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재의 에너지 프리즘] 미국과 이란의 전쟁(3): 에너지 위기에 가려진 원료 위기

2026. 04. 15 이충재, 한국투자증권 에너지/석유화학 애널리스트 4분 읽기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이 7주 차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사상 초유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사태로 중동산 석유 생산 차질 장기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 특히 중동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이 원유 도입선을 중동 외 지역으로 다변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크게 높아졌기 때문에 개별 국가 단위에서는 충분히 합리적 대응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아시아 지역 전체로 확산될 경우 어떤 영향이 있을지 파악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계 각지에서는 수많은 종류의 원유가 생산됩니다. 원유를 구별하는 지표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미국석유협회(American Petroleum Institute)가 경질(Light)과 중질(Heavy)을 나누기 위해 만든 API도(Gravity), 다른 하나는 황(Sulfur) 함량에 따른 저유황(Sweet), 고유황(Sour)입니다. 원유의 화학적 구성이 달라지면, 이에 맞춰 정유 설비도 달라져야 합니다. 미국 셰일 오일은 저유황 경질유(Light Sweet)이고, 중동산 석유 대부분은 고유황 중질유(Heavy Sour)입니다.

대한민국 정유사들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동산 원유를 주로 수입했고 이에 맞춰 정유 설비를 구축했습니다. 우리나라 정유 업체들은 주요 원료인 고유황 중질유의 정제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고도화 설비를 건설하기도 했습니다. 중유 등을 수익성이 높은 휘발유, 경유 등으로 바꾸는 고도화 설비 건설에는 몇조 원 단위의 막대한 투자가 필요합니다. 만일 이러한 설비에 미국 셰일 오일을 투입하려면 설비 개조를 위한 신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아울러 최종 생산되는 정유 제품 비중 또한 달라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탈-중동산 원유’ 움직임이 아시아 전체로 확산될 경우에는 정유 제품의 생산 비중 변화 외에 제조업 전반에 영향을 줄 변화가 나타나게 됩니다. 바로 현대 사회를 지탱하는 주요 원료 중 하나인 황의 생산량 감소입니다. 황은 채굴 형태보다는 원유 정제 중 탈황 공정을 통해 생산되는 물량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전 세계 생산량 중 85~90% 이상에 이르니 사실상 원유 부산물 성격이 강합니다.

따라서, 세계 황 생산량 역시 해당 국가의 정제 설비 규모와 수입 원유의 황 함량에 비례합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2024/2025년 기준 세계 황 생산량은 8,400만~8,500만 톤입니다. 중동 석유 수입 비중이 높고, 세계 최대 규모의 정제 설비를 갖춘 중국이 세계 1위 황 생산국입니다. 중국은 연간 1,900만 톤(22.6%)의 황을 생산합니다. 그 다음으로 미국 820만 톤(9.6%), 러시아 750만 톤(8.8%), 사우디아라비아 750만 톤(8.8%), 아랍에미리트 600만 톤(7.1%), 카자흐스탄 510만 톤(6.0%), 캐나다 500만 톤(5.8%) 순입니다. 우리나라도 연간 310만 톤(3.7%)의 황을 생산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동의 고유황 원유 정제량이 감소하면, 황 생산량도 감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황 생산량 감소는 현대 산업 전반에 영향을 줍니다. 특히 농업 분야가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됩니다. 황산(Sulfuric Acid) 형태로 가공된 황은 비료 원료로 쓰입니다. 농약(살균) 생산에도 사용됩니다. 황은 이차전지 중 삼원계 양극재(NCM/NCA 등)의 핵심 원료인 니켈을 생산하는 공정에도 투입됩니다. LFP 양극재의 전구체 생산에도 황이 쓰입니다. 반도체·첨단소재 분야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웨이퍼 세정과 포토레지스트 제거에 핵심적으로 사용되며, 식각 및 세정 공정에도 활용됩니다. 따라서 황 공급망 불안은 반도체 수율 관리의 새로운 변수로 부상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세계 최대 황 생산국인 중국은 2026년 3월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 후 비료 수출을 중단했습니다. 그리고 2026년 5월부터는 황산(Sulfuric Acid) 수출도 중단됩니다. 

중동산 원유를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황을 함유하고 있는 석유는 캐나다(Western Canadian Select), 멕시코(Maya), 베네수엘라에서 생산됩니다. 그러나 이들 국가는 당장 석유 생산량을 늘리기 힘든 상황입니다. 캐나다 유전은 대부분 내륙에 위치합니다. 생산 확대를 위해서는 물류 인프라가 확장되어야 합니다. 대규모 투자와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멕시코는 2000년대 초반 이후 원유 생산량이 꾸준히 감소하고 있습니다. 이란 전쟁에 따른 고유가 지속이 아닌 황 대체 수요 증가만으로는 멕시코의 원유 생산량 확대를 위한 투자가 늘어나기 어렵습니다. 베네수엘라 역시 2026년 1월 사태 이후 석유 생산 관련 투자가 늘어나기 시작했지만, 불확실성은 여전히 높습니다. 2024년 기준 위 국가들의 총 석유 생산량 또한 중동 지역의 30% 수준밖에 되지 않습니다.

중동산 원유 생산 차질에 따른 황 생산량 감소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미국 로체스터 공대의 안드레 허드슨 교수는 이란 사태가 터지고 열흘 정도 지났을 때 한 공유 플랫폼에 “사람들은 중동 갈등을 휘발유 가격 문제로만 보지만, 원유는 자동차를 채우는 비용 그 이상이다. 석유는 플라스틱, 비료, 의류 섬유, 의약품, 전자기기 등 현대 사회가 의존하는 수천 가지 제품의 원재료이기 때문”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그 발언을 빌리지 않더라도 원유의 생산 차질이 정유 제품 생산 차질을 넘어 현대 산업을 지탱하는 핵심 원료의 생산 차질로 직결될 수 있음은 자명합니다.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 장기화에 따른 여파는 운송, 중질 나프타, 황을 넘어 또다른 예상치 못한 곳으로 퍼져 나갈 수 있습니다. 사태가 하루속히 평화적으로 해결되기 바랍니다.

■ 관련 글

- [이충재의 에너지 프리즘] 미국과 이란의 전쟁: 수많은 예측과 전망 속에 확실한 것 한가지

- [이충재의 에너지 프리즘] 미국과 이란의 전쟁(2): 세계 LNG 산업의 변화

- [최준영의 에너지 지오그라피] 이란 전쟁의 승자와 패자

- [AI 에너지 브리프] <분석> 호르무즈 위기, 글로벌 언론이 주목하는 진짜 수혜자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