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AI와 기후변화가 이끄는  에너지 ‘총동원령’

2026. 10. 22 조양준, 서울경제 기자 5분 읽기

💡 핵심 요약

  • AI 확산으로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대규모 장기 전력 계약과 발전 투자로 전력 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음
  • 폭염에 따른 냉방 수요 증가가 전력 소비를 늘리는 또 다른 요인으로 작용하며,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기후변화 적응을 위한 핵심 과제로 부상함
  • 늘어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하려면 재생에너지·원전·천연가스 등을 함께 활용하는 ‘에너지 총동원’이 필요하며, 국내 에너지 기업의 해외 사업과 에너지 정책에도 이를 고려한 전략이 요구됨

인공지능(AI)과 기후변화. 두 현상은 얼핏 보면 서로 큰 연관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에너지와 전력이라는 창을 통해 바라보면 커다란 공통점 하나가 포착된다. 둘 다 막대한 전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AI가 ‘전기를 잡아먹는 하마’라는 점은 이제 상식처럼 여겨진다. 해가 갈수록 정상성을 넘어서는 이상 고온은 냉방 등 기후변화 적응에 필요한 전력 수요를 계속 확대하고 있다. 데이터센터와 에어컨이 24시간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그림 속에 전기가 없다는 사실은 상상하기 어렵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전기가 필요한 것인가, 나아가 그 많은 전기를 어떻게 구할 것인가. 이 글이 다루게 될 질문들이다. 

| AI 전력, 일본이 하나 추가되는 셈

전문가 집단들이 내놓는 AI발(發) 전력 수요 전망은 앞으로 AI가 얼마나 많은 전기를 사용하게 될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0년까지 미국에서 늘어나는 전력 수요의 절반 가까이 데이터센터가 차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 전력연구소(EPRI) 역시 2030년이면 미국 내 데이터센터가 미국 전력의 약 17%, 6분의 1을 소비할 것으로 예상했다. 2024년 초 대비 2030년까지 AI 확산으로 추가되는 전력 수요량이 5위 전력 소비국인 일본의 연간 전력 소비량과 맞먹는 수준이 될 것이라는 전망(골드만삭스)도 있다. 전력 시장에 일본이 하나 추가되는 셈이다. 

이미지1 — 2030년 미국 전력 소비량 전망
미국 전력연구소(EPRI)는 2030년 데이터센터가 미국 전체 전력 소비의 약 17%, 약 6분의 1을 차지하고 나머지 83%는 그 외 부문이 소비할 것으로 전망했다. 데이터센터 서버실 사진 위에 데이터센터 비중을 표시한 도넛 차트다.

AI 산업 최전선에 있는 하이퍼스케일러들은 현재 말 그대로 전력 확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당장 올해만 해도 대규모, 장기 전력 공급 계약이 줄을 이었다. 가장 최근 사례는 구글이 올해 10월 컨스텔레이션(Constellation Energy Corporation)과 맺은 약 3.6기가와트(GW) 규모의 전력구매계약(PPA)이다. 약 25%에 해당하는 890메가와트(MW)는 미국 일리노이·펜실베이니아·뉴저지주 등에서 컨스텔레이션이 보유한 11개 원전에서 확보하기로 했다. 

또 앞서 메타는 운영사 비스트라, 차세대 원전 개발사 테라파워·오클로와 전력 구매 및 신규 원전 개발 지원 협약을 체결했다. 이들 협약은 2035년까지 최대 6.6GW 규모의 기존·신규 원자력 발전용량을 지원하는 내용이다. 이 가운데 비스트라와의 전력 구매 협약 기간은 20년이다. 메타는 총 설비용량 5.2GW 이상의 신규 천연가스 복합화력발전소와 별도의 배터리 저장장치 등을 구축하는 비용을 부담하기로 엔터지 루이지애나(루이지애나州 전력회사)와 계약을 체결했다. 

최근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의 허수를 걸러내야 한다는 반론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른바 ‘유령 수요’다. 중복, 과다 집계는 물론 아예 건설되지 않을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까지 비집고 들어와 ‘자리 선점’부터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텍사스주 등 미국 일부 지역에서는 데이터센터가 신청한 전력 수요를 두고 검증 작업에 착수했다. 국내에서도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데이터센터의 전력 가수요를 솎아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데이터센터발 전력 수요가 화석연료 사용 확대의 명분을 제공한다는 이유에서다. 

| 기후 적응이 만든 두 번째 전력 수요 

그러나 AI만이 앞으로 전력 수요를 밀어 올릴 수 있는 유일한 변수는 아니다. 반도체와 첨단 제조업, 전기차 등 전기화 추세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산업의 탈탄소 과정이 전력 총량을 늘어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철도·항만·공항 등 인프라의 전기화도 빼놓을 수 없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해야 할 것이 바로 기후변화가 촉발한 이상 고온에 대응하기 위한 냉방 수요다. IEA는 공간 냉방을 위한 전 세계 전력 수요가 현재 2,900테라와트시(TWh)로 2015년 이후 약 10년 만에 50% 이상 증가했다고 집계했다. 2,900TWh면 유럽연합(EU) 전체의 총 전력 수요를 웃도는 수준이다. 또 냉방은 2015년 이후 전 세계 전력 수요 증가분의 14%를 차지한다. 

이미지2 — 기후변화가 불러온 전 세계 냉방 전력 수요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연간 냉방 전력 수요는 약 2,900TWh다. 2015년보다 50% 이상 늘어 EU 전체의 총 전력 수요를 웃도는 수준이다. 2015년 이후 전 세계 전력 수요가 늘어난 몫의 14%를 냉방이 차지했다.

‘100년 만의 폭염’ 같은 이상 고온 현상은 해마다 반복되고 있으며, 매년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냉방은 온실가스 감축을 넘어 이상 고온에 맞춰 생존해야 하는 ‘기후 적응’이 기후변화 대응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으면서 그 의미가 더욱 커지고 있다. 

당장 올여름도 그랬다. 40도 고온이 마치 일상처럼 찾아왔다. 특히 미국·이란 전쟁이 촉발한 중동산 에너지 공급 경색은 중동산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동남아시아에 직격타를 날렸다. 전력 생산 구조에서 LNG와 석유 비중이 높은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는 중동발 공급 불안과 국제 LNG 가격 상승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으면서 전력 조달 부담이 확대됐다. 석탄 발전 비중이 70%를 넘는 인도에서는 수요 정점(피크) 상황에서 이를 보완할 유연성 전원의 제약이 문제로 떠올랐다. 전국 각지에서 대규모 정전이 발생했다. 노후한 송배전 인프라까지 겹치면서 전력 공급 능력이 수요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측면도 크다. 인도 현지 언론들은 “경제 성장 전망보다 냉방 수요가 인도의 전력 수요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는 평가를 내놨다. 

선진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에어컨 보급률이 낮은 유럽에서도 이제 냉방을 ‘생존 수단’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프랑스에서는 내년 4월 대선을 앞두고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마린 르펜의 소속 정당, 국민연합이 ‘전국적으로 에어컨 설치를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기도 했다. 폭염으로 사망자까지 다수 발생하는 상황에서 온실가스 감축을 강조하며 냉방에 소극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앞으로 유럽에서 냉방 수요가 더욱 확대될 것임을 짐작하게 하는 현상으로 풀이된다. 

| 총력전에는 ‘총동원령’으로 

전력 확보 총력전이 필요한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에너지 총동원령’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당분간 재생에너지부터 화석연료까지 전 에너지에 걸쳐 수요가 동시에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에너지 격변기에 있는 현장에서는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하이퍼스케일러들은 전력 확보를 위해 발전원을 가리고 있지 않다. 태양광, 배터리 등 그동안 높은 비중을 차지했던 재생에너지는 물론 원전, 천연가스까지 말 그대로 ‘닥치는 대로’ 전력을 구하는 모양새다. 천연가스도 AI 팽창기를 맞아 두각을 나타낸다. 셸은 2040년까지 액화천연가스(LNG) 수요가 지금보다 60%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석탄, 석유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낮을 뿐 엄연한 화석연료인 천연가스의 쓰임새가 크게 증가하는 것이다. 

중동산 에너지 공급이 크게 축소돼 전기 공급이 위기를 맞았던 동남아시아에서도 재생에너지 설치 속도에 불이 붙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가 곧바로 화석연료를 대체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매우 낮아 보인다. 가용 에너지 카드를 모두 꺼내 사용해야 하는 식으로 대응할 확률이 더 높다. 

이 같은 에너지 총동원령은 한국 에너지 기업들이 해외 사업을 추진할 때 참고가 될 수 있는 흐름이다. 또한 국내 에너지 산업과 정책에 던지는 시사점도 될 수 있다. 지금, 발전원을 바라보는 우리의 방식에 변화가 요구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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