전시장 한쪽에 놓인 그것들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배터리의 성능과 안정성을 좌우하는 핵심 소재인 ‘양극재’와 ‘음극재’를 직관적으로 풀어낸 것이었다. 관람객들은 각기 다른 조합의 블록을 홈에 직접 끼워 보며 에너지밀도의 차이를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복잡하게만 느껴지던 배터리 기술이 손끝의 감각으로 한층 가까워진 순간이자, 전시가 ‘보는 것’에서 ‘이해하는 것’으로 넘어가는 지점이었다.
공장 밖에서 쉽게 보기 힘든 전극(양극/음극)과 젤리롤 실물 제품 앞에서는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늦춰졌다. 믹싱 공정과 코팅 공정에서 용매 없이 고체 파우더를 이용해 전극을 제조하는 방식인 SK온의 건식 전극 공정 기술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습식 전극 공정으로는 만들기 어려운 ‘고로딩(High-loading) 전극’ 기술과 LFP 건식 전극 기술을 집중 개발 중이라고 들었다.
‘배터리 포트폴리오 존’에서는 4가지 배터리 셀(cell)이 관람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 파우치형 고전압 하이니켈 셀: SK온이 프리미엄 시장을 목표로 개발 중인 에너지밀도 900Wh/L급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
- 46파이(Ø) 원형 셀: 초음파 용접이 아닌 외부 레이저 용접 기술을 적용, 이를 통한 금속 이물질 유입 억제로 내부 단락에 의한 저전압 불량이 방지됨
- 파우치 통합 각형 셀: 파우치 셀 여러 개를 알루미늄 케이스에 담은 제품으로 파우치 셀의 설계 유연성과 각형 셀의 구조적 장점이 결합돼 다양한 형태의 설계가 가능
- 각형 온 벤트 셀: 인터배터리 어워즈 2026 수상 제품
각형 배터리에 개발에 있어서 ‘벤트(vent) 위치의 제약’은 설계의 오래된 벽이었다. 이 벽을 넘기 위해 SK온은 레이저 인그레이빙(engraving) 기술을 활용해 열폭주 발생 시 가스와 열을 배출하는 벤트를 원하는 위치에 구현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나아가 레이저 제어 기술과 정밀 측정 기술을 결합해 가공 품질 신뢰성을 높이고, 균일하고 안정적인 벤트 품질을 확보하겠다는 계획까지 들으니 SK온의 ‘다음’이 더 기대됐다.
부스에 전시된 차량이 눈에 들어왔다. ‘제네시스 GV60 마그마’에 탑재된 NCM 배터리(84kWh급 4세대 배터리)는, 1회 충전 시 약 346km 주행이 가능하다고 한다. 일반 소비자는 물론 산업 전반의 ‘전동화(electrification) 전환’ 시대에 걸맞은 기술혁신의 산실처럼 느껴졌다.
| SK온의 NEXT INNOVATION – 퓨처 테크
퓨처 테크 구역으로 들어서자, ‘7분’이라는 전기차 충전기의 숫자가 관람객들을 붙잡았다. 전기차 구매자들의 고려 요건 중 하나인 충전 시간. SK온의 하이퍼 패스트(HYPER FAST) 배터리가 단 7분 만에 배터리 잔량 10%에서 80%까지 충전할 수 있고, 동시에 450km 이상 주행이 가능한 에너지밀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설명에 현장을 찾은 모두가 감탄했다.
이어 관람객들의 시선은 전기차 하부 구조를 그대로 구현한 모형으로 쏠렸다. 이 모형에는 SK온이 SK엔무브와 공동 개발한 ‘액침냉각 배터리 팩’의 작동 원리가 담겨 있었다.
절연성 플루이드(fluids)를 팩 내부에 직접 순환시켜 배터리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에 배터리 셀 안정성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액침냉각 기술. 이번 전시에서 SK온은 모듈 단계를 건너뛴 파우치 CTP(Cell To Pack, 셀투팩)와 셀-모듈-팩으로 구성된 CMP(Cell-Module-Pack) 기반의 ‘액침냉각 팩’ 모형도 선보였다.
이를 통해 SK온의 기술력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관람객이 버튼을 누르면, 파란색 냉각 플루이드에 담긴 이중 수조에서 모듈이 천천히 올라왔다가 다시 잠겼다. ‘플루이드에 잠긴다’는 동작을 구현한 걸 보니 액침냉각의 의미가 빠르게 이해됐다.
뒤편에는 SK온이 개발 중인 차세대 배터리 3종(황화물계 전고체 배터리/고분자 산화물 복합계 배터리/리튬 메탈 배터리)이 나란히 전시됐다. 현장을 찾은 업계 관계자들은 각 배터리의 향후 시제품 개발, 상용화 일정 등에 큰 관심을 보였다.
- 황화물계 전고체 배터리: SK온은 2025년 준공된 전고체 배터리 파일럿 플랜트에 국내 최초로 ‘온간등압프레스(WIP*) 프리 기술’을 적용해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킴. 또한 계면 저항을 낮춰 전기 흐름을 원활하게 해 배터리의 안정적인 충·방전이 가능해 수명을 늘림
* WIP: 배터리의 발열 반응 최소화 및 수명 연장 효과가 있지만, 배터리 셀의 밀봉 과정이 필요하고 연속식 자동화 공정을 구현하기 어려워 생산성이 낮은 기술
- 고분자 산화물 복합계 배터리: 산화물계 고체 전해질과 고분자 전해질을 복합화해 배터리의 화재 안전성을 향상시킨 차세대 배터리. SK온은 산화물, 고분자 전해질의 장/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독자적인 복합계 배터리 시스템을 바탕으로 화재 안전성이 향상된 NCM 배터리를 개발 중
- 리튬 메탈 배터리: SK온은 보호막 기술로 더 오래, 더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리튬 메탈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음. SK온의 보호막 기술은 전해액과 리튬 메탈이 직접 접촉하는 것을 차단해 화학적 부반응을 억제함. 이를 통해 셀의 용량 저하를 개선하고, 기존의 배터리와 대비해 캘린더 수명**을 향상시킴
**캘린더 수명(Calendar life): 시간 경과에 따라 배터리 성능이 일정 기준까지 저하되는 데 걸리는 기간
현대위아의 자율주행 모바일 로봇(AMR)도 볼 수 있었다. 스스로 목적지까지 최적 경로를 설정해 최대 1.5톤에 달하는 화물을 이송하는 그 로봇에는 SK온의 NCM 배터리가 탑재됐다고 한다. 실제로 현대자동차그룹의 전기차 전용 공장인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등 산업 현장에 적용되고 있다는 소개가 이어지는 순간, ‘전동화’라는 말이 훨씬 넓은 뜻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동화는 산업의 움직임을 바꾸는 일이라고.
| 스케일로 전하는 SK온의 핵심 – 코어 테크
코어 테크 존의 첫인상은 ‘스케일’로 다가왔다. 20피트(feet, 약 6미터) 컨테이너를 2미터 크기로 연출한 ESS 모형은 압도적이었다. “ESS는 이렇게 생겼다”, “현장에는 이런 사이즈로 들어간다”라는 말보다 대형 ESS의 설비 구조를 훨씬 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이 제품은 SK온의 ESS 설루션인 ‘그리드온(GRIDON)’으로 안전성이 강화된 제품이다. 실시간으로 예측이 가능한 EIS*** 기반 BMS(Battery Management System, 배터리 관리 시스템)와 액침침지****, 그리고 듀얼 밸브 구조를 통해 어떠한 상황에서도 빈틈없는 안전을 구현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SK온의 그리드온은 ‘ESS를 얼마나 더 안전하게, 오래 운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었다.
*** EIS: 교류 신호로 배터리 내부 저항과 반응 특성을 분석해 상태를 진단하는 기술
****액침침지: 화재 발생 시 배터리나 모듈을 냉각수에 침지하는 기술로, 이를 통해 화재 위험을 줄일 수 있음
또한 SK온이 개발 중인 전기차 및 ESS용 고에너지 밀도 LFP 배터리도 전시됐다. 기술 설명은 숫자로 시작했다. 기존 350~450Wh/L 수준의 파우치형 LFP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를 500Wh/L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라는 얘기였다. LFP 전극을 더 촘촘히 만들고(전극 고밀도화), 셀 내부의 쓸모없는 공간을 줄이며, 치수를 최적화해 성능을 끌어올린다. 동시에 배터리 수명과 출력 성능의 개선까지 함께 꾀한다는 것이다.
AI 데이터센터 등 화재 안전성이 중요해진 최근의 환경을 겨냥한 바나듐 이온 배터리(스탠다드에너지 협업)도 볼 수 있었다. SK온은 안전성 증대는 물론 NCM, LFP에 이어 바나듐 이온 배터리까지. 케미스트리 다각화를 통해 제품 포트폴리오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한다.
발걸음을 옮기자, 팩(Pack) 설루션 전시 공간이 이어졌다. 가로 4미터, 세로 3미터 크기의 대형 메시(mesh) 구조의 LED 스크린과 4개로 나눠진 CTP 실물 모형과 마주했다. ▲CMP, ▲파우치 CTP, ▲대면적 냉각 기술(Large Surface Cooling, LSC) CTP, ▲파우치 통합 각형 팩 등 SK온의 4가지 팩 설루션 기술을 담은 각각의 RFID 큐브를 준비된 장소에 올리면 대형 메시 LED에서 설명이 시작되는 인터랙티브형 전시였다. 특히 LSC CTP와 파우치 통합 각형 팩 영상에 관심이 집중됐다.
LSC CTP는 하이니켈 및 미드니켈 NCM 배터리의 열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냉각 플레이트가 적용된 첨단 팩 설루션으로, 냉각 플레이트가 셀과 셀 사이에 배치돼 배터리 전체 면적을 고르게 식힐 수 있다는 게 강점이었다. SK온이 이번 인터배터리에서 새롭게 선보였다는 파우치 통합 각형 팩은 파우치 셀의 설계 유연성과 각형 셀의 구조적 강점을 결합한 제품으로, 한 단계 진화한 SK온의 폼팩터 기술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밖에도 중앙에 위치한 원형의 전시 테이블, Core Tech 테이블에선 SK온의 글로벌 ESS 사업 가속화를 위한 ‘컨테이너형 DC 블록’, 인터배터리 어워즈 2026 수상작인 ‘각형 온 벤트 셀‘, SK온이 올해 최초 공개한 ‘파우치 통합 각형 셀’ 등 올해 SK온의 주요 기술을 한 번 더 되새길 수 있었다.
인터배터리 2026 현장에서 만난 전시 담당자, SK온 PR팀 유지연 PM은 “2년 연속 인터배터리 전시 기획을 맡게 되어 감회가 더욱 새롭다”라며 “올해는 SK온이 지난해에 비해 얼마나 더 진화했는지, 그리고 어떤 차별화된 미래 에너지를 준비하고 있는 지를 중점적으로 봐 주셨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관람을 끝낼 즈음, 이번 SK온 부스의 슬로건이 재차 머리에 떠올랐다. “Unlock the Next Energy.” 그 문장은 EV에서 ESS로, 로봇과 열관리로, 그리고 차세대 배터리와 팩 설루션으로. SK온의 영역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또 그것이 어떤 산업의 필요와 맞물려 있는지를 한눈에 보여줬다. 이번 전시는 결국, 차세대 에너지를 여는 SK온의 집합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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