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르무즈 봉쇄 장기화에 중동 우회 송유관 대안 급부상
■ 송유관, 해협 리스크 줄이지만 비용·분쟁 취약성은 한계
■ 에너지 경쟁의 초점, 매장량에서 ‘안정적 운송로’로 이동
이란 전쟁이 휴전과 협상 국면으로 전환되면서 마무리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지속되면서 세계 경제는 점차 위기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한 문제가 장기화되면서 호르무즈 해협을 거치지 않는 우회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중동 지역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지 않고 원유를 공급할 수 있는 루트는 크게 3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이번 전쟁을 계기로 잘 알려진 사우디아라비아 동서 횡단 송유관이다. 동부 아브카이크 유전과 홍해와 접한 얀부 항구를 연결하는 총 연장 1,201km의 송유관은 현재 하루 700만 배럴의 원유를 수송하고 있다. 이 가운데 200만 배럴은 사우디 자체적으로 사용되고 나머지 500만 배럴이 얀부항을 통해 선적되고 있다. 하루 1,200만 배럴에 이르는 사우디아라비아 생산량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여전히 수출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UAE의 아부다비 송유관(ADCOP)이다. 아부다비 하브샨 유전과 오만만에 위치한 푸자이라 항구를 연결하는 총 연장 360km의 송유관은 하루 150만 배럴의 원유를 수송하고 있다. 2012년 개통된 이 송유관은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여 오만만과 직접 연결된다.
세 번째는 이라크와 지중해 연안의 튀르키예 제이한 항구를 이어주는 총 연장 970km의 키르쿠크-제이한 송유관이다. 하루 최대 160만 배럴의 용량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라크 북부에 위치한 쿠르드 자치정부와의 갈등을 비롯한 여러 가지 요인으로 하루 수출 용량은 25만 배럴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최대 용량으로 가동된다고 가정할 경우 전쟁 이전 하루 2,000만 배럴의 원유 및 석유제품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던 것과 비교해 보면 결코 적지 않은 양인 675만 배럴의 원유가 이들 송유관을 통해 수출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파이프라인은 모두 지상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이란의 미사일 및 드론 공격에 취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송유관의 존재는 에너지 시장의 불안감을 조금이라도 해소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안정적인 수송로를 제공하는 송유관이지만 단점도 많다. 송유관의 문제는 건설 및 운영비용이 높다는 점이다. 또한 여러 나라를 거칠 경우 여러 형태의 분쟁에 휘말리기 쉽다. 많은 중동 지역의 송유관이 이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운영이 중단되거나 사라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람코는 사우디아라비아 동부 아브카이크에서 레바논의 항구도시 시돈까지 연결되는 1,648km의 트랜스아라비아 송유관(TAPLINE)을 건설했다. 수에즈 운하를 거치지 않고 유럽에 원유를 수출하겠다는 전략이었다. 하루 30만 배럴의 용량으로 1950년 가동을 시작한 이 송유관은 당시 사우디아라비아 전체 생산량의 1/3을 담당하면서 당시 신생 국가였던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송유관이 통과하는 시리아, 레바논과의 끊임없는 통행료 분쟁과 대형 유조선의 등장으로 인해 경쟁력을 상실하고 결국 2001년 최종적으로 운영을 중단했다.
중동 산유국 가운데 송유관과 인연이 깊은 나라는 이라크다. 키르쿠크에서 요르단을 거쳐 현재 이스라엘의 하이파 항구까지 1,856km의 길이로 이어지는 송유관이 건설된 것은 1934년이었다. 이 송유관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지중해에 주둔한 영국군과 미군의 연료 수요 대부분을 충족시켜 줬다. 하지만 전쟁 이후 복잡한 중동 정세 속에서 여러 차례 공격 대상이 되면서 1948년 폐기되었다. 이라크가 다시 본격적으로 파이프라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이었다. 당시 이라크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협에 시달리고 있었다. 당시 이라크는 남부 바스라 유전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요르단 사막을 가로질러 홍해와 접한 요르단의 아카바 항구까지 이어지는 송유관을 구상했다. 그러나 결국 바스라-아카바 송유관은 건설되지 못했다. 걸프전, 미국의 이라크 침공, IS의 영토 확장 심지어 이라크와 이스라엘이 가까워질 것이라는 이유로 반대하는 시아파의 저항까지 다양한 이유가 40년 동안 송유관 건설을 가로막아왔던 것이다.

중동의 에너지 운송 루트가 페르시아만 호르무즈 해협과 홍해의 바브엘만데브 해협에 의존하고 있다는 취약점은 꾸준히 지속되어 왔지만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송유관 건설은 지지부진했다. 송유관 및 펌프장 건설에만 최소 100억 달러 이상의 비용이 소모될 뿐만 아니라 탈탄소 흐름 속에서 장기적으로 화석에너지 운송능력 강화를 위해 추가적인 투자를 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되면서 상황은 급격히 전환되고 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권을 주장하면서 이곳을 통과하는 유조선 및 LNG 운반선에 대해 통행료를 받겠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실제로 일부 선박들이 통행료를 납부하고 있다. 이란의 주장대로 배럴당 1달러의 통행료를 받을 경우 이란은 최소 37억 달러의 수입을 거둘 수 있다. 만약 척당 200만 달러를 징수할 경우 연간 18,250척이 통과함을 고려하면 최대 370억 달러의 수익을 매년 얻게 된다. 최소 금액인 37억 달러를 5%의 할인율을 적용하여 25년간 납부한다고 가정하면 현재 가치로 총액은 540억 달러에 이른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산유국들로서는 이 비용을 부담하느니 차라리 우회하는 송유관을 건설하는 것이 경제적, 안보적으로 합리적인 판단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물론 홍해의 바브엘만데브 해협도 위험하기 때문에 새로운 송유관 노선의 목적지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곳은 아라비아반도 남부에 위치한 오만이다. 오만은 인도양과 직접 접하고 있기 때문에 해협 통과에 따른 리스크를 겪지 않아도 된다. 소수 이슬람 종파인 이바디파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오만은 매우 포용적이고 관용적인 태도로 유명하다. 신뢰할 수 있고 위협적이지 않은 국가이기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주변 국가들로서는 오만으로 연결되는 송유관을 건설할 가능성이 높다. 오만 역시 남부에 위치한 두쿰항을 대규모 원유 저장 및 수출항으로 개발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
묘하게도 2025년 하반기에 이라크와 오만 양국은 이라크 남부 바스라에서 시작하여 오만 두쿰항까지 연결되는 장거리 송유관 건설에 대해 기본적으로 합의했다. 하루 최대 150만 배럴의 수송 능력을 갖추며 두쿰항에 최대 1천만 배럴의 저장용량을 갖춘다는 계획으로 알려졌다. 이라크는 유일한 항구인 바스라항을 통해 하루 300만 배럴의 원유를 수출하고 있지만 시설한계 및 기상 여건 등으로 인해 수출량을 늘릴 수 없었다. 만약 오만까지의 송유관이 건설된다면 이라크는 원유 수출량을 하루 500만 배럴까지 늘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막대한 건설 비용과 이라크 정부의 재정에 대한 의구심으로 현실성이 높지 않다고 여겨졌지만 전쟁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에너지에 대한 주된 관심을 매장량과 가격에서 안정성으로 바꿔놓고 있다. 아무리 많아도 원할 때 가지고 올 수 없으면 소용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모두 깨닫게 된 것이다. 송유관 노선을 둘러싼 새로운 움직임과 갈등이 중동의 새로운 이슈로 부각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지역을 통과할 것인지, 그리고 어디를 통해서 수출할 것인지에 따라 중동 에너지의 핵심 포인트는 변화하게 된다. 전쟁은 마무리 수순으로 접어들고 있지만 에너지 패권을 둘러싼 중동 내부의 변화는 이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 관련 글
- [최준영의 에너지 지오그라피] 미국-이란 긴장 고조, 호르무즈 해협의 암운
- [최준영의 에너지 지오그라피] 이란 전쟁의 승자와 패자
- [이충재의 에너지 프리즘] 미국과 이란의 전쟁(2): 세계 LNG 산업의 변화
- [이충재의 에너지 프리즘] 미국과 이란의 전쟁(3): 에너지 위기에 가려진 원료 위기
- [이충재의 에너지 프리즘] 미국과 이란의 전쟁(4): 세계 항공유 공급망 위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