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핵심 요약
- 전쟁에 따른 공급 차질과 정제·운송 능력 부족이 맞물린 경유 가격 급등
- 경유 가격 안정의 핵심 조건은 정유시설 복구와 재고 보충
- 물류·건설·농업의 경유 의존도를 고려할 때, 다양한 에너지원과 석유의 장기적 공존 필요
| 원유보다 가파르게 오른 경유 가격
세계 석유 시장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원유가 아닌 경유다. 9월 21일 미국 자동차용 경유 평균 소매가격은 갤런당 6.529달러로 1년 전보다 약 74% 올랐다. 우리나라에서 사용 중인 단위로 바꾸면 리터당 2390원에 육박한다. 유럽의 경우 브렌트유* 대비 경유 프리미엄**은 배럴당 95달러 이상으로 급등하면서 201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휘발유 상승률은 약 41%였다. 같은 원유에서 나온 연료인데 경유의 오름폭이 훨씬 크다. 다양한 곳에 사용되는 경유 가격의 상승은 물가 인상으로 직결된다. 모두가 다급하게 더 많은 경유를 찾고 있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다.
*브렌트유: 북해 지역에서 생산되는 원유를 대표하는 국제 원유 가격 기준.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원유 가격 벤치마크 중 하나
**브렌트유 대비 경유 프리미엄: 경유의 도매가격이 기준 원유인 브렌트유 가격보다 얼마나 높은지를 나타내는 가격 차이

최근 경유 가격 급등의 가장 큰 이유는 전쟁으로 인한 공급 축소다. 이란 전쟁으로 중동의 경유 공급이 약 78만 배럴 감소하였고,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으로 약 35만 배럴이 감소하였다. 양쪽을 합하면 하루 113만 배럴에 육박한다. 큰 숫자로 보이지만 이는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추정한 세계 경유·가스오일 일평균 사용량인 약 2878만 배럴(2025년 기준)의 3.9%에 불과하다. 그러나 원래부터 빠듯했던 수급 상황에서 4% 수준에 해당하는 공급 축소는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러시아의 경유 수출제한에 이어 하루 200만 배럴의 경유를 수출하는 미국까지 중간 선거를 앞두고 급등하고 있는 자국내 경유 가격을 진정시키기 위해 수출 금지를 검토하면서 경유 가격 상승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IEA도 당분간 경유 공급 증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경고했다.
| 물류와 산업을 움직이는 연료, 경유
경유의 ‘경(輕)’자는 가볍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름과 달리 경유는 휘발유보다 밀도와 점성이 높다. 이런 이름을 갖게 된 배경은 19세기 후반 석유 정제 기술이 발전하면서 만들어진 유분 가운데, 상대적으로 가벼운 축에 속한다는 공학적 분류에서 비롯되었다. 경유는 석유제품 수요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품목이다. 화물 운송, 건설, 농업, 발전, 해운 등 다양한 분야에 사용되는 경유는 산업용 연료의 대표주자다. 전체 석유 소비의 27.6%를 경유가 차지하고 있다. 경유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나라는 미국이다. 2023년 기준으로 연간 2억 3700만 톤을 생산했다. 그 다음으로는 중국(2억 1700만 톤), 인도(1억 1600만 톤)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4800만 톤을 생산해 세계 6위, 생산량 비중으로는 3.4%를 기록했다. 우리나라는 2023년 전체 생산량의 55%에 달하는 2634만 톤을 수출하면서 주요 경유 수출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경유의 사용은 1892년 독일의 발명가 루돌프 디젤에 의한 새로운 내연기관의 등장과 더불어 본격화되었다. 압축으로 뜨거워진 공기를 이용하여 연료를 자연 발화시키는 엔진은 발명가의 이름을 따 디젤 엔진으로 불렸다. 당초 디젤 엔진은 해바라기유를 비롯한 다양한 연료를 사용하도록 구상되었다. 하지만 다른 연료에 비해 높은 에너지 밀도를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휘발유에 비해 취급상 유리한 경유가 점차 디젤 엔진의 연료로 사용되면서 “경유=디젤 엔진 연료”라는 등식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1897년 실용화된 디젤 엔진은 선박과 발전 설비를 시작으로 이후 철도와 대형 트럭, 건설 장비로 빠르게 영역을 넓혔다.
경유의 가장 큰 사용처는 대형 트럭이다. 대형 트럭이 필요로 하는 토크와 효율은 디젤 엔진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어느 지역에서나 화물 운송이 수요의 기본이다. 하지만 지역별로 살펴보면 나름대로의 특징이 있다. 유럽은 승용차 시장에서도 디젤 차량의 비중이 높아 경유 수요가 많다. 2015년에는 유럽 신차 판매의 절반이 디젤차였지만 최근에는 전기차 및 하이브리드 비중이 높아지면서 38% 수준까지 낮아졌다. 아시아의 경우 물류 이외에 건설 중장비, 농업 및 어업, 자가 발전기 등에서 경유 수요가 높다. 물류와 산업현장에서 많이 사용되는 경유의 특성으로 인해 경유 수요의 증감은 경기 판단의 근거로 활용되기도 한다.
| 경유 공급 부족을 키운 정제시설과 운송망의 위기
최근 경유 가격의 급등은 전쟁이라는 단기적 충격과 더불어 그동안 진행되던 정유 산업의 변화와 연관되어 있다. 2019~2026년 동안 세계적으로 많은 정제시설들이 경제성 악화와 기후·환경적 이유 등으로 폐쇄되었지만 새로 추가된 증설 규모는 이에 미치지 못했다. 그 결과 2025년은 2011년 이후 처음으로 글로벌 정제능력이 순감소하기도 했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유럽과 미국의 정제시설 규모가 축소된 반면 아프리카·중동 및 중남미 지역의 시설은 증설되었다. 이 과정에서 중동 국가들의 경유 수출은 2017~2025년 동안 2배 이상 증가했고, 세계 경유 수출량의 19%를 중동 국가가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쟁으로 인해 이들 중동 국가의 수출이 막히고 러시아도 내년까지 수출제한을 연장하면서 서방 국가들을 중심으로 급격한 공급 부족이 발생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신규 정제시설 가운데 일부가 명판 능력에 못 미치는 공급능력을 기록하면서 공급 부족은 심화되었다. 중국 역시 이란산 원유수입 감소 및 수출쿼터 감소 등으로 인해 국제시장에 대한 공급을 줄인 상태다. 전 세계를 뒤져 원유를 확보하더라도 정제능력의 부족으로 인해 석유류 제품, 특히 경유가 더 지정학적 충격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전쟁은 그 공급망의 여러 지점을 동시에 건드리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정유시설 공격으로 생산이 차질을 빚고 수출도 제한됐다. 이란을 둘러싼 전쟁은 중동의 정유시설과 해상 운송을 흔들었다. 원유를 더 확보하더라도 손상된 정유공장을 바로 복구할 수는 없으며, 제품을 생산해도 항로가 막히면 제때 보낼 수 없다. 공급 확대 여력이 있는 중국의 경우 이란산 원유 수입이 미국의 제재와 물리적 봉쇄로 인해 거의 중단되면서 공급을 늘리지 못하고 있다. 다른 지역의 공장들이 가동률을 높여도 여러 가지 이유로 발생한 공백을 모두 메우기 어렵다.
현재 경유 가격은 원유 부족과 별개인 정제·운송 능력의 부족이 반영되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경유 가격은 높은 수준에서 크게 출렁일 가능성이 높다. 미국 에너지정보청은 9월 전망에서 경유·난방유를 포함한 미국내 석유류 제품 재고가 2027년 상당 기간까지 최근 5년의 최저 수준을 밑돌 것으로 예상했다. 재고가 적으면 추가적인 설비 고장이나 운송 차질을 흡수할 여유도 작다. 북반구의 수확철과 난방 수요까지 겹치는 시기에는 작은 공급 차질도 큰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 경유 가격 안정의 조건과 석유의 미래
물론 시간이 지나면 높은 가격이 수요를 억제하고 추가 생산과 수출을 유도하면서 상승 압력을 줄일 것이다. 정유시설과 항로가 회복된다면 가격도 점차 낮아질 수 있다. 중국이 다시 수출을 증가시킬 수도 있으며, 가동에 어려움을 겪는 아프리카 등의 정제 시설들도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다만 휴전 소식에 가격이 먼저 내려가더라도, 생산설비 복구와 충분한 재고 보충이 뒤따르지 않으면 하락세는 지속되기 어렵다.
단기적으로 경유 시장은 높은 가격과 큰 변동성을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 시장의 희망대로 중동 및 우크라이나 휴전 등이 가시화된다면 재고 물량의 공급에 따른 단계적 가격 하락과 안정세 회복이라는 전망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진정되더라도 설비 복구와 재고 보충이 늦어진다면, 경유 가격이 과거 수준으로 돌아가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경유 가격의 급등은 우리 문명이 여전히 석유와 연관된 산업에 기반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경유가 담당하고 있는 다종다양한 영역을 모두 재생에너지가 단시간 내에 대체하는 것은 어렵다. 석유의 시대는 예상보다 오래갈 것이며, 급속한 후퇴와 소멸보다는 다양한 에너지 속에서의 공존이 석유의 미래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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