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ert Lens] 삼원계 배터리 시장의 성장 당위

2026. 03. 30 김현수, 하나증권 애널리스트 9분 읽기

ESS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며 LFP(리튬인산철) 배터리가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휴머노이드 로봇, 드론, 전기차 등 ESS 외 전방 산업군에서는 삼원계 배터리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로봇 및 드론 등 신규 시장의 개화, 리사이클링 중요성 증대, 자율주행 자동차 시장의 확대 등 세 가지 측면에서 삼원계 배터리 시장의 성장 당위를 살펴보고자 한다.

로봇과 드론이 요구하는 배터리 특수성

AI가 물리적 세계로 침투할 때 가장 큰 변화가 나타나는 영역은 생산수단과 이동 수단이다. 이른바 ‘Physical AI’ 시대는 로봇이 생산수단을 대체하고, UAM(도심항공모빌리티)∙드론∙자율주행 자동차가 이동수단을 대체하면서 구체화된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로봇과 드론의 ‘체력’에 해당하는 배터리가 필수적이다. 문제는 이러한 신규 디바이스들이 전기차나 ESS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성능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요구 조건은 결국 삼원계 시장의 성장 당위로 연결된다.

전기차 시장에서 LFP가 빠르게 점유율을 높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셀투팩(Cell to Pack, CTP)이 있다. 셀투팩이란 셀을 모듈로 묶는 중간 단계를 생략하고 셀을 바로 팩에 집적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이 방식을 통해 LFP는 셀 단위 에너지 밀도의 열세를 팩 단위에서 상당 부분 만회할 수 있다. 셀투팩 공법이 가능한 이유는 LFP의 높은 열적 안정성 덕분이다. 과충전이나 외부 충격에도 상대적으로 폭발 위험이 낮은 LFP는 셀 간 보호 구조를 단순화할 수 있어 팩 내 안전 부품을 줄이고 그 공간에 셀을 추가로 배치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셀투팩을 활용한 LFP의 팩 내 공간 활용도(VCTP, Volumetric Cell-to-Pack Ratio)가 약 80%에 달한다.

반면, 삼원계는 열폭주 리스크로 인해 셀 간 복잡한 냉각 및 보호 구조가 필수적이며, 이로 인해 팩 내 공간 활용도는 평균 60% 수준에 머문다. 결국 셀 에너지 밀도 측면에서 열위에 있던 LFP가 셀투팩을 통해 팩 단위 밀도에서 삼원계를 따라잡았다. 그 결과 전기차 시장에서는 LFP의 시장 점유율 상승이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로봇과 드론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휴머노이드 로봇과 드론 내부에는 대형 배터리 팩을 탑재할 수 있는 공간 확보가 어렵고, 팩 레벨에서의 무게 증가 역시 감당하기 어렵다. 부피와 무게가 비행 능력 및 이동성을 직접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로봇 및 드론과 같은 신규 시장에서는 팩 구조 최적화를 통한 공간 효율 향상보다 셀 자체의 에너지 밀도 개선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따라서 로봇 및 드론용 배터리는 팩이 아닌 셀 단위의 밀도 경쟁을 해야 한다.

셀의 단위 중량 에너지 밀도(Wh/kg) 기준으로 주요 배터리를 비교하면 LFP는 평균 90~170Wh/kg, 삼원계는 평균 200~300Wh/kg 수준으로 삼원계가 앞서 있다. 최근 중국 기업들의 LFP 양산 제품 밀도가 최고 186Wh/kg까지 개선됐다는 발표가 있었고, CATL 역시 4~5세대 LFP 제품을 통해 200Wh/kg 이상의 밀도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러나 여전히 LFP의 태생적 한계가 있다. 평균 전압(LFP 3.2V, NCM 3.6~3.8V)이 낮고 이론 용량이 높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삼원계와의 셀 밀도 격차가 크게 좁혀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다. 설령 5세대 LFP가 210Wh/kg 수준에 도달하더라도 상용 NCA(270Wh/kg)와의 격차는 여전히 25% 수준이다. 또한 향후 실리콘 음극재가 상용화될 경우 LFP보다 전압이 높은 삼원계의 셀 밀도 개선 폭이 더 크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이 역시 삼원계가 LFP 대비 격차를 벌릴 수 있는 요인이다.

물론 삼원계는 에너지 밀도가 높아질수록 결정 구조의 불안정성이 나타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최근 단결정 기술의 완성도가 높아지면서 이 문제 역시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고 판단한다. 현재 널리 쓰이는 삼원계 양극재는 다결정 구조다. 다결정 양극재는 작은 입자들이 모여 형성된 구조로, 반복적인 충∙방전 과정에서 미세 균열이 발생하기 쉽다. 반면 단결정은 하나의 큰 결정체로 구성돼 있어 균열 발생이 적고 상대적으로 수명 안정성이 높다. 이는 고전압·고에너지 밀도 구동에서 특히 유리하다. 실제로 최근 국내 배터리 및 양극재 업체들이 단결정 NCM 상용화와 고전압 안정성 개선 성과를 발표하고 있으며, 이는 향후 삼원계의 셀 단위 경쟁력을 더욱 강화하는 요소가 될 것으로 판단한다. 일례로, 올해 1월 SK온은 서울대학교와의 공동 연구를 통해 일반 양극재 입자 크기의 약 2배 수준인 10μm 입자 기반의 하이니켈 단결정 양극재 개발에 성공했다. 양극재 내 니켈 함량이 94%를 넘어 ‘울트라 하이니켈’로 불리는 이 제품은 입자의 단결 정화를 통해 전기차 1회 충전 시 주행거리 확장 과정에서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고출력 특성도 중요한 요소다. 배터리에서 ‘출력’은 단위 시간당 방전할 수 있는 전력으로, C-rate로 표현된다. 1C는 완전 충전 용량을 1시간 만에 방전하는 속도다. 드론이 이륙할 때나 로봇이 계단을 오를 때, 배터리는 순간적으로 3~10C의 고율 방전을 요구받는다. 이는 자동차가 정속 주행 시 필요로 하는 0.5~1C와는 차원이 다른 조건이다. 삼원계 배터리는 전도도와 리튬 확산 속도 측면에서 LFP 대비 유리하며, 특히 니켈 함량이 높을수록 고출력 구현에 적합하다. 고에너지 밀도와 고출력을 동시에 요구하는 로봇·드론 시장에서는 삼원계의 강점이 더욱 부각될 것으로 판단한다.

배터리 리사이클링의 중요성 증대

배터리 리사이클링 시장의 개화 역시 삼원계의 가치를 높이는 중요한 요인이다. 리사이클링의 필요성은 단순히 환경보호 때문만이 아니다. 핵심적인 당위는 공급망에 있다. 현재 미국과 유럽의 배터리 산업에서 가장 큰 리스크는 중국 공급망의 의존도 심화다. 배터리 제조 원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광물의 최상단 업스트림을 중국에 의존하는 현 구조가 유지된 채 배터리 시장이 성장할 경우, 미국과 유럽은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상당히 불안정한 구조에 놓이게 된다.

리사이클링은 이러한 공급망 리스크를 완화할 수 있는 대안이 된다. 내연기관차 시대의 동력원인 석유는 연소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로 비가역 전환된다. 반면 전기차 시대의 에너지 전달 매개체인 니켈∙코발트∙망간∙리튬은 배터리로서의 수명을 다한 이후에도 형질 변화 없이 그대로 남는다. 따라서 배터리에 남아 있는 광물을 재활용함으로써 앞서 언급한 공급망 리스크를 완화할 수 있다.

미국과 유럽은 점진적으로 리사이클링을 배터리 시장 진입의 조건으로 법제화하고 있다. 유럽의 핵심원자재법(CRMA, Critical Raw Materials Act)과 배터리 규정(EUBR, EU Battery Regulation)이 대표적인 사례다. 핵심원자재법은 원자재의 역내 재활용 비율을 25%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하고 있으며, 배터리 규정은 2031년 이후 코발트 16%, 리튬 6%, 니켈 6% 이상을 재활용 소재로 활용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미국 역시 장기적으로 리사이클링 관련 규제가 강화될 전망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삼원계 배터리는 LFP 대비 리사이클링 경제성이 높다는 점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배터리 리사이클링의 경제성은 회수 가능한 금속의 시장 가치로 결정된다. 여기서 LFP와 삼원계의 격차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삼원계(NCM∙NCA)는 구성 물질인 니켈·코발트·망간의 높은 시장 가치 덕분에 직접 재활용 시 kWh당 10~22달러 수준의 기대 이익이 발생한다. 반면, LFP의 철과 인산염은 시장 가치가 낮아 기존 습·건식 제련 공정을 적용할 경우 수익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직접 재활용 기술을 적용하더라도 이익이 미미하거나, 시나리오에 따라 손실이 발생한다(Nature Communications, 2024). PMC 논문(2025)에 따르면 LFP 중심 시나리오(CC-LFP)는 2060년까지 총 30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장기적으로 보더라도 LFP는 리사이클링 경제성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리사이클링 의무화 이후 LFP와 삼원계 간 원가 격차는 점차 축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약 25% 수준에 달하는 LFP와 삼원계 양극재 간 가격 차이는 NCM 재활용을 통해 발생하는 수익이 양극재 원가 일부를 상쇄하면서, 실질 원가 차이가 10% 내외까지 좁혀질 가능성이 높다. LFP는 재활용 과정에서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원가 격차는 더욱 좁혀질 가능성이 높다. 장기적으로 리사이클링이 시장 진입을 위한 일종의 ‘게이트 비용(Gate fee)’ 역할을 하면서 LFP의 경쟁력이 약화될 것으로 판단한다.

물론 ESS는 예외다. ESS는 LFP의 장수명·저비용 특성이 결정적으로 작용하며, 정책 당국 역시 ESS에 한해 리사이클링 의무 완화나 비용 지원을 고려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전기차, 로봇, 드론에 탑재되는 배터리는 상황이 다르다. 리사이클링 요건이 점차 강화되면서 해당 시장에서 삼원계의 구조적 강점이 더욱 부각될 것으로 판단한다.

자율주행 자동차 시장의 확대

자동차 산업의 미래는 자율주행이다. 인류 기술 발전의 역사는 시간 가치 극대화의 역사였으며, 아직 정복하지 못한 시간 가치, 즉 운전자의 시간을 극대화해주는 자율주행 기술의 상용화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필연적인 미래라 할 수 있다. 자율주행은 차량 내 컴퓨팅 수요의 가파른 증가를 야기하며, 이러한 컴퓨팅 수요 증가는 직접적으로 배터리 에너지 소모량 증가로 이어진다.

현재 Level 2 자율주행 시스템의 소비 전력은 200~600W 수준이다. 웨이모의 Level 4 자율주행 시스템은 약 1kW를 소비한다. GM 크루즈의 초기 자율주행 시스템은 3~4kW를 사용한 바 있으며, 차세대 제품에서는 이를 1kW 수준까지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Energy Central). 엔비디아 AGX Orin SoC 기반 연산 플랫폼의 열설계전력(TDP)은 약 800W다.

1kW의 자율주행 시스템이 하루 종일 가동될 경우, 배터리 가용 주행거리는 평균 10~30% 감소한다. 특히 도심 주행 시에는 최대 30%까지 주행거리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70kWh 배터리 팩을 탑재한 전기차가 자율주행 연산 과정에서 약 7~21kWh의 배터리를 소진한다는 의미다. 이러한 맥락에서 LFP와 삼원계 간 에너지 밀도 차이가 다시 중요해진다. Level 4 자율주행 차량이 동일한 주행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LFP 팩을 사용할 경우, NCM 대비 더 무거운 배터리 팩을 탑재해야 한다. 배터리 팩 무게 증가는 다시 에너지 소모를 늘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자율주행 자동차의 컴퓨팅 수요가 증가할수록 삼원계의 경쟁력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과제는 원가 절감

삼원계의 에너지 밀도 측면에서 강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격 경쟁력에서는 LFP 대비 열위에 있다. S&P 글로벌 데이터에 따르면 LFP 셀 가격은 kWh당 약 60달러로, NCM 셀 가격인 약 80달러 대비 25% 이상 낮은 수준이다. 원가 격차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삼원계의 기술적 우위는 충분히 발휘되기 어렵다.

최근 원가 혁신의 핵심 키워드로 건식 전극(Dry Electrode)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기존 배터리 전극 제조는 양극재를 용매에 녹여 슬러리를 만들고 알루미늄 집전체에 코팅한 다음, 긴 건조 오븐을 통과시키는 습식 공정으로 진행된다. 이 과정은 전체 셀 제조 비용에서 가장 큰 단일 비용 항목이며, NMP(N-메틸피롤리돈)라는 독성 용매를 사용하기 때문에 회수·처리 설비도 필요하다.

건식 전극은 용매 없이 분말 형태의 양극재와 바인더를 직접 필름화해 집전체에 압착하는 방식이다. 건조 오븐과 용매 회수 설비가 불필요하므로 셀 공장 내 설비 투자(Capex)와 에너지 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다. 테슬라는 2024년 말부터 4,680 셀 일부를 건식 전극으로 양산하기 시작했다. SK온도 건식 전극 관련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하며 가격 경쟁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건식 전극 기술의 상용화가 본격화될 경우 삼원계 배터리의 제조 원가는 LFP 대비 격차를 약 10% 이내로 좁힐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로봇·드론·자율주행 자동차 시장에서 에너지 밀도와 출력, 리사이클링 경제성 측면의 우위를 가진 삼원계 배터리의 시장 확대는 더욱 가속될 것으로 보인다.

현지 생산 역량 확보로 삼원계 경쟁력 강화 기대

배터리 시장은 전방 수요에 따라 LFP와 삼원계가 함께 성장하는 구조로 전개될 것이다.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이 수명과 충∙방전 사이클이 중요한 ESS 시장에서는 LFP가 주도권을 확고히 해나갈 가능성이 높다. 반면 로봇 및 드론 시장에서는 삼원계가 주도권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되며, 장기적으로 자율주행 자동차 분야에서도 삼원계 중심의 시장 구조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리사이클링을 강조하는 미국과 유럽의 정책 기조 역시 삼원계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모두 배터리 산업의 역내 생산을 강조하는 흐름이 뚜렷해지면서, 한국 기업들의 수혜가 확대될 전망이다. SK온은 단기적인 시장 부진에도 불구하고 미래 수요에 대비해 조지아의 SK배터리아메리카에서 삼원계 배터리를 양산 중이며, 현대차와의 합작 공장에서도 삼원계 배터리 양산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삼원계 시장에서 높은 경쟁력을 바탕으로 지배력을 공고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관련 시장에서의 기회 역시 점차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 본 칼럼은 외부 필진의 견해로, SK이노베이션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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