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미국에서 전기차 개발과 셰일 에너지 생산이 시작됐습니다. 세계 금융 위기 이후 18년 동안 세계 에너지/석유화학 산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변수 역시 전기차와 셰일 에너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기차는 보급 확대의 현실성 여부와 관련 없이 세계 석유 업체들의 유전 개발과 정유 설비 신/증설을 막는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셰일 에너지는 미국 석유 수출을 가능하게 했고, 미국 석유화학과 LNG 업계의 대규모 투자 확대를 이끌어냈습니다.
지난 18여 년간 세계 정유/석유화학 업계를 지배한 대전제 역시 전기차와 셰일 에너지로 인해 만들어졌습니다. 석유 수요는 감소한다. 에탄 크래커(ECC)는 나프타 크래커(NCC) 대비 무조건 원가 경쟁력이 높다. 정제 마진은 석유 수요 감소로 하락할 수밖에 없다. 원가 경쟁력을 상실한 나프타 크래커 역시 정유 설비와 함께 하루 빨리 폐쇄해야 된다. 지난 18년 간 업계를 지배한 일종의 법칙이자 상식이었습니다.
2026년은 지난 18년 간의 법칙과 상식이 무너지는 첫 해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2025년 Tesla는 164만대의 전기차를 판매했습니다. 2024년 대비 판매량이 9% 감소했습니다. 중국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전기차로 인한 석유 수요 감소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세계에너지기구(IEA)도 2025년 11월 발표한 World Energy Outlook 2025를 통해 석유 수요 감소라는 기존 입장을 철회했습니다.
2022년 OpenAI가 ChatGPT를 공개한 이후 데이터센터라는 인류 역사 상 가장 짧은 기간 동안 가장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수요처가 나타났습니다.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발전 방식이 이야기되고 있지만, 천연가스와 신재생에너지(태양광/풍력)를 제외하면 2035년까지는 발전량을 늘릴 방법은 없습니다. 더군다나 미국 정치 상황은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빠르게 늘리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전기차 수요 부진과 AI 산업 성장은 2026년을 정유/석유화학 산업의 기존 상식이 무너지는 원년으로 만들 것입니다.
1.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끝: 정유 설비와 나프타 크래커에 불어올 훈풍
2026년 세계 석유 시장의 가장 큰 변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 가능성입니다. 러시아는 종전 조건으로 석유와 천연가스의 자유로운 수출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러시아는 전쟁으로 악화된 국가 재정도 정상화해야 됩니다. OPEC의 증산에 이어 러시아까지 석유 수출을 늘리면, 세계 석유 시장의 공급 과잉은 심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IEA,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세계은행(World Bank)은 러-우 전쟁 종전 여부와 관계없이 2026년 유가 하락을 전망하고 있습니다.
유가 하락은 나프타 가격 하락입니다. 나프타 기반의 석유화학 업체들은 2000년 이후 3번의 유가 하락을 경험했습니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2010년대 중반의 OPEC 증산, 2020년 코로나19 Pandemic입니다. 유가 하락은 NCC의 ECC 대비 원가 경쟁력을 강화합니다. 정유 산업 역시 유가 하락으로 정제 마진 상승, 수요 증가 등 수혜를 얻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2. AI 데이터 센터의 전력 수요: 미국 천연가스의 구조적 가격 상승 요인
반도체와 AI 모델이 있다고 해도 전력이 공급되지 않으면, 데이터센터는 가동할 수 없습니다. 현재 발표된 미국 데이터센터 신규 건설 계획은 2030년 기준 150GW에 달합니다. 2025년 상반기 기준 미국 데이터센터 가동 규모는 22GW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5년간 120GW 규모의 데이터센터가 신규로 건설되고, 가동되면 연간 전력 소비량은 약 900TWh에 이르게 됩니다. 2025년 우리나라 연간 전력 수요의 1.5배, 2024년 미국 전력 수요의 25%에 달하는 규모입니다. 이처럼 거대한 전력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발전원은 천연가스가 유일합니다.
AI 데이터센터 확대에 따른 천연가스 수요 확대는 2025년 하반기 나타난 Big Tech, 에너지 업체들의 전략 변화로도 확인됩니다. 2025년 12월 미국 천연가스 수송 업체인 Energy Transfer는 LNG 수출 터미널(Lake Charles LNG) 건설 계획을 취소하고, 미국 내 가스관 건설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LNG 수출보다 미국 내 AI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발전용 천연가스 공급이 더 수익성이 높다는 판단 하에 내린 결정이라고 생각됩니다. Meta는 안정적 전력 확보를 위해 전력 거래 사업 진출을 발표했습니다. 대형 PEF(: Private Equity Fund, 사모펀드) Blackstone과 Blackrock은 발전 설비 투자를 확대했습니다. 미국 전력 업체 도미니언 에너지는 ‘Take or Pay*’ 형태의 전력 요금제를 신설했습니다. 이는 미국 전력 시장이 ‘공급자 우위’로 돌아섰고, 핵심 발전 에너지원은 천연가스임을 증명합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억제 정책 역시 미국 발전용 천연가스 수요 확대를 가속화로 할 것입니다.
*Take or Pay: 물량 도입 여부와 관계없이 구매자가 약정된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 의무구매조항
EIA는 2026년 미국 천연가스 생산량이 2025년과 비슷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증가로 미국 천연가스 수요는 늘어나는 상황에 공급량 확대는 정체되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 천연가스 가격 상승, 더 나아가 ECC의 원료인 에탄 가격 상승으로 연결됩니다. EIA는 2026년말 Henry Hub 천연가스 가격이 $5/MMBtu 이상으로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과거 $2/MMBtu 내외의 ‘저가 가스 시대’는 끝났습니다. EC가 NCC 대비 원가 경쟁력 우위에 있던 시대 역시 끝났습니다.
3. 석유화학의 원가 구도 변화: 중요한 것은 실질 생산량

석유와 천연가스의 가격 변화 외에도 석유화학 산업에는 중요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미국 Westlake는 2025년 12월 PVC, SM(Styrene Monomer, 스티렌모노머) 설비의 영구 폐쇄를 발표했습니다. 셰일 에너지 생산 이후 처음 나타난 미국 석유화학 설비 폐쇄입니다. 러시아 나프타 최대 수입국인 대만 Nanya Plastics 역시 수익성 악화로 MEG(MonoEthylene Glycol, 모노에틸렌글리콜) 설비 가동을 무기한 중단했습니다. ECC와 NCC 모두 설비를 끄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일본, 유럽, 대만, 미국 등 전세계 모든 석유화학 업체들이 설비 가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수요 증가 상황에서 수익이 나지 않아서 전세계 모든 지역에서 설비 가동에 문제가 생기는 이러한 비정상적 상황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2026년 공급 과잉 심화를 이야기하지만, 세부 지표를 뜯어보면 2026년 공급과잉율은 오히려 낮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2026년 예정된 글로벌 에틸렌 증설 규모는 중국(650만 톤), 한국(180만 톤), 인도(90만 톤)를 포함해 900만 톤에 달하지만, 주요 설비들의 신규 가동 시점은 하반기 및 4분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를 고려하면 2026년의 실질적인 공급 과잉율은 2025년 대비 개선될 것으로 분석됩니다.
4. 정유 산업의 장기 호황: 전기차의 역설

2025년 하반기 시작된 정제 마진 상승은 2026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세계 석유 수요는 매년 늘어나고 있지만 신규 정유 설비 규모는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제 마진 강세가 나타난다고 해도 최소 30년 이상 써야 할 정유 설비를 신규로 건설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결국 기존 설비의 가동률을 높여야 수요를 맞출 수 있는 공급자 우위 현상이 장기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정제 마진 강세는 누적된 세계 정유 설비 신규 건설 부족에 따른 결과입니다. 최소 2030년까지는 세계 정유 업계의 공급자 우위는 지속될 것입니다. 설비 노후화 또한 이러한 추세를 더욱 강화시킬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편 2026년 1월 3일, 미국 특수 부대가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미국으로 압송하였습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미국 석유 기업들이 베네수엘라의 석유 생산 인프라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할 것이고, 관련 비용은 베네수엘라의 석유를 통해 충당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000년대 중반 330만BPD(Barrel Per Day)에 달하던 베네수엘라의 석유 생산량은 20년이 흐른 지금 100만BPD로 감소했습니다. 오일 샌드 비중이 높은 베네수엘라의 특성과 유가 하락에 따른 투자 축소, 경제 제재, 정치 불안 등이 맞물린 결과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베네수엘라의 석유 생산 인프라 복구에는 최소 3-5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60/BBL 수준에서 국제 유가가 유지된다면, 오일 메이저들의 투자 역시 빠르게 추진되기 어렵습니다. 국제 유가가 $80/BBL 이상으로 회복되지 않는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 구상’ 역시 현실화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번 사태로 인해 세계 에너지 산업이 단기간에 어떤 변화를 겪게 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생각됩니다.
5. 중국이 주도하는 세계 신재생에너지 기술 발전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중국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산업 발전을 위해 내수 수요창출, 보조금 확대 등의 정책을 본격화했습니다. 그 결과, 중국은 세계 최대 태양광/풍력 발전 설치 국가가 되었고, 소재부터 최종 제품 생산까지 세계 공급망을 사실상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2차 전지/전기차 산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2026년 현재 중국은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기술을 기반으로 브라질, 태국, 인도네시아, 헝가리, 터키, 독일, 스페인 등에 전기차/배터리 생산 기지를 건설하고 있습니다. 미국에도 포드, Tesla 등과의 기술 라이선스 계약 등을 통해 간접 진출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확대로 BESS(Battery Energy Storage System, 배터리 에너지 저장 시스템) 수요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중국은 LFP 배터리에 이어 Sodium 배터리 양산에도 성공했습니다. 중국의 2차 전지 산업은 세계 AI 산업 성장에 따른 BESS 수요 확대로 더욱 입지가 강화될 것으로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론: 2026년은 기존의 상식을 깨고, 변화된 산업 환경에 적응하는 원년
영원한 원칙은 없습니다. 깨지지 않는 상식 또한 없습니다. 석유, 천연가스, 석탄, 태양광/풍력 발전, 2차 전지, 원자력 발전 모두 끊임없이 가격이 변하고, 기술이 발전합니다. 유가가 계속 낮아지면, 전기차의 경제성이 훼손됩니다. 태양광/풍력 발전과 2차 전지의 생산 원가가 계속 낮아지면, 화석 연료와 원자력을 이용한 발전은 24시간 전력 공급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잃게 될 수도 있습니다. 원가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변수와 에너지 간의 경쟁 우위를 결정짓는 기술 발전 흐름에 맞춰 끊임없이 전략을 수정해야 호황기에는 수익성을 극대화하고, 불황에는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 2026년 다시 한번 확인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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