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사이익 얻은 러시아·중국을 향한 세계의 시선
■ ‘글로벌 무질서의 새로운 시대’ 진입 경고 목소리
미국과 이란 간의 무력 충돌 가운데 속에서 이 전쟁의 ‘보이지 않는 수혜자’로 러시아와 중국이 급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 세계 주요 언론에서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총성이 잦아든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싸고, 국제 사회의 시선은 이제 전황이 아닌 이해관계의 지형도로 옮겨가는 분위기다.
| 러시아 원유, 할인 벗어나 브렌트유와 유사 가격대 거래
러시아가 이번 전쟁의 단기 최대 수혜자라는 분석은 복수의 유력 매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제기됐다.
미국 경제매체 포춘(Fortune)은 지난 23일 ‘푸틴이 트럼프의 이란 전쟁에서 진짜 승자’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위치타 주립대 국제경영학 교수 우샤 헤일리의 발언을 인용해 “러시아가 이란 분쟁의 단기 최대 수혜자”라고 언급했다. 포춘은 또 영국 에너지·청정공기연구센터(CREA) 데이터를 분석한 가디언의 보도를 재인용하며, 러시아가 전쟁 개시 후 불과 2주 만에 화석연료 판매로 약 70억 달러를 벌어들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CBS 뉴스는 한발 더 나아가, 전쟁 발발 이후 유가가 폭등하자 미국이 러시아산 원유에 대해 30일짜리 제재 유예를 단행했고, 그 결과 기존에 배럴당 10~20% 할인돼 팔리던 러시아 원유가 브렌트유와 사실상 같은 가격대로 거래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CBS는 또 블라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러시아는 2026년에만 1,000억 달러 이상의 재정 적자를 냈는데, 중동전쟁 2주 만에 약 100억 달러를 벌어들였다”는 발언을 인용보도하기도 했다.

외교정책연구소(FPRI)도 분석 보고서에서 러시아의 우랄 원유 가격이 배럴당 70달러를 넘어섰다며, 이는 모스크바가 2026년 예산안에서 예상했던 약 59달러를 훨씬 웃도는 수치라고 지적했다. 또한, 이것이 역설적으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휴전을 모색할 경제적 유인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도 아울러 경고했다.

| “장기전에서 웃는 건 중국”… 더 조용한 수혜자
러시아의 반사이익이 단기적 성격임을 강조하면서, 오히려 중국이 더 구조적인 승자라는 시각도 설득력 있게 제기됐다.
유럽외교관계위원회(ECFR)는 ‘왜 러시아가 아닌 중국이 이란 전쟁의 진짜 승자인가’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러시아의 석유 횡재는 연초부터 쌓인 400억 달러 규모의 재정 적자를 감안하면 ‘1회용 반창고’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했다. 반면 중국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에 위안화 결제를 조건으로 달 경우, 미국이 일으킨 전쟁이 오히려 달러 기축통화 체제를 흔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ECFR은 “이 전쟁의 아이러니는, 워싱턴이 지불하는 비용이 베이징의 통화 야심을 실현시켜줄 수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알자지라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중국의 역할을 조명했다. 알자지라는 러시아가 이란에 미군 함정과 항공기의 위치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동안, 중국은 레이더 시스템과 위성항법 기술을 이란에 지원해 전자전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알자지라는 “러시아에게 이것은 전략적 부채의 회수이고, 중국에게는 실전 데이터를 수집하는 살아있는 실험실”이라고 분석했다.

에너지 전문 매체 ‘에너지 믹스 위켄더(The Energy Mix Weekender)’는 에너지 전환의 시각에서 중국의 강점을 따로 짚었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중국의 대규모 사전 투자가 중동발 에너지 충격에 대한 완충재가 됐으며, 이 전쟁이 역설적으로 글로벌 청정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싱크 탱크 ‘토다 평화연구소(Toda Peace Institute)’는 보다 거시적인 판단을 내놓았다. 연구소는 이번 전쟁이 러시아-중국 간 파트너십을 “신중한 협력 관계”에서 “구조적 동맹”으로 격상시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러시아는 배럴당 60달러 기준으로 연방 예산을 짰는데, 브렌트유가 120달러까지 치솟으면서 우크라이나 전비를 충당할 뜻밖의 재원을 확보하게 됐다는 것이다.

| 호르무즈의 다음 장면을 세계가 기다린다
전쟁 국면이 안정을 찾고 호르무즈 위기가 어느 정도 해소되더라도 이 지역을 둘러싼 근본적인 지정학적 방정식은 여전할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오히려 원유 수출 재개의 조건, 달러 결제 체계에 대한 도전, 그리고 러시아·중국·미국 사이의 새로운 세력균형 등 모든 변수가 더 복잡하게 적용할 것이라는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포춘은 2020년대 들어 코로나, 러-우 전쟁, 미국의 관세 정책, 그리고 이번 미-이란 전쟁이 이전의 충격들에서 온전히 회복되기도 전에 연이어 타격을 주고 있다며, 세계 경제가 예측 불가능한 공급망 붕괴와 가격 변동성이 일상화된 ‘새로운 글로벌 무질서의 시대(New era of global disorder)’에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명이라고 언급했다.

세계경제포럼은 미디어가 전황과 군사 피해에만 집중하는 사이,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경제적 연쇄 충격이 가려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전쟁의 경제적 파급 효과는 이미 걸프 지역을 넘어 글로벌 원자재 시장, 식량 시스템, 산업 공급망, 금융 여건, 지정학적 구도를 재편하고 있으며, 이 영향은 수년간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호르무즈를 향해 있는 세계의 시선은 이후의 세계 질서에 대한 숱한 논의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마치 일본의 재건이 6.25의 비극 위에 세워지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부상했듯 외신들의 시각대로 이번 전쟁 이후 누군가는 혜택을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앗아갈 뿐이다.
1938년 뮌헨협정을 맺어 나치 독일이 강해지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으로 평가되는 네빌 체임벌린(Neville Chamberlain) 전 영국 총리는 비록 평화 정책의 실패로 후대에 비판을 받고 있지만, 전쟁이 남기는 본질적 통찰에 대한 그의 명언은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전쟁에서는 어느 쪽이 스스로를 승자라 부르든, 진정한 승자는 없으며 모두가 패배자일 뿐이다. (In war, whichever side may call itself the victor, there are no winners, but all are los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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