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에너지 브리프] 호르무즈에서 바브엘만데브까지, 이중 초크포인트의 뿌리

2026. 09. 17 SK이노베이션 5분 읽기

20세기 초 제국들이 밀실합의 등으로 정한 질서, 지금의 갈등 원인 중 하나

인위적 국경, 종파 대리전, 그리고 이중 초크포인트 – 중동 위기의 세 겹 지층

💡 핵심 요약

  • 이란전쟁으로 호르무즈가 막힌 데 이어 후티가 바브엘만데브까지 위협하면서, 걸프산 원유의 두 출구가 동시에 막히는 ‘이중 초크포인트 리스크’ 현실화
  • 1차 세계대전 이후 설정된 인위적 국경과 1979년 이후 이란-사우디의 근대적 패권 경쟁 등 역사적 복잡성 존재
  • ‘태고의 앙숙’이 아니라 만들어진 경쟁인 만큼, 2023년 국교정상화처럼 외교적 해법의 여지도 남아 있음

예멘 서부 해안이 후티 반군의 손에 넘어가고, 홍해의 관문인 바브엘만데브 해협에서 상선과 유조선이 공격받으면서 국제 유가와 정제마진이 요동치고 있다. 이미 호르무즈 해협이 이란전쟁으로 막혀 있는 상황에서 두 번째 병목마저 흔들리자, 시장은 ‘이중 초크포인트 리스크’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위기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100여 년 전 어느 밀실 협상에 닿는다. 어떻게 보면 지금 중동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일들은 100여 년간 쌓여온 균열이 에너지 공급망이라는 현대적 급소를 만나 폭발한 결과로 해석될 수도 있다.

① 사막 위에 그어진 자[尺]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 영국의 외교관 마크 사이크스와 프랑스의 외교관 프랑수아 조르주피코는 오스만 제국이 패배하면 아랍 영토를 어떻게 나눌지 비밀리에 합의했다. 이른바 사이크스-피코 협정이다. 당시 아랍지역은 오스만 제국이 점령하고 있었다. 영국은 아랍인들이 오스만 제국에 맞서 봉기하면 전쟁 후 아랍의 독립국가 건설을 지원할 의향이 있다고 후세인-맥마흔 서신 등을 통해 약속했다.

독립을 지원한다고 하면서 다른 제국과 땅을 나누기로 밀실 합의를 한 이중 플레이.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20년 산레모 회의에서 이 구상은 실제 위임통치령으로 구체화하고 진화됐다. 영국은 이라크·팔레스타인·요르단(당시 트랜스요르단)을, 프랑스는 시리아·레바논을 맡았다. 아프리카의 국경들이 그랬듯 이 국경선도 지도 위에 자로 그은 듯한 직선 위주였다. 수백 년간 이어져 온 부족의 영역, 수니파와 시아파의 신앙 공동체, 쿠르드족 같은 소수민족의 거주지는 협상 테이블에서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사이크스-피코 협정의 중동 분할 구상을 나타낸 지도. 시리아 북부의 블루존은 프랑스 직접 통치, A 구역은 프랑스 세력권으로, 이라크 남동부의 레드존은 영국 직접 통치, B 구역은 영국 세력권으로 나뉘어 있다. 오스만 제국 패망 이후 영국과 프랑스가 아랍 지역을 자로 그은 듯한 직선으로 분할한 결과를 보여준다.

1932년 이븐 사우드가 아라비아 반도 대부분을 통일해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을 세우면서 또 하나의 축이 완성됐다. 이슬람의 두 성지 메카와 메디나를 보유한 사우디는 자연스럽게 수니파 세계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위치에 섰다. 이렇게 20세기 초 몇십 년 사이에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중동의 국경선과 세력 구도의 뼈대가 만들어졌다. 다만 이 시기까지는 아직 ‘이란-사우디 대립’이라는 오늘날의 구도가 본격화되지는 않았다. 그 방아쇠는 반세기 가까이 더 지난 뒤에 당겨진다.

② 1979년, 균열에 불이 붙다

1979년 2월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이끈 이슬람 혁명으로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고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 들어섰다. 새 정권은 스스로를 왕정에 맞선 이슬람 혁명의 수출국으로 규정했고, 이는 페르시아계·시아파 정체성을 앞세운 것이었다. 아랍계·수니파 왕정 국가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 입장에서 이는 체제 자체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졌다. 여기에 같은 해 발생한 메카 대모스크(마스지드 알하람) 점거 사건은 사우디 왕실이 국내적으로 더 보수적인 종교 노선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고, 결과적으로 양측의 이념적 간극은 더 벌어졌다.

이후 이란과 사우디는 직접적인 군사 충돌보다 제3국의 종파·정치 갈등에 각자의 영향력을 심는 방식을 택했다. 이른바 대리전(proxy war) 구도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이 역내 종파 동원의 첫 대규모 실험대가 됐다면, 1982년 이란 혁명수비대의 지원으로 결성된 레바논 헤즈볼라는 이란이 만든 최초의 성공적인 대리 세력으로 꼽힌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후세인의 수니파 정권이 무너지고 시아파가 집권하자 이란의 영향력은 이라크로까지 확장됐고, 2011년 시리아 내전에서는 이란이 아사드 정권을, 사우디를 비롯한 걸프 국가들이 반군 진영을 지원하며 대리전 구도가 한층 노골화됐다.

③ 예멘, 저항의 축 최전선이 되다

이 구도가 지금의 에너지 위기와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무대는 예멘이다. 예멘 북부에 뿌리를 둔 자이드파(시아파의 한 분파) 무장조직 후티(공식 명칭 안사르 알라)는 2014년 수도 사나를 장악했고, 이듬해인 2015년 사우디가 주도하는 아랍 연합군이 군사 개입에 나서며 예멘은 본격적인 내전에 빠져들었다.

이 과정에서 후티는 이란이 지원하는 헤즈볼라·이라크 시아파 민병대 등과 함께 이른바 ‘저항의 축(Axis of Resistance)’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했다. 2016년 사우디가 자국 내 시아파 성직자 니므르 알니므르를 처형하고 이에 반발한 군중이 테헤란 주재 사우디 대사관을 습격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양국은 아예 국교를 단절하기에 이른다. 2023년 중국의 중재로 관계가 정상화됐지만, 이는 외교적 봉합이었을 뿐 예멘 내전이나 역내 세력 경쟁의 근본 구조를 해소한 것은 아니었다.

그 잠정적 균형이 다시 흔들린 것이 지난 2월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을 계기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 위협에 놓였고, 이란 최고지도자의 장례식 참석 등을 둘러싼 갈등 속에 후티와 사우디의 휴전도 사실상 깨졌다. 후티는 지난 7월 사우디를 겨냥한 해상봉쇄를 선언한 데 이어 사우디 유조선과 정유시설을 공격했고, 최근에는 모카 항구를 포함한 예멘 서부 홍해 연안 대부분을 장악했다.

④ 에너지 길목의 무기화 – 두 개의 초크포인트

여기서부터는 순수한 종교·정치 갈등의 영역을 넘어선다. 후티가 장악한 예멘 서해안은 바로 세계 해상 물동량의 핵심 관문인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끼고 있다. 이미 이란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바브엘만데브마저 위협받자, 걸프산 원유가 세계 시장으로 나가는 두 개의 주요 출구가 동시에 막힐 수 있다는 ‘이중 초크포인트 리스크’가 현실화됐다.

실제로 2023~2024년 후티의 홍해 상선 공격 당시 이집트 수에즈 운하 수입은 2023년 103억 달러에서 2024년 40억 달러로 거의 3분의 2가 급감한 전례가 있다. 당시 많은 선사들이 아프리카 희망봉을 도는 우회 항로로 옮겨갔고, 공격이 잦아든 이후에도 상당수는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 다시 벌어지는 후티의 바브엘만데브 장악은 같은 시나리오가 반복될 가능성을 키운다. 운임과 전쟁보험료 상승, 항해거리 증가에 따른 연료비 부담, 그리고 이집트의 외화 수입원인 수에즈 운하 통행료 감소까지, 한 지역의 오래된 정치적 갈등이 지구 반대편 소비자가 내는 기름값과 물류비에 그대로 반영되는 구조다.

아라비아 반도를 중심으로 한 위성 지도. 북동쪽 페르시아만 입구의 호르무즈 해협과 남서쪽 홍해 입구의 바브엘만데브 해협이 붉은 점선으로 연결되어 '이중 초크포인트'로 표시돼 있다. 걸프산 원유가 빠져나가는 두 해상 길목이 동시에 위협받는 구조를 보여준다.

⑤ 다만, ‘천년 묵은 앙숙’이라는 설명은 충분치 않다

여기서 균형 잡힌 시각도 필요하다. 이란-사우디 대립을 ‘오래된 종파 앙숙의 부활’로 설명하는 서사는 직관적이지만, 다수의 중동 지역 연구자들은 이런 프레임이 지나치게 단순하다고 지적한다. 시아파와 수니파는 수백 년간 같은 지역에서 큰 충돌 없이 공존해온 경우가 훨씬 많았고, 지금의 대립은 종교적 교리 차이 자체보다는 1979년 이후 두 정권이 각자의 정치적 정당성과 지역 패권을 확보하기 위해 종파 정체성을 동원해온 근대적 권력 경쟁에 가깝다는 분석이다.

즉 ‘사막의 오래된 앙숙’이 저절로 되살아났다기보다, 특정 시점 이후 국가 행위자들이 필요에 따라 종파 갈등을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고 증폭시켜온 측면이 크다는 것이다. 이는 이 위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차이를 만든다. 문제의 뿌리가 화해 불가능한 태고의 원한이 아니라 근대 국가 간 이해관계 경쟁이라면, 외교적 타협의 여지 역시 2023년 이란-사우디 국교 정상화가 보여줬듯 존재하기 때문이다.

| 타임라인: 국경선에서 초크포인트까지

시기 사건 현재와의 연결고리
1916년 사이크스-피코 밀약 체결(영·프, 오스만 아랍 영토 분할 합의) 부족·종파 경계 무시한 인위적 국경선의 원형
1917년 영국, 밸푸어 선언(팔레스타인에 유대민족 국가적 고향 건립 지지 선언) 이스라엘 건국의 중요 시발점
1920년 산레모 회의 – 영국·프랑스 위임통치령 확정(이라크·팔레스타인·트랜스요르단/시리아·레바논) 오늘날 국경선의 실질적 확정
1932년 이븐 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왕국 건국 수니파 종주국 자처의 출발점
1979년 2월 이란 이슬람 혁명 – 호메이니, 이슬람 공화국 수립 시아파 ‘혁명 수출’ 노선과 사우디와의 정면 대립 시작
1980~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 역내 종파 동원의 첫 대규모 실험대
1982년 레바논 헤즈볼라 결성(이란 혁명수비대 지원) ‘저항의 축’ 최초의 대리 세력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후세인 정권 붕괴 이라크 내 시아파 집권과 이란 영향력 확대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이란(아사드 지원) VS 사우디(반군 지원) 대리전 격화
2014~2015년 후티, 예멘 수도 사나 장악 → 사우디 주도 연합군 개입 예멘이 ‘저항의 축’ 최전선으로 편입
2016년 사우디, 시아파 성직자 니므르 알니므르 처형 → 양국 단교 이란-사우디 대리전의 공식적 최고조
2023년 중국 중재로 이란-사우디 국교 정상화 잠정적 데탕트, 그러나 근본 구조는 미해결
2026년 미·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 호르무즈 봉쇄 위협, 이어 후티의 바브엘만데브 장악 두 초크포인트 리스크 동시 현실화

| 구시대의 국경선, 21세기 에너지 안보의 급소가 되다

지금 아라비아 반도와 홍해 일대에서 펼쳐지는 위기는 하나의 원인이 아니라 세 겹의 층으로 이뤄져 있다. 가장 아래층에는 1차 세계대전 과정과 종결 후 벌어진, 부족·종파 경계를 무시한 인위적 국경이 있다. 그 위에는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본격화된 이란-사우디 간 근대적 패권 경쟁과 이를 종파 구도로 포장해온 정치적 동원의 역사가 쌓여 있다. 그리고 가장 위층에는 이 갈등의 최전선이 세계 원유·가스 물동량의 두 핵심 관문(호르무즈·바브엘만데브)과 겹치면서 발생하는 21세기형 에너지 안보 리스크가 자리한다.

100년 전 지도 위에 그어진 선이 오늘날 유조선의 항로와 국제 유가를 흔들고 있다는 사실은, 이 위기가 단기간에 외교적 봉합만으로 해소되기 어려운 이유를 보여준다. 동시에 이 갈등이 ‘화해 불가능한 태고의 원한’이 아니라 만들어지고 증폭돼 온 근대적 경쟁이라는 사실은, 2023년의 이란-사우디 데탕트가 그러했듯 외교적 공간이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라는 여지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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