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MF 총재, “상상하기 싫은 상황까지 생각하고 대비해야”
■ 석유 메이저들, 일제히 에너지 시장 변동성 우려 목소리 높여
■ JP모건, “25일 이상 봉쇄 시 산유국 저장 공간 부족해 생산 중단 가능”
■ 에너지 리스크의 금융 전이 가능성에 촉각
“상상하기 싫은 상황까지 생각하고 대비하라(Think of the unthinkable and prepare for it)”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Kristalina Georgieva) IMF 총재가 지난 9일 도쿄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현재 중동 사태를 진단하며 경고한 말이다. 그는 아시아·세계 에너지 안보 이슈가 우려 리스트 상위에 올랐다면서 “원유 가격이 10% 오르면 전 세계 물가가 0.4% 오르고 국내총생산(GDP)이 0.1∼0.2% 감소한다”고 덧붙였다.
이미 IEA(국제에너지기구, International Energy Agency)는 글로벌 석유 시장 역사상 가장 큰 공급 차질을 우려한 바 있는 가운데 엑슨모빌, 셰브론, 코노코필립스 등 석유 메이저 CEO들이 11일 열린 백악관 회의에서 “에너지 수송 차질이 세계 에너지 시장의 변동성을 계속 초래할 것”이라고 발언한 내용들이 주요 외신을 통해 보도됐다.

유라시아 지정학 리스크 분석기관인 스페셜유라시아의 비폴키 박사가 이달 초 펴낸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따른 글로벌 경제 충격’ 보고서는 보다 구체적이다. 그는 호르무즈 해협이 14일 이상 봉쇄될 경우 세계 경제가 구조 전환 국면에 진입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 해협은 하루 2000만 배럴(세계 석유 20%)을 처리하는 ‘에너지 동맥’으로, 봉쇄 장기화는 비축유·우회 송유관 효과를 넘어선다. 비폴키 박사는 유가 배럴당 100~150달러, 글로벌 공급망 재편, 동아시아 제조업 즉시 타격을 베이스 시나리오로 제시하며 OPEC+ 증산(일 13.7만 배럴)이 유일 완화 요인이라고 꼽기도 했다.
하지만 JP모건은 증산이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 지역의 생산 원유 및 정제된 석유 제품들의 흐름이 막혀 있는 가운데 JP모건은 해협이 25일 이상 봉쇄될 경우 저장 공간 부족으로 산유국들이 생산 중단(shut-ins)을 해야 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중동 지역은 최근 10년 새 원유 정제 설비를 확충해 같은 기간 동안 정제 능력을 50% 가까이 늘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실상 해협이 봉쇄되면서 일산(日産) 551만 배럴의 석유 제품 수출 물량이 갈 곳을 찾지 못해 국제 제품 가격의 상승이 원유 가격 상승 폭을 뛰어넘는 현상을 빚고 있다. JP모건의 글로벌 원자재 전략 책임자 나타샤 카네바는 “디젤, 항공유, LPG, 나프타 등 주요 석유 제품이 단순히 비싸서가 아니라 없어서 소비되지 않는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미국의 에너지 안보 전문가이자 관련 싱크탱크인 스팀슨센터와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등은 에너지 리스크의 금융 전이를 주목한다. 이들은 봉쇄 1개월 이상 시 아시아 통화 가치 하락, 금리 인상 압력 등을 경고한 바 있다. 호르무즈라는 단일 초크포인트가 아시아 유틸리티 요금과 제조업 마진, 재정 및 통화정책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시각이다. 로이터도 3일 기사를 통해 아시아 수입국들의 무역수지 악화 및 성장 둔화를 우려했다.

스팀슨센터의 에마 애시퍼드 선임연구원은 봉쇄가 길어지면 해상운임 50~80% 폭등, 운송 3~5일 지연, 보험료 7배 할증도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스팀슨센터는 이번 사태를 특히 아시아 가스 전략 안보 위기로 규정한다. 특히 카타르 LNG 수출 차질로 도시가스·발전 연료 압박이 현실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카타르 LNG의 상당 부분이 아시아로 향하는 만큼, 아시아 전력 요금, 공장 가동률, 수입 에너지 비용 등을 직접 압박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CNBC 역시 원유보다 LNG 시장에 더 장기적인 충격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에 비해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다른 견해를 보이고 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이달 초 펴낸 보고서에서 호르무즈 해협이 장기적으로 폐쇄되기 어려우며 몇 달간 무역 흐름에 경미한 차질을 빚는 정도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했다. 스탠다드차타드 역시 이번 갈등이 수주일 내 해결될 가능성이 70% 정도 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이들 전망은 모두 이달 초에 이뤄진 것이라는 한계는 존재한다.
한국의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제품별 산업 영향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분석한 현안 분석 자료를 9일 펴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NCC 중심의 아시아 석유화학 업종에 직접적인 충격이 가해지면서 에탄(ethane) 기반의 미국·중동과의 원가 격차가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정유산업의 경우 단기적으로는 재고 평가 개선을 기대할 수 있겠으나 장기적으로 원가 상승 및 가동 제약 리스크 확대, 석유화학산업은 나프타-에틸렌 스프레드가 낮은 현재의 글로벌 시장 상황에서, 마진 축소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현재 사태가 수 개월(1~6개월) 이상 지속되어 공급 병목이 확대된다면 “공급 차질 vs 재고 방출(비축유) vs 수요 둔화”의 줄다리기 속에서 고유가 유지 압박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각 기관마다 다양한 시각으로 이번 사태를 보고 있지만 호르무즈 해협이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의 핵심 병목지점이라는 점과 이 지역의 운송 차질이나 물류 불안만으로도 시장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사태의 장기화는 누구에게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에는 견해를 같이한다.
따라서 에너지 물류가 얼마나 빠르게 정상화되느냐에 모두의 관심이 모여 있다. IEA가 2월 17일 발간한 ‘2026년 에너지 혁신 현황(State of Energy Innovation 2026)’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에너지 혁신을 이끄는 핵심 동력으로 에너지 안보를 최우선 순위에 두었다. 혁신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당장 생존의 측면에서도 에너지 안보는 후순위로 밀릴 수 없는 과제다. 이번 사태가 수습 국면에 들어서더라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는 이슈임은 자명해 보인다.
■ 관련 글
- [최준영의 에너지 지오그라피] 미국-이란 긴장 고조, 호르무즈 해협의 암운
- [이충재의 에너지 프리즘] 미국과 이란의 전쟁: 수많은 예측과 전망 속에 확실한 것 한가지
- [AI 에너지 브리프] 글로벌 메이저, 가스 제국 건설을 향해 움직이다
- [AI 에너지 브리프] 성조기에 쫓긴 오성홍기, 미국 ESS 시장의 ‘역설’
- [AI 에너지 브리프] AI 시대의 ‘전력 저수지’ ESS, 전력대란 해법으로 부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